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밖에는 고가도로의 차들도 거의 끊겼다.
건너편 찻길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무심한 차들 만이 아무 생각없이 내달린다.
바이어의 이메일을 정리하다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나가는 거야 그냥 나가면 되겠지만 갈 곳이 없다.
늘 그런식이다...
어디를 걷고 있는데 행선지가 불 분명해서 늘 미친놈 처럼 돌아만 다닌다.
지금 나가게 되면 흥건이 빗물에 젖은 바짓단을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 스파이 마냥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작전에 미스한 스파이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본거지로 회귀 하겠지?
그리곤 피곤에 떨어져 잠을 잘 것이고 일어나기 싫은 실패자는 행복한 꿈을 쫒아 잠결을 헤메이겠지.
그리곤 또 날이 밝아오고
번잡하게 움직이고
스스로를 위장하고
꿈속에서 조차 잡지 못했던 또 다른 희망을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덕 거리겠지.
2.
다시 돌아와 앉은 내 자리
낮에 했던 온갖 보여주기식의 허세와 창피한 진실들이 한꺼번에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이 시간,
기분 나빴으면서도 마치 아닌 양, 늘 관대한듯한 모습과 표정을 지었던 그 그 그 그야말로 정말 엿같은 행위들을 반성하는 이 시간,
마음 약한 사람들 모여놓고 온갖 자랑질을 내 입으로 다 했으면서 마치 뭔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을 핑계삼아 그것을 합리화 시키고, 나의 설파에 대해서는 스스로 용납하면서, 타인의 지식과 의견은 현학적인 태도라고 매도해 버리거나 무시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는 이 시간....
내일 어차피 또 이런 비슷한 형태로 살 줄 알기에 더욱 더 자괴감이 드는 이 시간...
울고 싶다..
울어서 철저히 나를 부숴 버리고 싶다.
3.
좀 더 순리대로 물 흐르는 대로 살 수는 없는 걸까?
정확히 말해서 나도 제발 그 순리에 편승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난 내가 살아오면서 남을 미워한 적도 특별히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인간미가 넘치는 박애주의자나 이타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로 살아왔을 뿐이다.
일부러 가서 사회봉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길 가시는 할머니의 무거운 보따리 정도는 당연히 들어 드리며 살아왔다.
일부러 어떤 특정인을 위해 기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불쌍하고 억울한 이들을 보면 같이 울어줄 정도의 감성을 가지고는 살아왔다.
난 바른생활 사나이는 아니었지만 착하게는 살아왔다.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기도 싫어하는 그저 정서적으로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그리고 남에게 해꼬지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리고 살아오면서 정신적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사업에서 내 고집만 부리거나 부하직원을 괴롭혔다거나 그들과 협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또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늘 어린아이라 할 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해 줬으며,
비록 구차하고 비참한 상태의 사람들도 늘 배려해 주며 살아 왔는데...
그런데...왜??
나한테 뭘 어떻게 하라고!!!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데???
나한테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구?????????
4.
내일 밤엔 모든 게 화창하게 개이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걸어도 바짓단이 젖지 않고 그냥 돌아와 행복한 꿈만 꾸며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허세, 자기합리화, 위선적 행위...
이런거랑 관계없는 화창한 봄날의 삶만 살게 되겠지??
난 정말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