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안경과 L모군의 팔에 있는 카시오 전자시계가 그 시절의 추억을 말해준다. 아마 술먹고 우리집이나 종로5가 포장마차로 향하던 버스 안 이었을 것이다
나 대학 4학년 올라갈 무렵 군대가려고 휴학하고 있을때 그해에 L모군이 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볼때는 그리 합창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졌고, 독창은 더 더욱 안 어울리는 작은 성량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왜 합창단에 들어 왔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지만,
훗날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화음을 맞추려 하는 성실성 만큼은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나도 종로6가 낙산 자락에 살았지만, L모군도 신당동 뒷 산동네에 살았던것 같다.
대략 당시 산동네 하면 그야말로 달동네라고 불리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결지 였는데,
당시 3천원 짜리 카시오 전자시계를 차고 다닌걸 보면 아마 그 놈도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노자나 장자 그와 비슷한 철학에 심취해 있었을 때 L모군을 만났고, 만나면 항상 노래와 술 그리고 철학서에서 얼핏들은 그런 구절들을 가지고 놀았었다.
L모군은 "하고자 함이 없어도 함이있는..."이란 구절을 온몸으로 실천할 줄 아는 친구였다.
학교 끝나면 술마시고 술 자리가 모자르면 밤늦게 우리집에 뻔질나게 와서 술마시고, 게란 후라이 해 먹고 놀던 그 시절 서 부터 L모군에 대한 신뢰감은 쌓여갔다.
내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을때에도 L모군과는 끊임없는 만남을 가졌고 회사 근처에 와서 나 퇴근하기를 기다린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도 당시 상사의 눈치를 보다가 도망쳐 나오듯 회사를 빠져 나왔지만,
만일 L모군이 여자 였다면 누가 봐도 연애하는 사람들 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후 2년후 내가 외국으로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도 간간히 만남을 가졌고,
91년 내가 다가 한국에 잠시 왔었을 때도, 다시 외국가서 있다가 95년 다시 왔을 때도, 그 이후 다시 왔다 갔다 했을때도 항상 찾아서 만나곤 했다.
98년 이후 내가 완전히 한국에 정착해서 사업을 할 때부터 현재 까지는 한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날 정도로 뻔질나게 만나서 술을 마셨던것 같다.
그런 L모군은 대학원 졸업하고 캠브리지에 취직하여 그 특유의 성실성으로 부장까지 승진 하더니 지난 5월에 멕시코 현지법인 사장으로 발령나가 버렸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L모군의 와이프이자 동시에 내 후배도 되는 은경이의 환송식이 있는 날 이다. 아마 향후 5년 내로는 안 돌아 올것이다.
내년에 내가 한번 놀러 가면 되겠지만, 은경이와 날 큰아빠라고 부르는 선민이 까지 간다니까 벌써부터 가기도 전에 보고 싶어 진다.
5년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다같이 동남아 필리핀이나 베트남에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L모군과 만나면 가장 잘 부르는 노래는 동무생각 이란 노래다.
그러고 보면 난 꼭 헤어지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있는 노래는
이미 헤어짐을 암시하는 가사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동무 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나언덕위에 백합필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나언덕과 같은 내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새 같은 내 동무야
내가 네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없이 오는 눈발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맘에 가등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김규환 편곡/안산시립합창단/지휘 박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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