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이미 벛꽃이 만개..
네덜란드풍의 하우스텐보스에서 한컷..

누가 누구를 찍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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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엄청 안풀리고 에라 모르겠다 떠난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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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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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방에서의 늦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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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앞에 핀 벛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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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에서 본 나가사키 시내 (바로 여기가 원자폭탄 맞은 지역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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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마을 리조트에서...(뒤에 보이는 원형 돔이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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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냄새와 연기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든 아소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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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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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벳부의 지옥온천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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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온천 관광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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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온천관광지역의 아무도 가지 않는 어느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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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의 아주 유명한 신사에서 뭔가를 기원하다. (신사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합격기원 신사라고 하던데...)

그냥 3일을 쉬지 않고 일본 큐슈 지역은 돌아 다녔다.

그리고 남은 일 정리하고 새 일을 할 결심을 했다.


Posted by PD 개인교수
내가 처음 대만에 발을 디딘건 1988년 올림픽이 막 끝나던 시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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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연고도  이유도 없이 그저 한국에 살기 싫다는 이유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을 나오는 순간 11월의 날씨 답지 않게 후덕지근한 열기가 얼굴을 감싼다.
숨이 턱 하고 막힌다.

그림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바나나나무가 대충 아무런곳에 생장하고 있고 반쯤 익은 바나나들이 송이채 달려있었다.
그 나무가 바나나 나무라는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기름 냄새 향신료 냄새와 더운 열기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며 식욕도 없던 어느날 저녁 동네 앞의 구멍가게에서 시원한 콜라를 한캔 사고, 그 옆 노점상에서 우리나라 돈 약 천원 정도 주고 바나나를 거의 한 다발을 산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손바닥 만한 바나나 한개(한다발이 아님)에 1500원 정도 하던 시절 이었으니, 기븐 마음에 그걸로 배 채우길 수 십 차레나 했다.

2개월 만에 끝나는 비자 연장을 위해서 현지의 중국어 학원을 다녔는데, 당시에는 중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전혀 못 느꼈기 때문에 그냥 출석체크만 일주일에 3-4번 가서 하는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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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중국어 초급반 여선생이 양명산 자락의 자기집에 초대했고, 그때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맥주를 마시며 배운 노래가 바로 茉莉花라는 노래이다.

겨울에는 여럿이 모여서 폭죽놀이도 하고, 中山北路의 생맥주집에 모여서 밤새 술 마시기도 하고, 각자의 꿈과 미래를 얘기했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그리고 그 시절의 노래 茉莉花 도 새삼 생각난다.

그 여선생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환으로 우리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줬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하나의 애잔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리라고는 그 여선생도 생각치 못했으리라.

好一duo美麗的茉莉花~~~ 뭐 이런식으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한국말로 하면 한송이 아름다운 말리화(자스민)~~ 라는 내용의 가사이다.

茉莉花는 대만이나 중국의 民歌(민요)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아리랑 같은 민요가 아니라 "갑순이와 갑돌이", "타박네" 라는 노래 같은 민간전래 민요이다. 그래서 별 거부감 없이 MT 같은데 가면 젊은층들도 많이 부른다.

지금도 우연히 어디선가 쟈스민 이라든지 茉莉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 생각이 간절하다.

중국에서 부르는건 대략 북한의 노래발성법과 비슷한 선동적인 목소리의 공산주의 색채가 강하며, 대만에서 부르는 말리화(Mo li Hua)는 현대적으로 발전되어 좀더 쉽게 다가갈수있다.

아래의 유튜브 동영상은......,
합창곡으로 만든 말리화(Molihua) : 맨앞에 어떤 여자애가 독창하는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화음이 상당히 거지같다. 편곡을 저 정도밖에 못하나? 수준 정말 낮다. 공산당 당가를 합창하는것도 아니고, 마치 노래의 말미에는 반드시 클라이막스가 있어야 하고 그 클라이막스에서는 반드시 웅장하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강박관념을 가지고 편곡한것이 분명하다.
역시  China Mainland 의 짱깨들은 사회주의 전체주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나보다.

여담으로...
북한과 중국은 노래를 부를 때 아주 어색하게도 예쁜 표정을 잘 짓는다. 그리고 목소리도 복식이며, 발음도 아주 예쁘게 하고 노래하는 표정도 꾀꼬리 같다.
그러나 가식적이라서 싫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계집애들이 동요 부를때 하는 전형적인 동작 -- 양손을 마주잡고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고개는 박자에 맞춰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보는 동작 -- 도 정말 보기 싫은데 하물며 눈의 초점 까지도 연습으로 맞춰서 대중앞에 나서는 중국과 북한의 공연은 그야말로 소름끼치게 재수없지 아니한가?

중국 무한(Wuhan)의 어느 합창단의 공연



중국(China Mainland)에서 부르는 모리화와 그에 맞춰 춤추는 모습...
대만에서는 절대 이렇게 소름끼치게 안부른다. 우리나라의 "타박타박 타박네야~~" 같이 이런 풍으로 그냥 기교없이 부른다. 아니면 어릴때 부르던 뜸북새(오빠생각)처럼 대충 부른다.

Posted by PD 개인교수
작년 5월 혼자 떠난 영국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신문사 지사장 자리가 있다고 하여 혼자 영국까지 방문했다.
파리북역에서 대서양 밑을 지나는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 빅토리아역에 도착했을때, 그때야 비로서 숨통이 트이는 것을 트꼈다. 프랑스에서의 벙어리 생활이 청산되는 순간이었다.
영어쓰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고향에 온 기분 이었다.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영국의 한인중 거의 90% 이상이 모여 산다는 New Malden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간 영국에서 처음으로 기차표를 사보고 처음으로 영국의 들판을 지나니 마치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약간은 긴장되고 흥분된다.
들판에는 한가로이 양떼들이 뛰놀고 산등성이에는 듬성듬성 성 같은게 세워져 있다.
이런 풍경은 유럽의 전형적인 풍경이기는 하지만, 영국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기차가 조그만 마을을 지날때면 산업혁명 당시를 연상케 하듯이 시커먼 지붕의 공장 같은것이 많이 눈에 띄였다.
프랑스의 아이들은 풀어져 잇는 반면, 영국의 꼬마들을 보면 고집스러움과 억척스러움이 배어 있는듯 하여 나로서는 더욱더 정감이 간다.

New Malden 이란 곳은 서울로 따지자면 약 안양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자세한 한인 이주의 역사는 모르겠으나 전부 한글 간판 일색이다.

신문사에서 누군가 마중 나왔다.
일종의 Interview 를 하고 신문 지사장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프랑스 쪽 소식은 내 스스로 원고를 써서 편집까지 하는것으로 최종 마무리를 졌다.

그들은 내 호텔을 런던에 예약해 두었고 음식이든 뭐든 먹고 회사이름으로 싸인하라고 했다.
결국 나중에는 다른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신문사 일을 안하게 되었지만...

상담 끝나고 이틀간을 런던에서 혼자 보냈다.
맥주도 사 마시고, 차이나타운가서 음식도 시켜 먹고
런던의 관광명소는 다 돌아 다녔다.

파리로 돌아오기 전날 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제일 잘한다는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서 Medium으로 구운 스테이크를 먹으며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피카디리 써커스의 풍경이다.
5월의 런던 날씨는 어지간히 추워서 앏은 잠바 가지고는 도저히 안된다.
게다가 비라도 오면 기온은 급 강하 한다. 대략 북위 45도 정도에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사진의 배경으로 보이는 구름이 짙게 깔린 건물위의 하늘에서 해리포터가 빗자루를 타고 내려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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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좋은 카메라로 사진질하며 돌아다니는 취미는 없지만, 이 사진은 300만 화소 짜리 디키로 찍은 사진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사진이다. 클릭해서 확대해서 보면 환상적이다.


피카딜리하면 종로에 있던 피카디리극장이 먼저 생각난다.
종로 4가 쯤에 있던 단성사와 쌍벽을 이루던 극장이었는데 지금은 둘 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런던의 피카디리 써커스(로타리)근처에는 수십개의 연극무대와 영화 상영관이 있다.
어떤 연극은 이미 몇십년전서 부터 지속적으로 하던것이었고,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초연(?)을 하고 있는 미스 사이공도 이곳에서 대단히 장 기간 공연중인 것을 한국에 가져가서 하는 것으로 알고이다.

피카리디 써커스의 중심에는 아래의 사진에 있는 장소가 있는데, 별 할일없이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저 무료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혹은 앞쪽은 대형 코카콜라 간판만을 30분 이상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하긴 나도 오래 보긴 봤지만...)

가끔씩 술 취한 한 무리의 인도 소녀들이 거의 팬티를 다 내놓고 큰 소리로 떠들며 걸어 다닌다. 그리곤 무수한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바삐 움직인다.
그게 전부다. 특별히 볼 것도 없다.
하긴 불구경하고 사람구경이 제일 재밌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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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대략 북방과 남방계통을 대별 짓는 큰 특징을 살펴보자면 북방계통은 호탕하면서 덜렁거리고, 남방계통은 정교하면서 소심하다.

추운 기후 때문인가? 대부분 남방계통의 사람들의 체구는 북방계통의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작다. 베트남 사람들도 특수 중국계를 제외하고는 신장이 작다. 남자는 거의 170 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여자 또한 160 넘는 사람들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중국계통의 사람들은 제외하고)

현재는 사회주의에 찌들려서 서로 감시하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약간은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비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베트남 인 들이지만, 과거 프랑스에 의한 150년간 피지배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호치민 같은 사람들이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 싸운 반면, 남쪽의 흥청대던 도시 사이공 같은 곳에서는 서양문화를 그대로 만끽하고 있었던것 같다.
베트남 현지 직원들에게 "1960년대에서 70년대에는 너희들이 한국보다 훨씬 더 잘살았어" 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들이다.

그들은 한국을 마치 원래 부터 아주 잘 살던 나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한국은 지금도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베트남 전 이전에도 월남치마라는게 최신 유행처럼 한국을 휩쓸었으며, 베트남전에 나갔던 김상사가 보내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그 시대 최고의 재산 이었다.
즉, 당시의 사이공과 필리핀의 마닐라는 동남아 최고로 부를 이루며 흥청대던 도시들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외국인을 경외한다. 즉 외국인에게 해꼬지 하는 베트남인들은 별로 없는것 같다.
그러나 아주 못된 습성들이 있다.
그건 바로 뒤에서 남을 씹는다는 것이다.
작은 체구의 남방계통인들의 습성에 사회주의의 영향이 적지 않게 결합되어 아주 나쁜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중국 남부의 공장들에서도 나타난다.

월요일 아침 기분좋게 9시 이전에 회사에 나와 앉아 있으면 9시 10분 20분쯤 얼굴을 비치는 직원들이 있다. 물론 내 눈치를 보며 "Sorry Mr. Park!" 이라고 한마디 하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우리가 라인을 돌려야하는 공장도 아니고 일반 무역사무실이기 때문에, 그정도야 왠만하면 그냥 넘어가지만 언젠가는 굉장히 기분나빴던 때가 있었다.

하루는 여직원이 그 전날 늦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9시 20분정도에 출근을 하였다. 난 약 10시 쯤 모두를 불러 놓고 회의식으로 잡담을 하였다.
당연히 그 여직원에게는 왜 늦었냐고 물어 봤다.
그 여직원은 차가 막혀서 그렇단다.

"넌 오토바이 타고 다니잖아! 막힐 일이 별로 없을것 같은데?"
"아니요. 제가 다니는 길이 어제부터 공사를 해서 막혀요!" 라고 변명을 한다.

"어제부터 공사 하는것을 알았다면 다른길로 왔으면 됐잖아.!"
"그게 아니구요... 아침에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계속 이런식으로 끊임없이 변명을 한다.

그냥 클하게 "내일 부터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안돼나? 그러면 화내던 이의 마음도 그대로 풀리면서 즐겁게 일 할수 있을텐데, 그 끊임없는 넋두리와 변명, 정말 지겹다.
이것은 비단 그 여직원만이 아니다. 사무실에 있는 10명 정도의 그것도 전부 국립 하노이대학, 국제경제대학등에서 공부한 나름대로의 수재들이 다들 그런식으로 변명한다.

몇몇의 눈치빠른 친구들은 내가 뭐라고 할 때면 바로 수긍한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뒤끝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 조차도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것은 아님을 쉽게 눈치 챌 수있다.

길을 걸어 가는데 자전거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를 쓱 한번 보더니 그냥 가려고 한다. 난 자전거 뒤에 짐 싣는 곳을 잡았다. 그 사람은 앞으로 못나가고 버둥거리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난 베트남 말로 "당신 사람을 치고 갔으면 최소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거 아니야?"
그 사람은 그게 아니고 자기 옆으로 방금 오토바이가 쎄게 지나가서 그걸 피하려다가 나와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아까 오토바이가...."  계속 이런식의 끊임없는 변명이다.
어휴~~ 니미럴 속터진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가 그런게 아니라고 한다. 원래 자기가 일부러 의도해서 나를 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나는 이미 가버린 오토바이 탄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다.

위의 이야기를 저녁에 맥주 마시면서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니들 솔직히 내가 한 얘기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그랬더니 한결같이 자전거 탄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다.

"그러면 오토바이 탄 사람의 잘못이야?"
전부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단다.

"그럼 만일 오토바이 탄 사람이 내게 와서 도로사정이 않좋아서 웅덩이 피하려다 그런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꺼야? 그때는 누구 잘못이야?"

여기서 부터는 말이 없다. 난 속으로 참 그 자식들 책임감 X도 없네...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도로를 개 보수할 책임이 있는 시 정부 책임이네?"
....몇몇 직원들 묵묵 부답, 몇몇 직원들 YES!.....

"그러면 시정부는 예산이 없어서 못 했다고 할꺼 아니야? 그러면 국가 책임이네? 그치?"
....전부 묵묵 부답....

"국가가 발전 못한건 국가의 체제 때문이야? 아니면 국민의 노력이 없어서야? 누구 책임이야? 미국 책임이야? 소련 책임이야? 아니면 조상 책임이야?"
......묵묵.................,,,,

"그러면 나는 도데체 누구한테 가서 사과 받아야 하는데? 내가 다쳤으면 치료비는 누가 물어 주는건데? 내 말 무슨 말인줄 알겠어? 그냥 나를 치고 간 그 자식이 잘못 한거야!! 알어? 왜 책임을 남에게 전가 시키려고 해?"

"그래 니미 돈 벌러 이곳 베트남 까지 기어온 내 책임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내가 잘못한거야... 그치? 됐니? 이제? 이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정답이니?"

거기서 계속해서 그들 앞에서 사회주의 어쩌고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거기 까지만 이야기 했지만....,

베트남인들이 저러한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남방계통의 소심함과 사회주의의 통제가 어울어져 어떻해서는 순간 닥친위기를 모면하는데만 급급해 하는데서 기인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위로 받고 용서를 받는게 아니라 바로 인민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회체제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복수...
중국 남방과 베트남에선 사람 뽑기는 쉬워도 자르기는 무척 어렵다. 잘 못 사람은 자르다가는 길거리에서 칼 맞기 쉽상이다.
그래서 직원을 뽑고 자르는것에 왠만하면 한국인 관리자가 간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 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현지의 매니저를 시켜서 그들을 뽑고 교육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직접 화를 내거나 타인의 면전에서 무안을 받고 퇴사를 강요할 경우에는 정말 밤거리에서 뒷통수 조심해야 한다. 칼 맞은 사람 이야기를 현지에서 들어보면 칼 맞기 바로 전 날 밤에도 같이 술을 즐겁게 마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치사함이다.
사장이나 관리자가 사람을 내 보낼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만일 이유가 없다면 "저 직원과 얼굴 맞대고 일하고 싶지 않다" 라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칼 들고 복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말은 못하고 항상 가슴속에는 복수를 꿈꾼다.
비록 그 복수가 자기 살아 생전에 달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20년전 부모님의 원수 내 칼을 받아라.." 뭐 이런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아주 적절한 이유가 있어서 당연히 내보내야 할 때도 왠지 꺼림직 하다.

나의 경우에는 북수 보다는 주로 배반이 많았던것 같다.
내가 거기가서 공장을 한것도 아니고 무역회사 현지법인을 했기 때문에 직원도 정예로 6-10명 정도만 있으면 됐었다. 그리고 하노이 시내에서 가장 좋은 빌딩에 아주 넓게 입주해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도 만족해 했고,
나도 항상 사무실내의 냉장고에 요구트르와 아이스크림 항상 채워 놓고 아무나 심심하면 집어먹게 만들고, 사무실 전체를 카페처럼 꾸며 놓고 탁구대도 하나 들여 놓을 정도로 직원들을 최고로 대해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경쟁사에게 오퍼경합에서 밀린다는것을 알았고, 매니저와 다른 직원들을 다구친 결과, 어떤 여직원이 우리 가격표를 빼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직원을 불렀다.  왜 그랬냐고 했더니 그냥 가만이 고개 숙이고 앉아있다.
그래서 더 이상 화 내기도 싫고 해서 "자 지금 바로 일어나서 나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일어나더니 컴퓨터 앞에서 주섬거린다.
" Lan oi (란은 그 아이의 이름)~~ 아무것도 만지지말고 그냥 가 ! 아무것도 프린트 하지말고, 아무 디스켓도 건들지 말고 그냥가!!" 라고 했다.
그녀는 디스켓은 자기 것이라서 가져 간다고 하길래 "그럼 디스켓 줘봐!!"

그리고 디스켓의 파일을 본 결과 회사의 중요 서류가 거기 다 들어 있다.
그냥 헛 웃음만 나왔다.
나는 디스켓을 깨끗하게 지우고 공디스켓을 돌려 주었다.

전혀 죄책감도 책임감도 없다. 그냥 대가리에는 아무 생각도 미안함도 없는것 같다.

또 다른 케이스로는 일만 배우고 다른 회사로 가 버리는 경우다. 그것도 경쟁회사로 가버린다.
일말의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런데 더 더욱 미치겠는 것은 경쟁회사에 다니는데도 우리회사의 직원들은 여전히 그와 통화하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술을 마신다. 그런 상황에서는 참 갑갑하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로 치사하게 옮겨 간 사람은 안 만나지 않나?
이무튼 베트남에서는 도데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현지화! 그거 똥밟는 얘기다. 나 만큼 현지화 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도 된다. 난 항상 그들과 부대끼고, 그들이 먹는 거 먹고, 그들이 자는 곳에서 자고, 그들의 의견 100% 수용하며 정말 친해지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상당 부분 아직까지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너무 현지화 되서 그들이 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으로 남았으면, 적당히 속이고 적당히 눈 감아주고,
다른 외국인 처럼 베트남 말도 잘 못하고,
항상 어리둥절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어 웃음을 유발하는 그런 외국인으로 비춰지는게 오히려 그 쪽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방법일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마치 우리나라 TV 에서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는 멍청한 외국인들 처럼... 나도 그렇게 그들과 접촉했었다면 더 좋았을것을...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난 향후 베트남에 가더라도 사업은 안할 것이다.
그저 식당이나 하나 차려서 난 낚시나 다니고, 직원들 알아서 경영하고 먹으라고 하고..
베트남에서 대가리 쓰는 경쟁적인 사업에는 진절머리가 난다.

혹시 한다면 공장이면 모를까....

흐르는 곡은 Saigon Dep Lam 이라는 곡임. 말 그대로 사이공 너무 아름답다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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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베트남 호치민 공항이건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이건 일단 비행기가 도착하면 사회주의 국가답게 공안원들의 무뚝뚝하고 불친절함 과의 첫 대면이 시작된다.

그리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올 때 까지도 정신이 없어서 깨 닳지 못한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와서 짐을 대충 풀고 거리로 나가 야지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게 있는데, 바로 베트남 여자들의 웃음이다.

정말 약간 과장해서 오해 한다면 길거리의 여자들이 전부 나에게 꼬리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될 정도로 항상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대한다.
길거리에 흰색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학생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바로 빵끗하면서 수줍게 웃고 지나간다.

그래서 한때 나는 한국에 와서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베트남 여자들? 내가 손만 내밀어도 다 달려와!" 라고 농담을 했던 적도 있다.

한때 너무 선정적이라 하여 여학생들에게 흰 아오자이를 못 입게 한적도 있었다. 아오자이는 거의 치폰 이나 도비계열의 얇은 원단으로 만드는데 속에 입은 땡땡이 무늬 팬티 까지도 다 비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을 살리자는 의미로 슬그머니 다시 입게 되었다고 한다. 한가지 웃긴 것은 어떤 여학생이 생리 중 이라는 게 금방 티가 난다. 학교에 아오자이 교복을 안 입고 체육복 같은 것을 입고오면 그 여학생은 100% 생리 중 이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베트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건 가라오케 이다. 가라오케는 우리나라의 룸 싸롱 혹은 단란주점 하고 비슷한데 그리 퇴폐적이지만은 않다.

난 심심하면 가라오케를 간다. 베트남의 대형 가라오케는 아가씨만 해도 4백 명이 넘는 곳도 있다. 일단 손님이 들어가서 앉으면 마담이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아가씨들이 약 10명 정도 들어 온다. 그러면 성급한 초보자들은 바로 아가씨는 선택한다.


그러나 베테랑들은 다음 줄을 기다린다. 그래서 약 50명 정도가 지나간 다음 마담에서 “아까 3번째 들어온 줄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아가씨 불러줘” 뭐 이런 식으로 초이스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조차 초보들이다. 정말 우리 같은 베테랑들은 그런 호화 대형 가라오케는 아에 가질 않는다. 그냥 하노이 뒷골목에 조심스럽게 조명을 내고 있는 로컬 가라오케를 주로 간다. 이런 곳에서는 아무리 먹어봐야 하룻밤에 3-5만원 밖에 안 나오고 내 집같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접은 왕처럼 받으면서…

이런 곳의 아가씨들은 늘씬하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간혹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 할 수도 있고 나름대로 순수한 것 같아서 좋다.


보통 흔히 bar 같은 데서 마시는 하이네켄 맥주 작은 병이 약 1천원 정도 밖에 안 한다. 그래서 한 박스씩 시켜놓고 마신다. 나는 양주를 안 좋아해서 시키지 않지만 사실 이런 곳에는 양주 조차 없다. 안주로는 주로 과일을 시키는데 열대과일이 아주 큰 쟁반으로 푸짐하게 나온다. 근데 그 과일도 그 곳에서 파는 게 아니고 우리가 과일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밖에 나가서 사가지고 한번 씻어서 그대로 주는 것이다. 물론 돈은 우리한테서 가져간다. 단 한 푼의 마진도 안 붙이고 그냥 사서 주는 것이다. 한국 돈 2천원만 줘도 과일을 엄청 많이 사온다.


내가 한번은 “왜 과일을 여기서 안 팔고 밖에서 사다 주냐?” 라고 물어보지 주인의 말은 “그거 얼마 한다고 파냐?” 뭐 이런 식이다.

아가씨들 두 세 명이 수줍게 들어 오면, 대충 가릴 것도 없이 아무나 앉으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골라봐야 전부 비수무리 하다.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으면 반려한다. 그러면 바로 다른 아가씨들이 들어오는데 별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아가씨의 팁은 한국 돈으로 대략 8천원 정도인데 외모나 싸가지가 우리나라의 5만원 하는 아가씨들 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절대 손님의 과일이나 술에는 손 대지 않는다. 우리가 굳이 먹으라고 해야 그때서야 먹고 자기들은 따로 음료수 시켜 먹는 정도이다.


한가지 웃긴 사실은 이 아가씨들이 퇴근할 때쯤이면 문밖에 아빠나 오빠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간다.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못 믿겨서 넌지시 물어보면 진짜로 친 오빠 친 아빠다.


더 웃긴 사실은 그 아가씨들이 가끔 야식 먹으러 가자고 제의 한다. 그러면 근처의 새벽까지 하는 Pho (쌀국수) 집에 간다. 말이 쌀국수 집이지 그냥 길거리에 있으며 조그만 의자에 히프 붙이고 쭈그려 앉아 먹는 곳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파는 것 같은데 현지에서 먹으면 대략 한 그릇에 한국 돈 450원 정도이다. Pho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Pho ga(닭고기 국수), Pho bo(소고기 국수)이다. 베트남 특유의 향채들과 식초 그리고 새끼 손가락 만한 고추 한 숟가락 넣어서 아주 맵게 먹으면 속이 확 풀린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갈 때면 오빠라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기다린다. 나는 몇 번이고 친 오빠냐고 확인 하면 그렇단다.

마치 “금순아 xx 팔아 제대시켜라” 뭐 이런 군바리 노래 가사 속의 풍경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어떻게 자기 동생이고 딸들이 웃음과 술 파는 곳에 다니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업소까지 바래다 주고 데리러 갈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할 정도다.


그저 내가 특수한 경우를 본거겠지 라고 말 하기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의 아가씨의 부모나 오빠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해도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정말 착하다. 아니 너무 순진해서 자기가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 조차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섹스관광 어쩌고 하는데 나 같이 그 곳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공안국의 경계대상 1호 이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의 일거수 일수족을 매일 감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몇 시에 들어왔다 나간 것까지 체크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매춘이 금지 되어있기 때문에 외국인 남자하고 현지의 여자가 호텔에 못 들어 간다.

호텔 로비에서 감시원들이 있어서 절대 못 들어 간다. 물론 관광객들은 대충 어떻게 해서 베트남 여자를 호텔로 불러들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전적으로 그 여자가 호텔 관계자에게 짜웅을 하든지 그런 식으로 해서 여자 스스로 들어 오는 것이지 공식적으로 팔짱 끼고 호텔방 까지 절대 들어 갈 수는 없다.


, 고급 호텔이 아닌 경우에는 감시원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긴 사람 사는 세상인데 하고자 하면 뭔들 못 하겠냐 만…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남녀관계 라든지 성 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것 같다. 일반 공원이나 호수가에 가면 오토바이 위에서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작은 100cc급 오토바이(우리나라 짜장면 배달용) 위에 남녀가 둘이 마주보면서 올라타고 있는 것 자체가 거의 신공에 가까울 터인데 게다가 그 위에서 별 지꺼리들을 다한다.

성기만 결합하지 않았지 정신적으로는 이미 몇 번 사정 했을법하게 진하게 논다. 그것도 그 좁은 오토바이 위에서….

공원에서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있는 커플을 보기란 어려운 게 아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게 고목나무에 매미 붙어 있듯이 오토바이 위에 올라가 있다. 아마 그게 유행인건지도 모르겠다.


하노이의 서호의 한 기슭에는 아주 어두운 카페들이 많다. 아주 커다란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달빛조차 안 비친다. 종업원들은 랜턴을 들고 다니는데 커피 같은 것을 가져다 주고는 다시는 그 자리로 오지 않는다. 노천 카페인데 옆 자리와의 거리가 꽤 되어서 둘이 완전히 벗고 뭔가를 한다 해도 알 길이 없다.
다만 그 소리가 그들의 행위를 짐작하게 해 줄 뿐이다. 내 생각에는 하노이의 젊은 연인들은 여관에 갈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아예 여관에는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곳을 찾나 보다.

물론 그것도 일부분의 그나마 놀러 다닐 여유가 있는 대 도시의 잘사는 남녀의 경우이다.


베트남 여자들은 상당히 수줍어하면서도 할 건 다 하면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성적으로 개방됨이 순수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는 없겠지만, 낮에는 회사 다니고 밤에는 가라오케에서 일 한다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 같다.

우리나라 여성들 같으면 마치 커다란 비밀이고 자신만의 고민 같은 것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그쪽은 아르바이트 하나 더 한다는 식으로 아주 단순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가라오케에서 근무 한다는 것이 단순하게 노래나 부르며 손님을 서비스 하는 게 아닐진대

그들이 이중적인 것일까? 아니면 내 생각이 오염되어서 그들을 이상하게 보는 것 일까?

‘아마 내 스스로 아직 세계화가 덜 돼서 그런 것 일 거야’.. 라며 그들을 이해 하려고 노력 했다.


모든 사물에는 밝은 면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 스스로가 그것을 어두운 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보는 제 3자가 굳이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고 내 삶의 내 스스로 못 보는 어두운 면을 그들은 봤을 수도 있다.


한가지 단순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트남에 가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소녀들이나 가라오케에 근무하는 아가씨들이나 모두들 수줍어하고 사람을 어려워 한다는 점이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Xin Chao Anh …


그들의 웃음 뒤에 어두운 면이 있건 말건 그런 건 관계없다. 항상 남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여주는 그 들이 너무 좋다.




Lemon Tree - Fool'S Garden--

이 노래는 베트남 아가씨들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이고, 하노이 시내를 걸어다니면 항상 흥얼 거리듯 들리는 노래이다.

I'm sitting here in a boring room
It's just another rainy Sunday afternoon
I'm wasting my time, I got nothing to do
I'm hanging around, I'm waiting for you
But nothing ever happens -- and I wonder


난 여기 지루한 방에 앉아있어
또 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지
그냥 시간 죽치고 있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네
방안을 빙빙 돌면서 너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궁금하단 말야.

I'm driving around in my car
I'm driving too fast, I'm driving too far
I'd like to change my point of view
I feel so lonely, I'm waiting for you
But nothing ever happens, and I wonder



내 차 안에서 뒹굴면서
빨리, 그리고 멀리 운전하는 중이야.
내가 보는 삶의 관점을 바꾸고 싶어
너무 외로워. 너를 기다리는 중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겠지.... 궁금하단 말야.

Chorus:
I wonder how, I wonder why
Yesterday you told me 'bout the blue blue sky
And all that I can see is just a yellow lemon tree
I'm turning my head up and down
I'm turning, turning, turning, turning, turning around
And all that I can see is just a yellow (another) lemon tree
La, la da dee da, etc.


난 궁금해... 어떻게... 왜
네가 어제 나에게 푸른 하늘에 대해 말한 건지...
그런데도 내가 보는 건 온통 노란 레몬 나무 뿐이야.
내 머릴 위 아래로 마구마구마구 흔들어대도
그런데도 내가 보는 건 온통 노란 레몬 나무일 뿐인 걸.
라라... 다다...

I'm sitting here, I miss the power
I'd like to go out taking a shower
But there's a heavy cloud inside my head
I feel so tired, put myself into bed
Where nothing ever happens -- and I wonder
Isolation is not good for me
Isolation -- I don't want to sit on a lemon tree
I'm stepping around in a dessert of joy
Baby anyhow I'll get another toy
And everything will happen -- and you'll wonder


여기 기운 없이 앉아서
나가서 샤워나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내 머릿 속이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한지라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푹 쓰러져버리지.
어디가도 변하는 게 없는 걸... 궁금하단 말야
고립이라는 건 내게 좋은 게 아냐
고립... 나 앉아서 레몬나무 보는 거 싫은데.
즐거운 디저트 속에서 이리저리 휘졌고 있지.
어쨌든 또 다른 즐길 거리를 찾고 말겠어.
그러면 주변 모든 것이 변하겠지... 그럼 넌 궁금해 할테고.

Repeat Chorus
I wonder how I wonder why
Yesterday you told me 'bout the blue, blue sky
And all that I can see
And all that I can see (dit dit dit)
And all that I can see is just a yellow lemon tree

난 궁금해... 어떻게... 왜...
넌 어제 나에게 푸른 하늘에 대해 말한 건지...
내게 보이는 모든 건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내가 보는 건 온통 노란 레몬 나무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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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베트남만 가면 즐거운 것이 바로 술값이 싸다는 점이다.

하노이시의 Hai ba trung(하이바쯩) 24번지 던가? 번지수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곳에 생맥주 집이 있다. 생맥주는 베트남어로 Bia Tuoi(비아 뜨어이) 라고 하는데 한잔에 베트남 돈 만동(Dong은 베트남 돈의 세는 단위) 이면 500cc를 준다.
베트남 돈 만동이면 한국돈으로 약 900원 정도 이며 상당히 싼 편이고, 맥주맛도 좋다.
거의 이런 맥주집은 베트남 산이 아닌 Lowen broi(뢰벤브로이) 같은 맥주를 쓴다.


거의 하루의 일과에 녹초가 되면 난 거의 매일 이곳을 들렀다. 여러 직원들하고 같이 가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하는데 아무튼 거기가면 또다른 외국친구들(체코, 프랑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아마 유럽에서 최혜국으로 대우해 주는 나라라서 그런지, 아니면 프랑스에서 과거 식민지였다고 여러가지를 제공해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 스페인의 프레이메라 리그 의 전 경기를 다 해준다.

밤 시간은 그저 TV만 틀면 유러피언 축구 리그를 해 주는 것이다. 저렇게 전경기를 우리나라에서 다 해준다면 방송 중계권 료도 엄청 날텐데...(아무튼 베트남은 유럽에서 축구 중계권 지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생맥주집은 2층으로 되어있고 2층의 공간은 밖을 향해 뚤려있다. 거의 발코니 형식에 가깝다. 나와 우리 일행이 너무 자주 가니까 아에 창밖에 가까운 발코니 자리는 주인 혹은 종업원 들이 알아서 항상 비워 놓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맥주 집은 베트남 현지인에게 있어서는 가격이 만만치 않은것이다.

베트남인들은 생맥주 Bia Tuoi 보다는 Bia Hoi(비아허이) 라는 생맥주를 많이 마신다. 맛은 마치 생맥주에 물탄맛이다. 이런 맥주는 한잔(500cc잔에 마시지 않고 우리나라 병맥주 컵 보다는 더 큰 잔에 마시는데, 그 따르는 과정이 지저분 하다.

맥주통에 약 직경 0.5센치 정도되는 호스가 딸려 있고 손님이 맥주를 달라고 하면 주인이 입으로 빨아서 조금 나오게 되면 컵을 최대한 아래로 내려서 한잔 받아준다.
그리고 다 따르면 다시 맥주통 꼭대기 근처에 매달아 놓은 고무줄에 호스 입구를 끼워 놓는다.
그러면 파리들이 기다렸다는듯이 호스 끝쪽으로 모여 남은 맥주를 빨아 먹고, 그 주인은 다시 그 끝을 빨아서 맥주를 빼내는 순환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이런 Bia Hoi는 약 2000동 에서 3000동 한다. 한국돈으로 200원에서 300원 정도 하는것이다.


생맥주 집이라 하여 한국처럼 땅콩이나 치킨정도가 나오는것이 아니라, 요리를 시켜서 먹을 수도 있다.
나는 주로 개구리 뒷다리를 야채에 싸서 튀겨낸것, 비둘기, 큰새우들을 잘 시켜 먹었는데 정말 맛이 좋다.

하노이에서의 여름과 가을에는 주로 오토바이 뒷꽁무니에 타고 Ho Tai (호따이, 西湖라는 뜻임) 호수 근처에 있는 달팽이 요리집에 자주 간다.

달팽이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먹기 시작 했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 식용하는 달팽이는 흰바탕에 점이 있는 그런 종류인데, 베트남에서 먹는 달팽이는 유명식당을 제외하고는 전부 우리나라 논에 있는 우렁이다.
이 우렁을 고추와 향료 같은것을 넣어서 삶아서 한바가지 아무렇게나 내오면 그걸 좋다고 여럿이 모여서 옷핀 같은것을 가지고 까먹는 것이다. (실제로 우렁 속살 파 먹으라고 옷핀을 줌)

그러면 두런 두런 모여 않아 호수를 바라보면서 하노이 맥주와 함께 우렁을 까 먹는다.
바로 이런 로컬냄새 물씬 풍이는 곳에서 바로 생맥주 Bia Hoi 를 파는 것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즐겁게 생활하는 그들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그저 그 곳에서 옷핀으로 달팽이나 까 먹으며 그들과 즐겁게 평생을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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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TAG 베트남


어제 어떤 후배가 보내준 사진에서 잊고 지냈던 베트남의 추억이 새삼 떠 올랐다.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 神功에 관한 사진들 이었는데 100cc짜리 짜장면 배달하는 오토바이 위에 사람이 5명이 올라타고도 움직인 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이 들은 잘도 다닌다.

베트남에는 시내버스가 없다.
오로지 개인 교통수단만 있을 뿐이다. 특히 자전거가 가장 많이 이용되며,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근데 이 오토바이 구입과정이 정말 만만치 않다.
아래의 사진에 주로 사용되는 혼다 100cc 오토바이(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국집 배달원들이 탐)를 가장 선호하는데 신형이 미화 2,500불 정도 이다.
한화 250만원 이니까 상당히 큰 돈이다. 이상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돈 100만원도 안하는데 왜 가난한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가격의 2.5배에 판매가 되는지 설상가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월급이 50불도 안된다고 볼때 저런 오토바이를 구입하기란 정말 힘든것이다.
그래서 한집에 3식구가 일을 한다면 그 세사람이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5-6년만에 큰맘먹고 한대를 장만한다.
그러면 아빠가 아침에 자녀 학교까지 바래다 주고 그 다음으로 와이프 직장까지 바래다 준 다음 자기의 직장으로 향한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은 아침부터 여기저기 정신 없이 돌아 다녀야 한다.

우리 회사에 어느 여직원이 처음 와서 오토바이를 사무실 앞에 까지 가지고 들어 온적이 있다.
내가 당연히 "지금 무슨짓이냐" 라고 야단 쳤는데, 사정을 알고보니 현지의 로컬 회사들은 그렇게 해도 내버려 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토바이가 그들의 생활 수준에 비해서 워낙 고가 이기 때문에 거의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는 것이다. 밤거리에 그냥 서 있는 오토바이는 단 한대도 없다.
베트남 업자들의 기술이 워낙 뚸어나서 완전 쓰레기 같은 엔진 하나만 있어도 약 3-4일 만에 드럼통을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페인트 칠하고 해서 신품과 거의 똑같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다. 밤거리에 오토바이를 세워 논 다는 얘기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그랜저를 차 문 다 열어두고 키를 꽂아 둔다는 얘기와 같은 상황 일것이다.
그러므로 오토바이는 반드시 각자의 집에 보관 한다는 것이다.
혹 집에 안 마당 같은게 없으면 거실까지 끌고 들어와서 보관 한다.
나는 그 이후 그 여직원에게 앞의 주차장에 세우라고 하고 주차장 비를 월급에 더 얹어준 일이 있다. 그 주차비라고 해봐야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1-2백원 밖에 안한다.
그 직원은 그래도 불안한지 수시로 주차장에 가서 오토바이 평안 하신지 확인 하고 왔다.
거기 까지는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내버려 뒀지만 아무튼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한대 가지고 있다는것은 우리나라에서 3식구에 자동차가 3대가 있다는 것과 맞 먹는 개념이다.
그럼 일반 오토바이도 없고 자전거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닐까?
일반 시내버스가 없기 때문에 주로 걸어 다니거나 남의 오토바이 혹은 이웃집 자전거를 얻어 타고 다닌다.
근데 희한한 것은 잘 걸어다니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잘 걸어 다니는데 그 쪽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나를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보는 모양이다.
'돈도 많은 사장이 왜 걸어 다니지?' 뭐 이런 투 이다.
물론 좀 먼길은 당연히 택시타고 다니지만 왠만한 짧은길은 걸어다니는데 그 조차도 그들의 눈에는 신기한 모양이다.

택시 다음으로 씨클로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서 자전거로 손님을 태우는 인력거 이다.
근데 웃긴것은 손님이 자전거의 앞 부분에 타게 되있어서 도로를 질주 할때는 두려움도 느낀다. 왜냐하면 손님의 몸을 움직여서 방향을 전환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히한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로 영업하는 사람들이다. 근데 이런 사람들을 Xe-om(쎄옴)이라고 부른다. Xe 라는 말은 한자와 우리말의 車에 해당하고 om 이라는것은 "매니아"(?) 혹은 집착을 하거나 혹은 벌레(?) 그런 의미로 사용한다. 즉 오토바이에 하루종일 기생해서 붙어 잇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응용해보자면 Karaoke-Om (가라오케 옴)이라는게 있는데, 노래방, 가라오케 죽돌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근데 더 웃긴것은 이런 사람들을 부를때 꺼리낌 없이 "Xe-om oi~~" (쎄옴 어이~~)라고 꺼리낌 없이 부른다는 것이다. 마치 어이~~노래방 죽돌이 이리와봐..
이것과 같은 뉘앙스 인데도 그 들은 별 개의치 않는것 같다.
각설하고,
베트남 쎄옴들의 신공 사진을 감상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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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하노이에서의 휴일은 정말 한가하다.
평일날의 바쁜 오토바이 떼도 사라지고, 그저 무더위에 한가로움만 더 한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냥 오로지 만만한건 미혼인 직원들뿐이다.
물론 스케줄이 있는 직원은 빼고.....,

통상적으로 일요일이면 낚시를 하러간다.
난 직원들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거나 벤츠나 BMW를 대절해서 간다.
한국에 있었으면 상상도 못할 호강이다.
차를 대절해서 가봐야 미화 20불이면 되기 때문에 정말 부담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우습게도 봉고차 같은 후진차가 더 비씨다.
아마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어서 인가 보다.

아무튼....
하노이 시내에서 비행장으로 가는길에 홍강이 있다
그 강을 건너면 본격적으로 농촌이 나타난다.

베트남을 비행기 위에서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나라이다.
일년내내 푸른 모가 심어져 있고, 그 바로 옆에서는 수확을 한다.
그리고 어느 동네든 꾸불꾸불 강물이 지나간다.
게다가 작은 호수들은 거의 집마다 하나씩 있는것 처럼 많이 있다.
낚시는 바로 이런 호수에서 한다.
대개는 농부이면서 호수에 잉어, 붕어,메기들을 기르고 때가되면 시장에 내다판다.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 이다.
낚시밥은 바게트빵이다.
바게트빵을 잘라서 속 살을 손가락으로 짓 이기면서 말으면 금세 점성이 강한 풀 처럼 된다.
그것을 낙시바늘에 매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낚시 바늘이 아니고 낚시줄에 매단다.
베트남 낚시의 Hook은 갈고리처럼 생겼다.
우리나라 낙시 훅 처럼 고리처럼 생겨서 거기다 미끼를 다는것이 아니라.
다섯 손가락 처럼 되어있는 훅의 중심에 낙시줄을 연결하고 그 낙시줄에 빵을 돌돌 뭉쳐서 매달아 놓는 것이다.
그러면 모양이 다섯개의 갈고리 중심에 수직으로 낙시줄이 있고 그 낙시줄에 빵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고기는 미끼가 안달린 갈고리를 물지 않는다.
낚시줄에 매달린 빵조각을 먹으려고 덤빌때 고기의 움직임에 의해서 찌가 흔들린다.
바로 그때 낙싯대를 힘껏 올린다.

그러면 고기가 낚여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힌 고기들은 주둥이에 갈고리를 물로 나오는게 아니라.
5개의 갈고리에 대가리나(주로 대가리) 몸통이 찍혀서 나오는 것이다.
일종의 훓치기 낚시인 셈이다.

그러므로 절대 찌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쳐서는 안된다.

한국의 일반 낚시처럼 대충 떡밥이나 지렁이 매달아두고 화투나 치다가 방울소리나면 건저내는 그런것과는 전혀 다르다.
눈이 빠질 정도로 찌만 쳐다봐야 한다.


베트남 낚시에서 가장 좋은 점은 일단 고기가 크다는 점이다.

한번은 잉어를 잡는데 언뜻봐도 길이가 60센티는 되 보였다.
아무리 챔질을 해도 딸려 오지도 않고 낚시대만 부러질것 같았다.
그래서 팽팽해져서 더이상 버티면 낚시대가 부러질 수도 있다고 판단 되었을때 낙시대를 손에서 놔 버렸다.
그러면 그 호수 주인집 아들 같은 10세 정도의 소년이 바구니 모양의 배를 타고 낚시대를 따라가서 뜰채로 잉어를 건져 왔다.

잡은 고기는 직원들 나눠주고 몇 마리는 그 자리에서 요리해 달라고 해서 먹는다.
거의 찜 형식의 요리에 생선소스(우리나라의 멸치액젓 같은 맛)를 찍어 먹는다.
그리고 당연히 맥주나 베트남 밀주(대충 동동주 비스무리 한데 맛은 더 좋다)를 곁들여 마신다.

수호전의 양산박 생활이 따로 없다.
정말 호젓하고 상쾌하다.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일종의 희열도 포함 되어 있었다.

베트남...
남들은 미국 유럽등에 이민을 간다고 하지만, 난 나중에 베트남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
순박한 미소, 사람에 대한 경외심 (사회주의에 쪄들은 못된 타성만 제외 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단어 일 것이다.

최근 국제결혼 회사에서 거의 매매형식으로 2-3일만에 베트남 신부를 데려 온다고 한다.
물론 내가 현지에 있었을 때도 알고 있었다.
난 동남아를 돌아다니면서 내 국적을 일부러 얘기 안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냥 그들과 맑게 교류하고 싶은데 나도 일부 어글리 코리안으로 비춰질까봐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아무튼
베트남 정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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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며칠전 강남 신세계 백화점 갔다가 베트남 쌀국수라는것을 처음 먹어봤다.
정확히 말해서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 쌀국수를 처음 먹어봤다는 얘기다.



난 불과 3년전 까지만 해도 일년에 6개월 이상을 베트남에서 지냈었다.
베트남에서의 하루일과는 단순했다.
아침 9시까지 지사에 나가서 하루종일 바이어들 5-6명과 상담을 하면 완전 녹초가 된다.
그리고 일 끝나면 바로 맥주집으로 직행한다.

시내 하이바쯩 24번지에 있는 Bia Tuoi (생맥주)집에 직원들 혹은 베트남에서 만난 바이어 그리고 외국 친구들과 밤 12시까지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 보면서 술을 마시다 호텔로 들어갈 무렵 속을 달랠겸 먹는게 바로 쌀국수 (Pho) 다.

쌀국수중에서 나는 Pho Ga (닭고기 찢어서 넣은) 를 가장 좋아했다.
체격이 작은 베트남 애들의 한그릇으로는 배가 채워지지 않아 주로 한번에 두 그릇씩 먹곤 했다. 그것도 청양고추보다 더 매운 남방의 작은 고추를 마구 넣어서..

Pho Ga 는 5천동(약 한국돈 450원)이었다.
근데 일단 이런 음식 파는곳은 길거리에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쭈구려 않아서 먹어야 했다.
마치 어렸을때 달고나 또뽑기 파는곳에 어린애들 옹기종이 앉아서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 옆으로 작은 토끼만한 쥐가 지나가기도 한다.

거기서 파는 닭발, 닭모가지, 닭간 등도 상당히 맛이 있다.
특히 닭고기는 물에 삶은것이 아니라 증기로 쪄낸듯 굉장히 쫄깃쫄깃 하다.
한국에서도 길거리에서 저런 장사하면 굉장히 잘 될듯 한데..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배워와야 겠다.

아무튼 현대적인 신세계강남점에서 한그릇에 5천원이나 주고 한그릇을 먹었는데 맛이 정말 없다.
오리지날 맛이 아니다.
하노이의 어느 골목길에서 선량하게 생긴 부부가 말아주는 그맛이 안난다.

이제 6월이 가고 내 신변의 문제가 해결되면 미얀마와 베트남에 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정겨운 베트남 사람들과 한달간만 어울려 지내고 싶다.
그리고 저런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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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D 개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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