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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to be there

베트남 추억 - 복수와 배반

by 개인교수 2006. 11. 22.



대략 북방과 남방계통을 대별 짓는 큰 특징을 살펴보자면 북방계통은 호탕하면서 덜렁거리고, 남방계통은 정교하면서 소심하다.

추운 기후 때문인가? 대부분 남방계통의 사람들의 체구는 북방계통의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작다. 베트남 사람들도 특수 중국계를 제외하고는 신장이 작다. 남자는 거의 170 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여자 또한 160 넘는 사람들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중국계통의 사람들은 제외하고)

현재는 사회주의에 찌들려서 서로 감시하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약간은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비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베트남 인 들이지만, 과거 프랑스에 의한 150년간 피지배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호치민 같은 사람들이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 싸운 반면, 남쪽의 흥청대던 도시 사이공 같은 곳에서는 서양문화를 그대로 만끽하고 있었던것 같다.
베트남 현지 직원들에게 "1960년대에서 70년대에는 너희들이 한국보다 훨씬 더 잘살았어" 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들이다.

그들은 한국을 마치 원래 부터 아주 잘 살던 나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한국은 지금도 못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베트남 전 이전에도 월남치마라는게 최신 유행처럼 한국을 휩쓸었으며, 베트남전에 나갔던 김상사가 보내온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그 시대 최고의 재산 이었다.
즉, 당시의 사이공과 필리핀의 마닐라는 동남아 최고로 부를 이루며 흥청대던 도시들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외국인을 경외한다. 즉 외국인에게 해꼬지 하는 베트남인들은 별로 없는것 같다.
그러나 아주 못된 습성들이 있다.
그건 바로 뒤에서 남을 씹는다는 것이다.
작은 체구의 남방계통인들의 습성에 사회주의의 영향이 적지 않게 결합되어 아주 나쁜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중국 남부의 공장들에서도 나타난다.

월요일 아침 기분좋게 9시 이전에 회사에 나와 앉아 있으면 9시 10분 20분쯤 얼굴을 비치는 직원들이 있다. 물론 내 눈치를 보며 "Sorry Mr. Park!" 이라고 한마디 하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우리가 라인을 돌려야하는 공장도 아니고 일반 무역사무실이기 때문에, 그정도야 왠만하면 그냥 넘어가지만 언젠가는 굉장히 기분나빴던 때가 있었다.

하루는 여직원이 그 전날 늦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9시 20분정도에 출근을 하였다. 난 약 10시 쯤 모두를 불러 놓고 회의식으로 잡담을 하였다.
당연히 그 여직원에게는 왜 늦었냐고 물어 봤다.
그 여직원은 차가 막혀서 그렇단다.

"넌 오토바이 타고 다니잖아! 막힐 일이 별로 없을것 같은데?"
"아니요. 제가 다니는 길이 어제부터 공사를 해서 막혀요!" 라고 변명을 한다.

"어제부터 공사 하는것을 알았다면 다른길로 왔으면 됐잖아.!"
"그게 아니구요... 아침에 아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계속 이런식으로 끊임없이 변명을 한다.

그냥 클하게 "내일 부터 절대 늦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안돼나? 그러면 화내던 이의 마음도 그대로 풀리면서 즐겁게 일 할수 있을텐데, 그 끊임없는 넋두리와 변명, 정말 지겹다.
이것은 비단 그 여직원만이 아니다. 사무실에 있는 10명 정도의 그것도 전부 국립 하노이대학, 국제경제대학등에서 공부한 나름대로의 수재들이 다들 그런식으로 변명한다.

몇몇의 눈치빠른 친구들은 내가 뭐라고 할 때면 바로 수긍한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뒤끝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 조차도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것은 아님을 쉽게 눈치 챌 수있다.

길을 걸어 가는데 자전거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를 쓱 한번 보더니 그냥 가려고 한다. 난 자전거 뒤에 짐 싣는 곳을 잡았다. 그 사람은 앞으로 못나가고 버둥거리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난 베트남 말로 "당신 사람을 치고 갔으면 최소한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거 아니야?"
그 사람은 그게 아니고 자기 옆으로 방금 오토바이가 쎄게 지나가서 그걸 피하려다가 나와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다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아까 오토바이가...."  계속 이런식의 끊임없는 변명이다.
어휴~~ 니미럴 속터진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가 그런게 아니라고 한다. 원래 자기가 일부러 의도해서 나를 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나는 이미 가버린 오토바이 탄 사람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다.

위의 이야기를 저녁에 맥주 마시면서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니들 솔직히 내가 한 얘기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그랬더니 한결같이 자전거 탄 사람의 잘못이 아니란다.

"그러면 오토바이 탄 사람의 잘못이야?"
전부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단다.

"그럼 만일 오토바이 탄 사람이 내게 와서 도로사정이 않좋아서 웅덩이 피하려다 그런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꺼야? 그때는 누구 잘못이야?"

여기서 부터는 말이 없다. 난 속으로 참 그 자식들 책임감 X도 없네...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도로를 개 보수할 책임이 있는 시 정부 책임이네?"
....몇몇 직원들 묵묵 부답, 몇몇 직원들 YES!.....

"그러면 시정부는 예산이 없어서 못 했다고 할꺼 아니야? 그러면 국가 책임이네? 그치?"
....전부 묵묵 부답....

"국가가 발전 못한건 국가의 체제 때문이야? 아니면 국민의 노력이 없어서야? 누구 책임이야? 미국 책임이야? 소련 책임이야? 아니면 조상 책임이야?"
......묵묵.................,,,,

"그러면 나는 도데체 누구한테 가서 사과 받아야 하는데? 내가 다쳤으면 치료비는 누가 물어 주는건데? 내 말 무슨 말인줄 알겠어? 그냥 나를 치고 간 그 자식이 잘못 한거야!! 알어? 왜 책임을 남에게 전가 시키려고 해?"

"그래 니미 돈 벌러 이곳 베트남 까지 기어온 내 책임이고, 그 자리에 있었던 내가 잘못한거야... 그치? 됐니? 이제? 이게 너희들이 생각하는 정답이니?"

거기서 계속해서 그들 앞에서 사회주의 어쩌고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거기 까지만 이야기 했지만....,

베트남인들이 저러한 속성을 갖게 된 이유는 남방계통의 소심함과 사회주의의 통제가 어울어져 어떻해서는 순간 닥친위기를 모면하는데만 급급해 하는데서 기인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위로 받고 용서를 받는게 아니라 바로 인민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회체제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복수...
중국 남방과 베트남에선 사람 뽑기는 쉬워도 자르기는 무척 어렵다. 잘 못 사람은 자르다가는 길거리에서 칼 맞기 쉽상이다.
그래서 직원을 뽑고 자르는것에 왠만하면 한국인 관리자가 간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 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현지의 매니저를 시켜서 그들을 뽑고 교육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직접 화를 내거나 타인의 면전에서 무안을 받고 퇴사를 강요할 경우에는 정말 밤거리에서 뒷통수 조심해야 한다. 칼 맞은 사람 이야기를 현지에서 들어보면 칼 맞기 바로 전 날 밤에도 같이 술을 즐겁게 마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치사함이다.
사장이나 관리자가 사람을 내 보낼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만일 이유가 없다면 "저 직원과 얼굴 맞대고 일하고 싶지 않다" 라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칼 들고 복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말은 못하고 항상 가슴속에는 복수를 꿈꾼다.
비록 그 복수가 자기 살아 생전에 달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20년전 부모님의 원수 내 칼을 받아라.." 뭐 이런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트남에서는 아주 적절한 이유가 있어서 당연히 내보내야 할 때도 왠지 꺼림직 하다.

나의 경우에는 북수 보다는 주로 배반이 많았던것 같다.
내가 거기가서 공장을 한것도 아니고 무역회사 현지법인을 했기 때문에 직원도 정예로 6-10명 정도만 있으면 됐었다. 그리고 하노이 시내에서 가장 좋은 빌딩에 아주 넓게 입주해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도 만족해 했고,
나도 항상 사무실내의 냉장고에 요구트르와 아이스크림 항상 채워 놓고 아무나 심심하면 집어먹게 만들고, 사무실 전체를 카페처럼 꾸며 놓고 탁구대도 하나 들여 놓을 정도로 직원들을 최고로 대해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경쟁사에게 오퍼경합에서 밀린다는것을 알았고, 매니저와 다른 직원들을 다구친 결과, 어떤 여직원이 우리 가격표를 빼 돌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직원을 불렀다.  왜 그랬냐고 했더니 그냥 가만이 고개 숙이고 앉아있다.
그래서 더 이상 화 내기도 싫고 해서 "자 지금 바로 일어나서 나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일어나더니 컴퓨터 앞에서 주섬거린다.
" Lan oi (란은 그 아이의 이름)~~ 아무것도 만지지말고 그냥 가 ! 아무것도 프린트 하지말고, 아무 디스켓도 건들지 말고 그냥가!!" 라고 했다.
그녀는 디스켓은 자기 것이라서 가져 간다고 하길래 "그럼 디스켓 줘봐!!"

그리고 디스켓의 파일을 본 결과 회사의 중요 서류가 거기 다 들어 있다.
그냥 헛 웃음만 나왔다.
나는 디스켓을 깨끗하게 지우고 공디스켓을 돌려 주었다.

전혀 죄책감도 책임감도 없다. 그냥 대가리에는 아무 생각도 미안함도 없는것 같다.

또 다른 케이스로는 일만 배우고 다른 회사로 가 버리는 경우다. 그것도 경쟁회사로 가버린다.
일말의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그런데 더 더욱 미치겠는 것은 경쟁회사에 다니는데도 우리회사의 직원들은 여전히 그와 통화하고 만나서 이야기 하고 술을 마신다. 그런 상황에서는 참 갑갑하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로 치사하게 옮겨 간 사람은 안 만나지 않나?
이무튼 베트남에서는 도데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현지화! 그거 똥밟는 얘기다. 나 만큼 현지화 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도 된다. 난 항상 그들과 부대끼고, 그들이 먹는 거 먹고, 그들이 자는 곳에서 자고, 그들의 의견 100% 수용하며 정말 친해지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상당 부분 아직까지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너무 현지화 되서 그들이 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으로 남았으면, 적당히 속이고 적당히 눈 감아주고,
다른 외국인 처럼 베트남 말도 잘 못하고,
항상 어리둥절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어 웃음을 유발하는 그런 외국인으로 비춰지는게 오히려 그 쪽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방법일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마치 우리나라 TV 에서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는 멍청한 외국인들 처럼... 나도 그렇게 그들과 접촉했었다면 더 좋았을것을...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난 향후 베트남에 가더라도 사업은 안할 것이다.
그저 식당이나 하나 차려서 난 낚시나 다니고, 직원들 알아서 경영하고 먹으라고 하고..
베트남에서 대가리 쓰는 경쟁적인 사업에는 진절머리가 난다.

혹시 한다면 공장이면 모를까....

흐르는 곡은 Saigon Dep Lam 이라는 곡임. 말 그대로 사이공 너무 아름답다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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