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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비오는 새벽 한 시

by 개인교수 2014. 3. 26.

1.

창밖에는 고가도로의 차들도 거의 끊겼다.

건너편 찻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무심한 차들 만이 아무 생각없이 내달린다.

바이어의 이메일을 정리하다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나가는 거야 그냥 나가면 되겠지만 갈 곳이 없다.

늘 그런식이다...

어디를 걷고 있는데 행선지가 불 분명해서 늘 미친놈 처럼 돌아만 다닌다.


지금 나가게 되면 흥건이 빗물에 젖은 바짓단을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 스파이 마냥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작전에 미스한 스파이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본거지로 회귀 하겠지?

그리곤 피곤에 떨어져 잠을 잘 것이고 일어나기 싫은 실패자는 행복한 꿈을 쫒아 잠결을 헤메이겠지.

그리곤 또 날이 밝아오고 

번잡하게 움직이고

스스로를 위장하고

꿈속에서 조차 잡지 못했던 또 다른 희망을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덕 거리겠지.




2. 

다시 돌아와 앉은 내 자리

낮에 했던 온갖 보여주기식의 허세와 창피한 진실들이 한꺼번에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이 시간,

기분 나빴으면서도 마치 아닌 양, 늘 관대한듯한 모습과 표정을 지었던 그 그 그 그야말로 정말 엿같은 행위들을 반성하는 이 시간,

마음 약한 사람들 모여놓고 온갖 자랑질을 내 입으로 다 했으면서 마치 뭔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을 핑계삼아 그것을 합리화 시키고, 나의 설파에 대해서는 스스로 용납하면서, 타인의 지식과 의견은 현학적인 태도라고 매도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이 시간....

내일 어차피 또 이런 비슷한 형태로 살 줄 알기에 더욱 더 자괴감이 드는 이 시간...


울고 싶다..

울어서 철저히 나를 부숴 버리고 싶다.



3.

좀 더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살 수는 없는 걸까? 

정확히 말해서 나도 제발 그 순리에 편승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난 내가 살아오면서 남을 미워한 적도 특별히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미가 넘치는 박애주의자나 이타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로 살아왔을 뿐이다.


일부러 가서 사회봉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길 가시는 할머니의 무거운 보따리 정도는 당연히 들어 드리며 살아왔다.

일부러 어떤 특정인을 위해 기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불쌍하고 억울한 이들을 보면 같이 울어줄 정도의 감성을 가지고는 살아왔다.

난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니었지만 착하게는 살아왔다.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기도 싫어하는 그저 정서적으로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그리고 남에게 해꼬지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살아오면서 정신적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사업에서 내 고집만 부리거나 부하직원을 괴롭혔다거나 그들과 협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또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늘 어린아이라 할 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해 줬으며, 

비록 구차하고 비참한 상태의 사람들도 늘 배려해 주며 살아 왔는데...



그런데...왜??

나한테 뭘 어떻게 하라고!!!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데???


나한테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구?????????



4.

내일 밤엔 모든 게 화창하게 개이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걸어도 바짓단이 젖지 않고 그냥 돌아와 행복한 꿈만 꾸며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허세, 자기합리화, 위선적 행위...

이런거랑 관계없는 화창한 봄날의 삶만 살게 되겠지??


난 정말 희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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