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 15일, 영국 윈체스터 햄프셔 근처, Pitt 과 Sparsholt 사이에 있는 크랩우드 농장 (Farm Crabwood) 에서 아래와 같은 외계인 얼굴을 한 초대형 미스테리 크롭서클이 발견되었다. 

2001년 8월 21일 목요일, 1974년에 SETI가 외계로 보낸 메시지에 대한 응답일 가능성이 높은 아레시보 메시지 (Arecibo message) 라고 불리는 미스테리 크롭서클이 발견된 곳과 불과 8.5마일 (13.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푸에르토 리코 (Puerto Rico) 아레시보 (Arecibo)에는 직경이 1000피트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큰 라디오 전파 망원경이 있고 SETI (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는 단체)에서 1974년도에 이 전파 망원경을 사용하여 외계로 지구와 인류에 대한 메시지를 보냈었다. [아레시보 메시지 보기



2차원의 땅바닥에 3차원 효과를 낸 이 미스테리 크롭서클은 사람들이 만든 가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인상적이다. 
예술작품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크롭서클은 마치 엑스 파일 (X-Files)를 연상시킨다. 





디스크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면 제작자(?)가 어떤 암호를 새겨넣은것처럼 보인다.








크롭서클이 발견된 몇일 뒤, 크롭 서클 연구가들이 디스크안의 농작물의 높고 낮음이 같은 축을 그리며 일정하게 새겨져 있어 해독중 이것이 컴퓨터의 이진수 (ASCII 코드)로 되어 있다는것을 밝혀냈다. 



이 디스크에 새겨진 폼은 3가지 형태가 있다.높은것과 낮은것(쓰러진것) 그리고 중간크기의 것이 있다. 하나의 문자는 이 9개의 형태로 이루어 졌고 높은것이 이진수의 "1"에, 낮은것이 이진수의 "0"에 해당되고, 매 9번째것은 중간높이의 것으로 "공백" (그림에서 +표시) 문자를 가리킨다. 



그림에서 빨강은 "1", 녹색은 "0" 그리고 하늘색은 공백을 의미한다. 
정 가운데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시작하는 이진수를 해독하면 다음과 같다. 
01000010+01100101+01110111+01100101+01110010+01100101

이 처음 6개의 코드를 해독하면 영문 단어 "Beware (조심하라)" 로 해독할 수 있다.
01000010 01100101 01110111 01100101 01110010 01100101B        e        w        a        r        e
이제 문장 전체를 해독해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해독해 본다. 




밀밭의 상태가 안좋아서 8월 22일에서야 "BELIEVE" 라고 확정지은 단어를 사람들이 처음에는 해독하지 못해 사람들은 "EELIJ?E", "EELIJVE" 로 해독하였다.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가짜 선물을 주는 자들과 그들의 거짓 약속들을 조심하라.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믿으라. 저 바깥에는 선한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속임수에 반대한다." 

이 크롭서클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놀라운것임에는 틀림없다. 

 관련 문서:
· 아레시보 메시지 by 라엘리안 닷컴 [한글]
· The 2002 'Alien Face' Formation by Paul Vigay [영문]
· Le Gogogramme de Crabwoods by Augustin Vidovic [불문]
Posted by PD 개인교수

97년 1월 16일(木) 중앙일보를 비롯한 각 일간지에는 AP연합통신 발(發) 기사로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되었다.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이 기사는 북극바다 밑에 '물굴뚝'이란 타이틀로 지구 속과 밖이 통하는 입구가 실제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시절 40여년간 군사목적으로 수집한 북극해에 관한 비밀정보가 처음으로 공개돼 지구 기상변화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엘 고어 미 부통령은 14일 국립지리학회 주최로 열린 북극해 정보 디스크 공개식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1백 30만회에 걸쳐 관측한 자료들의 공개로 기상연구에 큰 진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과 옛소련은 냉전기간 중 북극지역을 미래의 전장으로 상정, 이 지역의 기상, 해류, 빙산 등에 관한 정보를 모아 비밀리에 보관해 왔다.

자료공개는 고어 부통령이 과학연구를 위해 미 중앙정보국(CIA)에 요청한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와 만나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해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이 자료에서 특히 북극해의 물이 그린랜드와 노르웨이 북단 사이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통로인 이른바 '굴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흥분하고 있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립 해양대기 관리국(NOAA) 국장은 "북극해 물의 침강현상에 대한 지식은 지구온난화 등 기상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 '굴뚝'은 폭이 수 km밖에 안되고 지속시간도 짧아 포착하기 어려우나 러시아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확인됐다고 미 과학자들은 말했다.『워싱턴-AP연합』

-중앙일보 97년 1월 16일-

이 공개된 정보 가운데 새로운 사실은 굴뚝의 폭이 수km에 불과하고 극구멍이 열려져 있는 지속시간이 매우 짧아 열려져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그것은 북극의 자궁이 신축성이 있게 열렸다 닫혔다 하며 북극해의 조수가 지구 속과 지구 밖으로 뒤바뀐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올랍 얀센과 그의 아버지는 지구 속 문명세계에서 2년 반 동안 살다 그들과 작별하고 지구 밖으로 귀환하기 위해 북극 극구멍 가까이 갔다가, 지구 밖으로부터 밀어닥치는 역풍과 조수에 의해 무동력 범선이 더 이상 전진을 못하자 아예 방향을 바꾸어 남극 밖으로 빠지는 썰물과 순풍을 타고 기적적으로 살아 나온 바 있다. 이러한 올랍 얀센의 고백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뒤바뀌는 극구멍 주위의 조수환경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아갈타라는 소지구가 존재한다는
지구안의 모습

북극에 오로라가 생길때 일어나는
괴현상의 촬영장면

한편 이보다 앞선 95년 12월에는 미국의 대중주간지「위클리 월드 뉴스(Weekly World News)」가 미 우주항공국(NASA) 소식통들의 말을 빌어 지하에 빛과산소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실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공개했다.

이것은 지구내부에 존재하는 문명세계에서 보내는 전파를 수신한 NASA 과학자들이, 엄청난 과학문명을 가진 모종의 지성체 휴머노이드(Humaoid)가 지구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지구구조의 몰이해 내지는 이와 같은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 차원에서 지구내부가 어둡다는 가정하에 추측한 말일 뿐이다. 지구 속에는 빛은 물론 산소도 있는 것이다.


우선 이 기사를 외신으로 받아 번역해 소개한「스포츠 서울」1995년 12월 17일 기사를 살펴보자.


뉴스지가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지난해 10월 30일부터 간헐적으로 지표로부터 수백km떨어진 지구중심부에서 플로리다주 케이프 카내베랄의 우주항공기지로 누군가 전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파는 높은 지능과 고도로 발달된 생활양식을 가진 생명체로부터 보내진 것 같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NASA의 고위 간부는 "지하세계에 사는 사람이나 물체가 우리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며 지반과 암반을 통과, 수백km 위의 지표로 전파를 보낼 수 있을 정도라면 대단한 기술수준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지구중심부로부터 발사된 전파는 첨단 위성의 도움으로 수신됐는데, 그 송신문은 복잡한 수학적 암호로 되어 있다는 것. 다른 NASA소식통에 따르면 "복잡하긴 하지만 과학자들이 이 암호를 푸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는 꺼려했다. 공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전파의 내용에 비록 적의가 없다 하더라도 논쟁을 제공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쓸데없이 대중을 공포에 떨게 하느니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과학자들이 완벽하게 해석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이 소식통은 지표아래 문명이 존재한다거나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잠꼬대처럼 여겨온 과학자들이 그동안 주장해온 학설이 깨진데다가 그곳으로 회신을 보낼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당혹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파를 보낸 주체가 누구든간에 인류는 그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 그들은 인류를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전율하고 있다는 것.

또다른 소식통은 "이 전파를 수신한 것이야말로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라며 "그 동안 우리는 우주만이 마지막 남은 개척지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구 안에 미개척지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라 대단히 반가운 사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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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출현하였다는 시대(최대로 400만년)보다 훨씬 이전 지층에서 사람 두개골이나 뼈, 이빨 등이 발견된다. (Human skull, bone and tooth in ancient deposits).



1) 1200 만년 된 캘리포니아 Table mountain 금광에서 사람 두개골과 유물들이 발견됨.

1850년대 캘리포니아주 Needles 북서쪽 Table mountain 금광에서는 고대에 멸종되었다는 마스토돈, 맘모스, 아메리카들소, 말, 코뿔소, 낙타 등의 뼈들이 발견되어졌는데, 모두 신생대 3기인 Pilocene로(1200만년전) 연대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1853년 Oliver W. Stevens는 가장 아래 갱도에서 큰 돌사발(stone bowl)을 발견하였고, 1857년 Paul Hubbs는 사람두개골 파편을, 1862년 Llewellyn Pierce는 stone mortar를, 1863년 Dr. R. Snell은 곡식을 갈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stone disc를 발견하였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1866년 2월 이 광산의 소유주중 한 사람인 Mr. Mattison이 이곳에서 거의 완벽한 사람 두개골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하버드대학의 Dr. L. Wyman에 보내져 조사되었는데 완전한 현대인의 두개골이었고, 두개골내에 뼈, 자갈, 조개 등이 들어있어 발견된 상황에 대한 진실성에 의심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견된 지층이 1200만년 전이라는 것이다.



2) 1 억 3500 만년 전 지층서 사람의 뼈가 발견됨.

1867년 Iowa City의 Saturday Herald 지는 4월 10일자 기사에서 사람의 유골과 도구들이 콜로라도주 Gilman의 Rocky Point 광산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하였다. 지하 120m silver 광맥에서 발견된 사람의 뼈에는 잘 다듬어진 구리 화살촉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그 광맥의 지질학적 연대는 무려 1억 3500만년전 이었던 것이다.



3) 쥐라기 지층서 사람의 뼈가 발견됨.

1877년 7월. 4명의 광산시굴자들이 네바다주 Eureka로부터 멀지않은 Spring Valley 지역에서 금과 은의 광맥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광맥을 탐사하다가 딱딱한 바위에 묻혀있는 사람의 다리뼈, 무릎, 정강이뼈, 완벽한 발뼈 등을 발견하였다. 뼈를 함유하고 있는 암석은 검붉은 색의 규암이었고, 뼈들은 거의 탄화되어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여러 의학자들의 검사결과 매우 현대적인 사람의 뼈로 밝혀졌다. 뼈의 크기는 뒷굼치로부터 무릎까지가 39인치(99cm)로 3.6 m의 신장을 갖는 사람 뼈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 뼈가 발견된 지층은 공룡들의 시대라는 쥐라기 지층으로 1억8500만년전 지층이었던 것이다.



4) 4 억 2500 만년전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됨.

1880년에 인쇄된 Scientific American article에는 그해 봄에 St. Louse Republican에서 보고한 특별한 발견을 다시 게재하였다. Dr. R. W. Booth는 미조리주 Franklin County에 있는 Dry Branch로부터 3마일 떨어진 철광산에서 지하 5.4m깊이에서 사람의 두개골, 갈비뼈 일부, 척추, 쇄골 등과 두 개의 화살촉 모양의 부싯돌, 숯조각 등을 발견하였다. Booth가 두개골을 만졌을 때 이것들은 조각으로 부서졌고, 다른 뼈들도 조각이 났다. 2주반 후 Booth는 7.2m 깊이에서 같은 유골들을 더 발견하였는데, 넙적다리뼈, 척추뼈, 숯이 된 나무들이 추가로 발견되어졌다. 그런데 Booth를 놀라게한 것은 발견된 지층이 고생대 실루리아기 초기로 4억 2500만년 지층이었던 것이다. 지질시대에서 실루리아기는 육상생물들이 출현하는 시대로 원숭이나 포유류는 물론 파충류도 등장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5) 3000 만년전인 Eocene 지층에서 사람의 어금니가 발견됨.

1926년 11월 J. C. F. Siegfriedt는 몬타나주 Billings로 부터 남서쪽으로 55마일 떨어진 Bear Creek 석탄광산의 3번 수갱에서 사람의 이빨을 발견했는데, 에나멜층은 탄소로, 뿌리부분은 철로 대치되어 있었다. 이 발견은 1926.11.11일자 Carbon County News에서 보도되었고, 여러 치의학자들의 조사결과 사람의 두 번째 아래 어금니로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빨이 발견된 지층이 3000만년전인 Eocene 지층이었던 것이다.



6) 2000 만년전 Miocene 지층에서 현대인의 두개골이 발견됨.

1958년 스위스의 자연사박물관의 Dr. Johannes Huerzeler는 이탈리아 Tuscany 석탄광산 지하 180m에서 완전한 현대인의 사람 턱뼈를 발견했는데, 5~7세의 어린이 턱뼈였다. 그러나 발견된 지층은 지질학적 연대로 2000만년이나 된 Miocene 지층이었던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화석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그의 동료 고인류학자들은 감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초기원인이 출현했다는 400만년보다 무려 5배나 앞선 기간에 현대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1 억년이 넘는 지층에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됨.

1973년 암석수집가인 Lin Ottinger는 Big India 구리광산에서 불도저로 암석들을 찾고 있었다. 광산은 유타주 Moab으로부터 남서쪽으로 35마일거리에 위치하였다. Ottinger는 노출된 암석을 살피다가 갈색 모래암석속에서 뼈와 이빨들을 발견했다. 일주일후 유타대학의 인류학자인 Dr. J. P. Marwitt와 사진사, 기자들과 함께 도착하여 두 구의 사람뼈들을 발굴했는데, 관절은 이어져 있어 지층안으로 떨어져 묻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죽어 매장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발견된 지층이 1억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Lower Dakota와 Upper Morrison formation이었다. 이 발견은 기존의 보수적인 사고와 너무도 틀려 사람들을 매우 혼란하게 하였다. Marwitt는 발굴된 뼈들은 초기원인이나 유인원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현대적인 사람뼈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후 Marwitt는 갑자기 이 연구에 대한 흥미를 잃고, 유타대학을 떠났고 이 발견은 흐지부지 되었다.



(2) 수억년 된 지층에서 사람의 발자국이나 흔적, 사람이 만든 도구들이 발견된다 (Human footprint, remains, artifacts in ancient deposits).



1) 페루에서 발견된 완벽한 못(nail).

스페인 마드리드의 문서보관소에는 1572년에 기록된 편지가 한통 발견되었는데, 이 편지는 페루에서 발견된 이상한 유물에 대해 스페인 총독으로부터 쓰여진 것이었다. 이상한 유물은 인디언 광산에서 지표면 역암층들의 자갈들을 제거했을 때 발견한 15cm의 완벽한 못이었다. 이 못은 후에 총독에게 기념품으로 주어졌다. 그런데 첫번째 문제는 페루 인디안들은 철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못이 발견된 암석의 연대가 75,000~100,000년 이라는 것이다. (보수적인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철, 구리, 금, 은 등의 금속을 녹여 이용한 것은 최대 8,000년전의 중동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음).



2) 5 만년전 지층속 나무에서 발견된 금속 도끼에 의한 흔적.

1826년 north Cincinnati의 Ohio river 근처에서 우물을 파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서 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지하 28m 지점에서 날카로운 도끼로 패인 흔적을 가진 나무 그루터기가 발견되었다. 흔적은 깊고 매쓰럽게 패여져 있어 날카로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도끼의 흔적으로 추정되었다. 도끼가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 고안된 철로 만든 쐐기(wedge of iron)가 그루터기 윗부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루터기가 나온 지층은 50,000~75,000년이었다.



3) 10 만년전 지층서 발견된 금속 용기.

1851년 6월 Scientific American (Vol 7, P298~299) 지의 이슈는 Mssachusetts Dorchester의 Meeting House Hill 에서 암반 다이나마이트 폭파작업중 출토된 두 부분의 금속용기(metallic vase)에 관한 것이었다. 두 부분을 합쳤을 때 종(bell) 모양의 용기는 높이 11.4 cm, 밑부분이 16.5cm, 윗부분이 6.4cm였고, 두께는 3mm 정도였다. 금속용기는 아연과 은의 합금으로 이루어졌고, 화환으로 된 6송이의 꽃이 새겨져 있었는데, 은으로 세공되었으며, 금속에 부조, 조각, 세공한 방법 등은 알려지지 않은 형태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용기가 발견된 지하 4.5m 깊이의 역암층의 연대가 10만년 이었다는 것이다.



4) 지하 30 m 깊이에서 발굴된 이상한 금속 메달.

1870년 8월 Illinois주 Peoria 20mile 북쪽의 Lawn Ridge에서 세사람이 우물(artesian)을 파고 있었다. 30m 이상 깊이쯤 팠을 때 펌프는 작은 금속 메달(medallion)을 땅위로 올려놓았다. 작업자중 한사람인 Jacob W. Moffit가 최초로 이 메달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Alexander Winchell 교수에게 보내졌다(후에 Sparks From a Geologist,s Hammer라는 책에서 보고함). 또 한명의 목격자인 W. H. Wilmot는 메달이 발견된 지층위치에 대해서 1871년 12월 4일 기록에서 상세하게 적어놓았는데, 지표로부터 흙(soil) 0.9m, 황색점토 5.1m, 청색점토 13.2m, 검은 식물잔해 1.2m, 단단한 자주빛 점토 5.4m, 연녹색점토 2.4m, 부패된 점토 5.4m, palesol (ancient soils) 0.6m, 메달, 황색점토 0.3m, 모래와 물섞인 진흙이 3.3m 였다. 이 이상한 coin-medallion은 확인되지 않은 구리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두께와 원형이 매우 정교했으며, 가장자리는 매우 잘 잘려져 있었다. 연구자인 William E. Dubois는 이 메달은 기계(rolling mill)로 제작되었음을 확신하였다. 메달의 양쪽면에는 그림과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금속으로 인쇄되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산(acid)을 이용한 부식방법 등과 같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림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쪽면에는 까운과 두건을 두른 여인이 마치 축도를 하는 듯이 왼손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 손은 왕관을 쓴 작은 아이를 잡고 있었다. 다른 면의 중앙에는 웅크리고 있는 동물이 있었는데, 길고 뾰족한 귀, 큰 눈과 입, 집게같은 팔, 긴 꼬리를 가졌고, 왼쪽 아래로는 말과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양면 모두 그림둘레에는 형상이 확실하지 않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일정한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알파벳의 형태와 비슷했다. 1876년에 이 메달은 Winchell 교수에 의해 버팔로에 있는 미국지질학협회의 보내져서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시원한 설명은 없었다. 보수적인 역사학자인 J. R. Lesley 교수는 블란서나 스페인의 탐험가가 지나가다가 구멍으로 메달을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과 같은 희극적인 설명을 하였다. Winchell은 여러 가지 정황을 검토하여 실제로 메달이 그 깊이에 지층에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충적층의 형성률과 탄소동위원소에 의한 연대측정으로 이 지역 30m 깊이의 지층은 10만년에서 15만년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고대에 잃어버린 문명이 있었다는 것인가? 구리와 금속을 가공하고, 까운을 입고, 왕관을 쓰며, 동물들을 길들이며, 산을 사용하고, 기계를 만들어 메달을 찍어내는 문명이 10만년전에 존재했다는 것인가?



5) 6 천만년전 갈탄 속에서 나온 쇠로 된 입방체.

1885년 가을 오스트리아 북부 Bocklabruck근처 Schondorf에 위치한 철제련소에서 작업자인 Riedl은 Schwannstadt 근처 Wolfsegg에 있는 광산으로부터 가져온 갈탄 덩어리를 깨뜨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상한 입방체(cube)가 발견됐다. 1886년 광산 엔지니어인 Dr. Adolf Gurlt는 독일 Bonn에 있는 Natural History Society에 그 물체에 대해 보고했는데, 얇은 녹으로 덮여있는 그 물체는 철로 만들어졌고, 6.7×6.7×4.7cm 크기이며, 무게 784.7g, 비중 7.75 이었다. 네 면은 거칠게 평평했으며, 나머지 두 면(서로 반대)은 볼록하였다. 분명한 깊은 홈이 중간 높이에서 물체 둘레에 새겨져 있었다. 이 물체에 대한 초기 연구는 Nature (London; November 11, 1886, p36)지와 L,Astronomie (Paris; 1886, p463)지에서 보고되었다. 진품에 대한 석고형(plaster cast)이 만들어져서 오스트리아 Linz에 있는 Oberosterreichisehes Landesmuseum에 전시되어 있고, 진품은 Vocklabruck에 있는 Heimathaus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6~7년에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의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세밀하게 분석됐는데, 철로된 물체안에 니켈, 크롬, 코발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사실로 운석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또한 황(sulfur)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간혹 기하학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연적인 황철광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Dr. Kurat과 Dr. R. Gill은 이 물체는 주물로 부어만든 철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1973년 Hubert Mattlianer는 또 한번의 세밀한 조사후 이 물체는 사람이 조각한 밀납이나 점토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즉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물체가 나온 석탄을 함유하고 있는 지층이 신생대 3기인 6천만년전 지층이라는 것이었다.



6) 3 억년전 석탄 속에서 나온 금사슬.

1891년 6월 9일. Illinois Morrisonville에 사는 S. W. Culp 부인은 부엌난로에 석탄을 집어넣고 있었다. 큰 덩어리가 둘로 부서지면서 그 속에서 금으로된 사슬(gold chain)이 발견되었다. 사슬은 25 cm정도 길이로, 8 carat gold로 만들어졌고, 12.4 g 정도로 고풍스러우며 기묘한 모양이었다. 6월 11일자 The Morrisonville Times 지는 이 금사슬이 우연히 석탄속에 떨어져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자가 확신한다고 보도하였다. 석탄의 찌꺼기들이 아직도 금사슬에 붙어 있었고, 금사슬을 떼어낸 석탄에는 사슬자국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금사슬을 함유한 석탄이 속해있는 지층은 3억년전 이상의 펜실바니아기 지층이었다.



7) 1 억 5000 만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The American Anthropologist (Vol.9, 1896, p66)에는 Ohio river의 West Verginia side에 있는 Parkersburg 북쪽 4마일 지점의 암석에서 완전한 사람의 발자국 발견을 보고하고 있다. 발자국은 길이가 36.8cm였는데, 암석의 연대는 1억5000만년이었다.



8) 텍사스 Glen Rose근처 Paluxy River의 백악기 지층에서의 사람과 공룡발자국.

파룩시강은 텍사스주에서 두 번째로 상류와 하류와의 수면 고도차가 큰 강으로(1마일당 5.18 m의 수면이 낮아짐), 큰 홍수가 난 후에는 강주변의 침식이 커서 많은 지역이 엄청난 물살에 의해 파여지고 새로운 화석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1908년 최초로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이 같이 발견되었는데, 1938년까지 이렇다할 연구가 실시되지 않았다. 1938년 지질학자 Clifford L. Burdick과 뉴욕자연사 박물관의 Ronald T. Bird는 브론토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 등의 발자국을 조사하기 시작하다가 백악기 초기 지층(1억2천~1억3천년전)에서 완벽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는데, 맨발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분명히 구별되었고, 발의 크기는 38.1cm 였다. 이들은 육식공룡의 큰 3발가락 발자국들도 발견하였는데, 각각의 발자국은 60.9×96.5cm 크기였고, 발자국 사이의 거리는 3.66 m 였으며, 진흙속으로 깊이 새겨져 있었고, 사람과 공룡 둘 다 달리고 있었다. 1939년 5월 Bird는 매우 분명한 사람 발자국이지만 파충류시대에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멸종된 원숭이라 하였다 (그러나 원숭이와도 1억년차가 남). 파룩시강은 관광명소가 되었고, 불경기로 지역주민들은 공룡과 사람의 발자국을 관광기념품으로 팔기 시작하였고, 몇몇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위조도 되었다. 그러자 보수진화론자들은 발굴발자국 모두를 위조로 치부하여 버렸다. 그후 지질학자, 고생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발굴이 시작되어 1백여 군데의 사람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는데, 어린이 발자국도 발견되었고, 어떤 종류는 북미인디언들이 신던 얇은 노루가죽신과 같은 sandal을 신고 있었다. 이것들은 곰, 검치호랑이, 매머드, 공룡들의 발자국 위, 아래에서 또는 나란히 발견되어졌다. 이 발자국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증거들로 mud push-up 현상(발가락이 진흙을 앞과 옆으로 밀어 올린 현상)을 보여주었고, 발자국이 찍히면서 바로 밑에 다른 색의 점토층에 압력을 가하여 만들어진 Lamination markings이 많은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에서 발견되어졌다. 일리노이대학의 Dr. Wilde Smith는 건장한 남자의 발자국과 브론토사우르스의 발자국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백년이 넘는 진화론의 가르침을 내던지게 하는 일이다. 이 사건은 다윈의 이론 전체를 폐기하고 오늘날 모든 생물학을 다시 세워야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후 발자국들은 수년간의 침식으로 공룡들처럼 사라졌다.



9) 3 억년전 석탄 속에서 나온 쇠단지.

1912년 Oklahoma주 Thomas의 Municipam Electric Plant에 근무하는 2명의 작업자가 이웃지역인 Wilberton근처 광산에서 캐내어 온 석탄을 삽으로 화로에 집어 넣고 있었다. 석탄 한 덩어리가 너무 커서 다루기 힘들어 망치로 내리치자, 덩어리가 부서지면서 쇠단지(iron pot)가 발견되었다. 석탄은 쇠단지 내부에도 있어 몰드(mold) 형태로 들어 있었다. 작업자들은 발견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해 진술서에 서명을 하였다. 이 쇠단지는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검사되었는데, 하나같이 설명하기를 주저하였다. 쇠단지가 발견된 석탄층의 연대가 3억에서 3억2500만년전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10) 네바다주 Pershing Count Fisher Canyon 2억2500만년전 중생대 지층에서 사람발자국.

1927.1.25. Albert Knapp은 캐년의 헐거운 바위사이에서 사람의 신발뒤축이 찍힌 화석을 발견하였다. 끈적한 상태에서 발을 잡아 뺀 모양의 화석으로 뒤축모서리는 부드럽고 둥글었으며, 오른쪽은 왼쪽보다 더 닳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견지층은 2억2500만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석회암 지층이었던 것이다. 화석은 록펠러재단의 전문지질학자에게 분석되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현미경 조사 후였다. 가죽신은 두 줄의 실로 꼬매져 있었는데, 한 선은 바깥 모서리를 따라 이어졌고, 다른 선은 0.8 cm 안쪽으로 평행하게 이어져서 꼬매어져 있었던 것이다. Califonia오클랜드 박물관 Samuel Hubbard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초기 지구의 원인들은 이러한 가죽신발을 도저히 만들 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러한 증거앞에 무엇을 대답하여야 하는가. 원숭이가 나타나기도전 수천만년전에 고등한 지적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11) 3 억년전 고생대 펜실바니아기 지층에서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1885년 켄터키주 Berea 대학의 J. F. Brown 교수는 Berea 마을 동쪽 16마일지점인 Cumberland 고원의 Rock Castle County의 Big Hill에서 나온 이상한 발견물을 검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상부근에서 도로를 넓히기 위해 흙을 제거하다가 석탄기(펜실바니아기) 석회암 지층에 오래된 마차 바퀴자국(old wagon trail)이 나있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E. A. Allen이 American Antiquarian(Vol7, p39)에서 보고했던 것과 같이 그 지층에는 여러 생물체들의 화석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이 바퀴자국을 목격한 사람들을 더욱 신비하게 하였던 것은 바퀴자국 사이에 매우 잘 보존된 두 개의 사람발자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발자국은 사람의 크기였고, 발가락들은 잘 구분되어 있었으며, 매우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상세한 추가 연구는 실시되지 않고 있다가, 1930년 Berea 대학의 지질학교수인 Dr. Wilbur Greely Burroughs는 회색의 Pottsville sandstone에 찍혀 있는 24cm정도의 발자국 12개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발자국들은 지질학적 연대로 3억년 이상된 후기 펜실바니아기 지층이었던 것이다. 보수적인 많은 지질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은 이 발자국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양서류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Dr. Burroughs는 Louisville Courier-Journal (May 24, 1953) 에서 두 쌍의 발자국에서 비교적 왼발은 오른발보다 앞에 나와있다. 발의 위치는 사람의 것과 똑 같았다. 뒤꿈치에서 뒤꿈치까지의 보폭은 45.7cm 였고, 발자국은 서로 평행하게 났는데, 간격은 정상 사람의 것과 똑 같았다.라고 하면서 이 발자국들은 두 발을 가진 생물체의 것이며, 절대로 네 발을 가진 동물의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양서류와 파충류들은 네 발을 가지고 있고, 간혹 뒷다리로 똑바로 서서 걷는 것들은 꼬리를 제3의 다리처럼 사용하여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발자국에는 꼬리나 배가 접촉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1938년 10. 29일 Science Newsletter에서 논평했던 것처럼 고생대 펜실바니아기에 똑바로 걷는 양서류나 파충류 화석은 보고된 적이 없었다. 분명히 나타난 5개 발가락, ball, 뒤꿈치는 양서류와 파충류의 발자국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사람의 것만이 이와같은 것이다. Albert G. Ingalls는 Scientific American (January, 1940)에서 만약 사람이 어떠한 모습이라도 석탄기(펜실바니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존재하였다면, 지질학 전체는 완전히 잘못되었으며, 모든 지질학자들은 사표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 트럭이나 운전하여야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2)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지층에서 발견된 신발자국.

1948년 영국 Lake Windermere 근처에서 신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그 해에 The Field 라는 자연사 학술지에 보고되었는데, 발견된 지층은 믿을 수 없게도 5억년 정도로 추정되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석회암층이었다. 이 신발자국에는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진 흔적들을 보였는데, 뒤뚬치와 발가락 앞쪽의 가장자리에는 납작못으로 시침질을 한 듯한(tacking) 둥근 자국이 나있었으며, 뒤꿈치와 발바닥 중앙부근에는 꽃과 같은 무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국은 바위의 갈라짐과 부서짐으로 약간 비틀어져 있었는데, 신발의 길이는 20cm, 폭은 8.9cm 였다.



13) 고비사막의 1500 만년된 사암층에서 발견된 이상한 신발자국.

1961년 Soviet journal (No.8, 1961)에는 소련과 중국의 고생물학 탐사대가(탐사대장 Dr. Chou Ming Chen) 1959년에 중앙아시아의 고비사막에서 발견한 홈이 파진 밑창(ribbed sole)을 가진 신발(shoe)자국 화석에 관한 내용이 보고되었다. 이 발자국들은 1500만년된 사암층에서 발견되었는데, 탐사자들 다수가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 '이것은 어떠한 동물의 발자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홈이 파진 무늬(ribbing)이 너무 똑바르고 규칙적이어서 자연적 기원으로는 생길 수 없다' 라고 하였다.



14) 50 만년전 암석에서 나온 이상한 기계장치.

1961년 2월13일 세명의 암석수집가 Mike Mikesell, Wallace Lane, Verginia Maxey는 캘리포니아주 Olancha 동남쪽 12마일 지역에 있는 Coso Mountains의 정상 1300m 부근에서 돌 하나를 수집했다. 이것은 안쪽으로 움푹한 선이 나있는 수정을 함유한 돌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정동석(geodes)인줄 알았으나, 후에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조개화석 일부를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Mikesell이 돌을 반으로 쪼갰을 때 이상한 물체가 나왔다. 안에서 나온 것은 어떤 기계적 고안에 의한 물체로, 흰색의 단단한 질그릇 재료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폭 0.85cm의 원통(ceramic cylinder) 이었다. 원통 둘레에는 나무와 비슷한 물질이 감싸고 있었고, 원통 중앙에는 2 mm의 축으로된 선명한 놋쇠질의 금속이 있었다. 이 축(shaft)은 자기력(magnetic)을 가지고 있었고, 발견되고 수년후에도 산화되지 않았다. 또한 원통 둘레에는 구리로된 고리(ring)가 있었는데, 후에 대부분 부식되었다. 원통이 발견된 암석안에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물체가 나왔는데, 그것은 못(nail)과 볼트의 워셔(washer)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Charles Fort Society로 보내졌는데, X-ray 검사결과, 확실히 기계적 도구의 일종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금속 축의 한쪽은 부식되었고, 다른 한쪽은 금속 스프링과 같은 나선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점화통(spark plug)으로도 생각했으나, 축 끝부분의 금속 스프링형태 등은 그동안 발견된 어떠한 점화통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계적 도구를 함유하고 있는 암석의 연대가 지질학자들에의해 50만년으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15) 유타주 Antelope Springs 근처 6 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1968.6.1. William J. Meister (아마추어 화석수집가)는 유타주 Delta시 북서쪽 43마일에 위치한 Antelope Springs에서 화석화된 삼엽충과 완족류를 찾다가, 놀랍게도 삼엽충 화석위에 사람의 가죽신발자국(sandal print)을 발견하였는데, 삼엽충은 으깨져 있었다. 지층은 6억년전 캄브리아기 지층이었고, 자국크기는 길이 26cm, 폭 8.9cm였고 뒤꿈치 부분은 폭이 7.6cm였다. Sandal의 오른쪽 부분은 낡아 있었고, 뒷꿈치 부분은 1.7cm 깊게 파여져 있었다. 이 화석은 유타주 지질조사단 Dr. Hellmut H. Doelling 에게 보내져 진짜임이 확인되었다. 그해 6.20일 Meister는 전문가 Dr. Clifford Burdick과 같은 장소로 돌아와 재조사를 실시하였는데, 5개의 발가락이 분명한 15cm의 맨발의 아기발자국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그후 Meister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함.)



16) 백악기 지층서 나온 이상한 금속 덩어리들.

1968년 프랑스의 동굴학자 Y. Druet와 H. Salfati는 Saint-Jean de Livet에 있는 채석장의 Aptian 백악기 지층에서 이상한 금속 덩어리들을(metal nodules)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 덩어리들은 적갈색의 얇은 과자모양(wafer-shaped)으로 끝은 우묵했고, 길이 3~9cm에, 폭 1~4cm 였다. 두 명의 조사자들은 처음에는 화석으로 생각하였으나, 금속성 성질이 밝혀진후 운석의 파편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밀한 조사결과 이 덩어리들은 자연적인 기원으로 보기에는 모양이 너무도 일정하였고, 화학적 분석결과 현대적인 대장일(forging)과 주조(casting)기법과 일치하는 탄소함량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1억2천만년전 백악기말 지층에 사람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될 수가 있겠는가? Druet과 Salfati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물체는 선사 고고학에 의해서 정한 한계보다 훨씬 이전에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였음을 입증하였다.'



17) 300~500 만년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1969.5.25일 Tulsa Sunday World지에서는 오클라호마 Tulsa 동부지역에서 산에서 발견된 이상한 화석에 관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지질학자인 Troy Johnson는 발자국 화석이 많이 나 있는 사암층에서 다섯발가락을 가진 분명한 사람의 발자국들을 다수 발견했다. 이 발자국들은 지금은 멸종된 생물들의 발자국들과 같이 나 있었는데, 그 지층의 연대는 300~500 만년이었다.



18) 1 억년전 지층에서의 사람발자국.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오클라호마 북서쪽 Carrizo Valley에서 사람의 발자국과 신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맨발자국은 어느 정도 침식이 되었으나 분명히 압력이 가해진 가장자리를 보이고 있었다. 신발자국은 보다 분명했는데 길이는 50.8cm 폭은 20cm이었다. 발견된 지층은 1억년 이상으로 추정하는 Morrison formation and Dakota Sandstone 이었다.



19) 17만 5천년전 지층에서 출토된 두상과 유물들.

1921년 아칸소주 Finch 북쪽 2마일에 위치한Crowleys Ridge로 알려진 작은 산줄기에서 Rowlands는 자갈 갱을 파고 있었다. 3m 정도를 팠을 때 삽은 커다랗고 딱딱한 어떤 것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큰 바위돌로 생각했으나, 좀 더 파자 그것은 사람의 머리를 조각한 커다란 두상이었다. 높이는 1.2m였고, 사각형의 튀어나온 턱, 작고 굳게 다문 입, 짧은 코, 주름진 이마, 금무늬를 입힌 납작하고 강조된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귀에는 두 개 이상의 금고리로 장식되어 있었고, 구리로 된 하트모양의 마개가 가슴에 박혀 있었다. 머리는 조각된 두건으로 휘감겨 있었고 목덜미 아래로 내려져 있었으며 한조각은 목에 붙어 있었다. 머리부근 같은 지층에서 Rowlands는 금반지, 화산경석(그 지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으로 만들어진 작은 보석함, 사람, 동물, 별, 달의 작은 조각들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이 두상과 유물들은 곧 지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신문들은 노려보는 듯한 이 두상을 King Crowley라고 이름붙여 주었다. 여러 조사자들과 전문가들은 자갈층 3m 깊이의 지층이 17만 5천년이라는 지질학적 연대에도 불구하고, 이 발견물이 진짜임을 인증하였다. 두상과 유물들은 Little Rock에 있는 Akansas 자연사 박물관에 보내졌고, 발견물과 기록들을 철저하게 검사한 박물관장은 발견물이 진품임을 확인하고 전시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작은 유물 몇개는 워싱톤에 있는 스미소니안 박물관으로 보내어졌다. 매우 보수적인 협회인 스미소니안에서는 이 물건들을 설명할 수 없는 품목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 물건이 나온 지층과는 도저히 타협할 수가 없었다. 15년간의 망설임 끝에 스미소니안은 인류문명사과 맞지 않은 17만 5천년전의 이 두상을 위조라고 선포하였다. 명성있는 스미소니안의 결정에 따라 Little Rock 박물관은 두상과 유물들을 전시대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 King Crowley는 개인 수집가들에 팔려 흩어져 버렸다.



20) 최소 30 만년 이상으로 평가되는 땅속 96 m 지점에서 출토된 인형.

1889.8.1일 직업적인 우물 굴착업자인 M.A.Kurtz 는 Idaho의 Nampa에 있는 집근처에서 두 사람의 동료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중이던 steam pump가 갑자기 3.8cm 길이의 갈색의 점토 조각을 토해내었다. 모습은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 발견은 Nampa의 여러 중요한 시민들에 의해서도 목격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점토 인형(doll)이 나온 땅의 깊이가 무려 96m 깊이라는 것이었다 (용암암석 4.5m, 모래 30m, 점토 15.2cm, 모래 12m, 점토 모래 섞인 것 50m). 작은 인형은 반은 점토, 반은 석영으로 구성되었는데, 숙련된 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Oberlin 대학의 Albert A.Wright 교수는 이 인형은 어린이나 아마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인형의 모습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분명했는데 둥그런 머리, 간신히 알 수 있는 입과 눈, 넓은 어깨, 짧고 굵은 팔, 긴 다리를 가졌으며 오른쪽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모습에는 희미한 옷이나 보석과 같은 것을 새긴 기하학적 흔적이 목둘레 가슴부위와 팔과 팔목에 남아 있었다. 인형은 예술적인 차림을 한 매우 문명화된 사람의 모습이었다. Nampa 인형이 실제로 발견된 깊이에서 출토되었는지, 얼마나 오래된 유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은 보스톤의 자연사 학회의 G.F.Wright 박사가 출토된 장소에서 Kurtz의 장비, 파여진 구멍, 목격자들의 증언 등을 조사하였다. 조사후 Wright 박사는 이 발견이 진짜임을 확신하였다. Kurtz는 직경 15.2cm의 강철관으로 구멍을 파기 때문에 그 깊이에서 출토된 것에 대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더군다나 펌프는 한쪽 방향으로만 가동되는 것으로서 위에서부터 어떤 물체가 펌프를 통해 들어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Wright는 보스톤 학회에 이 물체가 보고된 깊이에서 펌프를 통해 출토되었음은 확실하다라고 최종 보고를 하였다. 또 하나의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보스톤의 F.W.Putnam 교수는 현미경 분석을 통하여 인형 오른쪽 팔아래는 석영알갱이가 철입자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매우 오래된 시간이 흘렀으며, 발견된 깊이에서 실제 있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Nampa 인형의 연대는 얼마나 되었을까? Kurtzs가 뚫은 맨 윗층의 용암암석은 마지막 빙하기가 진행되기전에 발생한 Columbia Plateau의 선사시대 용암류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지층 아래 90m 깊이의 묻혀 있던 인형. 현대 지질학자들은 인형이 출토된 지층의 연대를 최소 30만년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Nampa doll은 Boise에 있는 Idaho State Historical Society에 전시중에 있다.



21) 20 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Tile Floor.

1969.6.27일 Edmond와 Oklahoma City 사이 Broadway Extention 122번가에서 암반 절단작업을 하고있던 작업자들은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발견을 하였다. 그 발견은 무늬가 새겨진 타일이 깔려있는 바닥(inlaid tile floor)으로 지표면 아래 90cm 깊이에서 발견되었는데 수천 평방 피트의 넓이로 발견되었다. Oklahoma City의 지질학자인 Durwood Pate는 1969.7.3일 Edmond Booster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것이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돌들은 평행한채로 다이아몬드 형태로 동쪽을 향하면서 완벽한 모습으로 놓여져 있었고, 10m씩 떨어져 정확한 거리에 위치한 구멍들이 발견되었다. 돌의 상부는 매우 매끄러웠으며, 그것의 하나를 들어올리면 들쭉날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표면에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놓여져 있어 자연적으로는 도저히 생성될 수가 없다 또한 Pate는 tile 사이에서 mortar의 한 형태도 발견하였다. 그는 tile 표면은 많은 사람들이 쉬기 위하여 깔아 놓은 넓은 floor라고 생각하였다. 지질학자인 Delbert Smith는 1969.6.29일 Tulsa World에서 그것에 관한 어떠한 의심도 없다. 그것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그 tile floor가 놓여있던 지층의 연대는 20만년으로 평가되었다.



22) 6 억년전 캄브이라기 지층에 똑바로 나있는 이상한 두 줄의 띠 (iron bands) 자국.

1880.6.13일 Inverness 신문의 리포터이며 아마추어 암석탐험가인 Walter Carruthers는 스코틀란드의 Loch Maree와 Victoria 폭포를 여행중에 그 지역의 지질학적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Carruthers는 Victoria 폭포 상단 300~400야드 사이 물줄기의 서쪽으로 있는 세개의 작은 폭포중 바깥쪽 바위에 특별한 자국이 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바위는 캄브리아기의 Torridon Red Sandstone으로 표면이 4.8×4.8 m 크기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 자국은 나란히 나있는 두 개의 평평한 띠(bands) 줄로서, 3.2~3.8 cm 폭과 0.64 cm 깊이로 비자연적으로 사암층을 똑바로 4.8 m나 나있었는데, 풍화된 곳에서만 단지 끊어져 있었고, 서쪽부근의 중첩된 암석밑에서 사라져 있었다. 수주일 후 이 이상한 띠자국은 Carruthers의 동료이며 이 지역 공립학교의 Majesty,s Inspector인 William Jolly에 의해 조사되었다. Carruthers는 이 자국은 매우 비범한 생명체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Jolly는 기록하기를 이 띠자국의 폭과 넓이까지 일정하게 지속되는 것이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 두 개의 띠자국은 함께 가까이 고정된 두 개의 쇠막대기에 의해 남겨진 자국임에 틀림없다라고 하였다. Jolly의 관측은 몇년 후 자국에서부터 iron oxide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확인되면서 더욱 확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iron band는 과거 한때 어떤 구조물을 걸려고 하다가 파여진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러 발견들은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이 입증되었다. 첫째, 이 bands는 폭포 상단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의 접근도 거의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구조물을 설치하기는 더욱 어렵다. 둘째, 이 bands는 0.64 cm 깊이로 얕게 나있기 때문에 어떤 구조물을 지지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셋째, 각 band의 옆에는 평행하게 얇은 물결자국의 사암이 남아 있었는데, 이것은 모래가 물에 의해 퇴적되면서 사암으로 굳어지기전 iron band가 모래를 흐트러트린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넷째, 자국이 남겨진 사암은 철의 미세한 흔적들을 보존한 작은 줄무늬(striations)들을 보였는데, 이것은 금속이 최초 모래에 즉 굳어지기전 모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섯째, band 한 쪽의 한 부분은 암석표면 아래로 구부러져 들어가 있었는데, 주의 깊게 그 끝을 파본 결과 주변 사암으로 이어진 iron oxide를 찾아내었다. Jolly는 같은 장소에서 다른 band 자국들을 발견하였다. 세 번째 band는 다른 두 개를 따라 나있었는데 분명하지 않았고, 연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두 개의 추가발견된 band는 표면 60 cm 아래에 나있었고, 2.1 m 길이였으며, 또 다른 두 개는 높은 위치에 90 cm 길이로 나있었다. 이 iron band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규격화된 폭과 깊이, 각진 모서리, 굴러가거나 파지면서 남겨진 미세한 알갱이 흔적들은 어떤 기계적인 도구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과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것은 발견된 지층이 무려 6억년전의 캄브리아기 지층이라는 것이었다.



(Strange Relics from the Depths of the Earth) - 창조과학회 J. R. Jochmans
Posted by PD 개인교수
2005.12.16 06:46
인도 굽타왕조 불상의 윤보

인도의 발상지 인도의 엘로라, 아잔타의 석굴사원들에는
차크라, 즉 "신의 탈것"을 묘사한 원반들이 많이 조각되어 있다.

망고나무의 기적(태국)


 
태국에서도 UFO가 그려진 고대그림들을 발견했다.
윤보


초기불교의 그림이나 조각등에느 창조자들의 탈것,
즉, 윤보가 많이 묘사되어 있다.
불교경전에는 윤보에 대한 언급이 자주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예를 들수 있다.


1.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2. 하늘 금수레바퀴가 갑자기 나타났다.
3. 마보(馬寶)가 갑자기 나타나 앞에 있었다.
4. 순금으로 된 바퀸의 직경은 14척이나 된다.
5. 금윤보는 궁전 위의 허공에 머무르면서..


 
마(馬), 바퀴는 UFO



마(馬), 바퀴는 UFO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구름 속에 바퀴달린 마차로 그릴수 밖에 없었던
본래의 물체는 무엇인가...?

 

삼보문양


불교도의 세 가지 근본 귀의처가 되는 삼보를 뜻하는 문양이다.
모양자체가 UFO와 닮아있다.



삼보모양을 한 UFO의 모습 UFO에 바퀴가 3개 달려있다.
 

AD 900년경 일본에 그려진 그림.



 

AD 900년경 일본에 그려진 그림.
불덩어리 안에 바퀴가 보인다. Scrap

Posted by PD 개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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