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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나의 광화문 연가

by 개인교수 2014. 3. 13.


내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살았던곳 광화문
신문로를 따라 내려가다 광화문 사거리 못가서 새문안 교회 맞은편에 국제극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추억의 장소로 변해 버렸다.
중3의 대부분을 그 극장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지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는데
지금은 큰 빌딩이 들어서서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당시에도 있었던 문화방송 사옥과 피어선 빌딩만이 현재까지 광화문을 추억처럼 지키고 있다

짚앞의 신호등을 건너면 바로 문화방송 정동사옥이 보이고 그 옆 이탈리아노 레스토랑(아직 있는지??)을 지나면 정동교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뒤로 러시아 대사관의 첨탑이 보이고 대법원과 덕수궁 돌담길 사이를 지나면 시청앞이 나오는데, 지금의 기억에도 그 거리의 가을은 온통 노란색 은행잎으로 물들어 있었던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영화 단체 관람이란것을 많이 했는데
당시 국제극장에서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를 교복입고 단체로 본 기억이 있다.

중앙고등학교에서 내가 살던 광화문 집까지 가려면 항상 지나쳐야 했는 국제극장, 이 극장이 어느순간 사라져 버렸다.
국제극장 아래에는 당시 시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전자오락실이 있었는데,
사실 전자 오락실 이라기 보다는 전동 오락실에 가까웠다.
차량 운전 하는 게임도 정말 모형 차량이 붙어 있고 그 아래로 트랙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형태였다.
그래도 그 오락실에서 유일하게 전자 오락이라고 할 수 있었던 최첨단은 흑백 브라운관 화면에 양쪽에 골대가 있고
왔다 갔다 하는 점을 막는 형태의 오락 이었다.
훗날 전자오락의 혁명이라고 할수 있고 요즘의 스타크래프트와도 비견할 만한 최신 오락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러그가 나오기 까지는 컴퓨터 자체를 모르고 살아온 세대로써는 그 오락 만큼이나 재미있던 오락도 없었다.

광화문과 덕수궁에는 스쳐지나갔던 무수한 여자애들에 관한 기억 또한 다양했다.
고2말에 광화문에서 이미 마로니에공원(현재의 대학로) 쪽으로 이사갔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여자애만 만나면 덕수궁에 가고 싶었던 걸까?
그 고질병은 대학교때도 그랬으며 졸업 후에도 계속 되었다.

그 최초의 기억은 중3때 동명여중 다니던 홍승희 라는 여학생과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광교를 지나 명동 회현동 그리고 남산까지 매주 뻔질나게 놀러 다녔던 일이다.
그 이후 여자를 만난다든지 혹은 맘에 드는 친구를 만났을 경우에는 난 꼭 이 코스를 선택하곤 했다.
국민학교 때 부터 대학 졸업때 까지의 나의 취미는 걷기 였던것 같다.

심하게 걸을때는 동대문에서 마로니에공원을지나 창경원 돌담길을 건너 비원옆으로해서 중앙고 운동장을 건너 후문으로 나와서 삼청공원까지 갔다가 공원 철봉에서 운동 한번 한 다음,
경복궁 옆을 내려와 광화문에 도착해서 덕수궁, 광교, 명동, 회현동을 지나 남산에 오른다.
내려올때는 국립극장 쪽으로 내려와서 장충단 공원을 지나 동대문으로 돌아와서 맥주 혹은 소주를 마셨다.
지금 언뜻 생각해봐도 좀 엄두가 안나는 코스 이지만,
당시에는 그저 친구 혹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뻔질나게 다녔던것 같다.

 
광화문
그러나 나의 연가는 없었다.
그저 덕수궁을 감아도는 싸늘한 바람에 흩어진 얍살한 추억만이 맴돌 뿐이다
 
그저 얍살하게 연애했고
그저 얄팍한 우정으로 친구를 대했으며
그저 허망하게 세월만 소비했고
그저 되 먹지 않은 정서로 추억을 그리고 있다.
 
추억은 이미 분해되어 분산돼 버렸다.
누가 누구 였는지?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그곳에 사랑이란게 정말 있었는지?
 
심지어
광화문이라는 곳이 정말 존재 했었는지 조차 불 분명하다.
 
내 추억의 장소에는 항상 내가 없다.
그저 껍데기 같은 지난날의 허상만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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