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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한가한 나날들

by 개인교수 2006. 7. 6.



아들을 보면 문득문득 '저 자식이 나중에 나 늙으면 나한테 지랄하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엊그제 내가 잘 아는 목사(나보다 1년 형)의 시골집에 다녀왔다.
심심하기도 했거니와 내 스스로도 그 목사의 아버지를 오래전서 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뵙고 싶어서였다.
현재 77세가 되어 초라하게 동해안 바닷가메서 20피트 콘테이너로 개조한 구멍가게를 하고 계셨다.
원래는 방송국에서 기술부장으로 잘 나가는 분 이셨다.

이제부터는 목사도 형도 아닌 그 놈이라고 부르겠다.

시골에 가자마자 자기 아버지한테 깨끗하게 안 해놓고 산다고 완전 지랄을 떨었다.
항상 남에게 웃음을 보이며 친절을 떨었던, 게다가 목사라는 그 놈이 그렇게 인자하신 자기 아버지에게 그런식으로 대한다는게 정말 이해가 안됐다.

난 지금은 돌아가신 그 놈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는데, 예전에도 우리집에와서 우리 어머니랑 대화 하시는 중에도 당신에게 못되게 구는 아들 이야기를 한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학창시절의 오래전 이야기라서 목사가 된 지금에 까지 설마 그러려니.... 생각 했는데
상태는 보기보다 심했다.

아버님은 인자한 목소리로 "야 그만해라~ 박달이 앞에서 챙피하니까 그만해라" 라시며 너털웃음을 짓고 계셨고,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반찬정리 좀 하시고, 집구석 청소도 안하고 이 꼴이 뭐냐? 라는 식으로 계속 퍼부었고, 심지어는 아버지가 돈 다 탕진해서 우리가 지금 요모양 요꼴로 못살고 있다라고 까지 말했다.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데 그자리에서 내가 화를낼 게재도 아니여서, 그냥 조금 화를 누르는 듯한 음성으로 "됐어 이제 그만해. 내 앞에서 왜그러는거야?" 라고 말을 했다.
그 순간에도 그 아버님에게 얼마나 죄송스러웠던지......,

그 아버님은 잘나가던 방송국(아마 KBS 였을 것이다) 기술부장으로 돈도 많이 버셨는데,
나이 50쯤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부셨는지,
갯벌에 조개를 양식하는 사업을 하신다고 하다가 돈을 많이 까먹으셨고, 나중에는 배도 한대 사셨다가 사기당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으로 20년전 싼 값으로 영덕바닷가에 약 30평 짜리 집과, 30여평의 땅을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고, 그저 거기에서 밥만 드시면서 빈궁하게 사시고 계신다.

그 놈은 그 아버지의 전재산인 촌동네 집과 땅을 마치 당연히 자기것인양 이래라 저래라 했다.
그 놈 본인도 자식이 셋씩이나 있는 놈이, 게다가 한 동네의 목사까지 하고 있는 놈이 어떻게 그렇게 불효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올라오는길에 몰래 용돈 쓰시라고 10만원을 주머니에 넣어드렸는데 극구 안받으시겠다고 하는것을 강제로 넣어드렸다.
나 어렸을때 많이 주셨으니까 이제는 제가 드릴 차례입니다 라고 몇번을 설득시켜서 간신히 돈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말 하지 마세요 라고 당부했다.
나한테도 아버지 같은 분 이기 때문에 내가 한 행위는 동정이 아니라 당연한 행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랑 41살 차이가 나는 아들을 보면서 "저 놈도 혹시 나중에 나한테 그러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아까 내가 밥먹으라고 할때도 밥안먹고 장난친점,
장난감 치우라고 해도 빨리빨리 말 안들은 점,
사탕먹을때 내가 먹을까봐 몰래 먹은 점,
내가 집에 가자고 할때 공원에서 그네 좀 더 탄다고 징징거린 점,
이런 아들의 나쁜 점들이 떠오르며 갑자기 불안해 진다.  ^^;;

정말 교육 잘시켜야 겠다.
정말 연구해서 잘 시켜야겠다.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걸 보면 정말 한가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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