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책 <예수는 신화다>에서 예수와 바울 이야기가 어떻게 날조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로마 교회는 자체 신앙에 어울리는 역사를 필요로 했다. 적을 비방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승리를 자축하는 역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진실은 엄격히 억압되었고 좀더 수용 가능한 역사가 날조되었다. 이렇게 날조된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식으로 당당하게 가공의 복음서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신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저술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예수 이야기 자체인데, 저자는 그런 저술들이 비유적 허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문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허구를 만들어 냈을 때, 그들은 그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통용되기를 원했다. 기독교 전통 역사의 토대가 된 그런 저술들은 날조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2세기 말에 바울의 원래 편지들은 새롭게 개찬되어 바울을 문자주의 기독교의 계보에 끼워 넣음으로써 바울을 영지주의에서 격리시켰다. 기독교를 철저히 로마화하기 위해 바울을 유명한 로마 정치가 세네카와 가까운 인물로 조작하기까지 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원고 300편에는 바울의 편지 8통과 세네카의 답장 11통이 담겨 있는데, 물론 모든 편지가 완전히 위조이지만 최근까지도 진짜 편지인 것으로 믿었다! 그 편지들 속에서 세네카는 기독교를 수용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바울은 황제의 궁전에서 복음을 공식 설교하는 사람으로 세네카를 지명한다.
4세기에는 이런 날조를 기초로 해서 제롬은 자신의 기독교 성자 목록에 세네카를 포함시켰다. 여러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 편지가 위조되기도 했다. 그 편지들이 지금은 신약에 포함되어 <성경>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빙성이 의문시되었다.
가톨릭의 대변자였던 유세비우스조차도 야고보서와 유다서, 베드로서, 요한서의 출처를 의심했고 계시록은 전적으로 날조된 것이라고 보았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로마의 클레멘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인이 썼다는 편지들은 5세기까지 계속해서 위조되고 희석되고 첨삭되었다. 라틴어로 번역할 때도 수많은 왜곡이 이루어졌다. 기독교 철학자 오리게네스의 가르침 등 여러 가르침도 이때 왜곡되어, 당시 정통으로 간주된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수정되었다.
기독교 성자들에 대해서는 상습적으로 허구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흔히 그런 허구는 죽은 이교도 현자들의 생애와 전설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기독교 권력의 핵심인 로마 교회를 신임하기 위해 베드로가 로마로 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 박혔다는 이야기를 꾸며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너무 늦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신약에 포함시키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기 있는 영지주의 저술은 영지주의 색채를 지운 채 편집해서 문자주의 문서로 만들었다. 심지어 이교도의 저술까지 각색해서 자신들의 도그마를 뒷받침하는 저술로 만들었다.
예수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는 이교도 시빌의 신탁은 4세기 초에 위조되어 니케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직접 예수의 신격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했다. 그들은 <오르페우스의 증언>도 위조해서 고대 미스테리아의 예언자가 자신의 원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유대인 피타고라스 학파인 필론의 저술을 서툴게 첨삭하기도 했고, 필론이 사도 요한과 율법 논쟁을 했다거나 로마에서 베드로를 만났다는 우스꽝스러운 전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를 기독교인으로 탈바꿈시켜서 신약에 나오는 아리마대의 요셉과 요세푸스를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요세푸스가 역사적 예수의 존재를 증언한 것처럼 내용을 덧붙여 놓기도 했다. 요세푸스가 썼다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후기 문서도 위조된 것인데, 그것은 요세푸스가 직접 문자주의 교리를 가르친 것처럼 꾸민 앞서의 위조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면밀한 언어학 연구를 통해 오늘날 학자들은 이 문서를 위조한 사람을 의심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다름 아닌 이레나이우스의 제자이자, 이단자 사냥꾼 원조인 히폴리토스(220년대)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학자들은 또 바울이 썼다는 데살로니가후서의 언어와 문체가 히폴리토스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 냈다---이 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진짜)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러니 데살로니가후서를 위조한 것이 히폴리토스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나중에 연구해 보려고 스크랩 해 논 것임. 그러니 기독교인들 흥분해서 리플달지 마세요)
로마 교회는 자체 신앙에 어울리는 역사를 필요로 했다. 적을 비방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승리를 자축하는 역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진실은 엄격히 억압되었고 좀더 수용 가능한 역사가 날조되었다. 이렇게 날조된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식으로 당당하게 가공의 복음서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신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저술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예수 이야기 자체인데, 저자는 그런 저술들이 비유적 허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문자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허구를 만들어 냈을 때, 그들은 그것이 역사적 기록으로 통용되기를 원했다. 기독교 전통 역사의 토대가 된 그런 저술들은 날조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2세기 말에 바울의 원래 편지들은 새롭게 개찬되어 바울을 문자주의 기독교의 계보에 끼워 넣음으로써 바울을 영지주의에서 격리시켰다. 기독교를 철저히 로마화하기 위해 바울을 유명한 로마 정치가 세네카와 가까운 인물로 조작하기까지 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원고 300편에는 바울의 편지 8통과 세네카의 답장 11통이 담겨 있는데, 물론 모든 편지가 완전히 위조이지만 최근까지도 진짜 편지인 것으로 믿었다! 그 편지들 속에서 세네카는 기독교를 수용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바울은 황제의 궁전에서 복음을 공식 설교하는 사람으로 세네카를 지명한다.
4세기에는 이런 날조를 기초로 해서 제롬은 자신의 기독교 성자 목록에 세네카를 포함시켰다. 여러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 편지가 위조되기도 했다. 그 편지들이 지금은 신약에 포함되어 <성경>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빙성이 의문시되었다.
가톨릭의 대변자였던 유세비우스조차도 야고보서와 유다서, 베드로서, 요한서의 출처를 의심했고 계시록은 전적으로 날조된 것이라고 보았다.
순교자 유스티누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로마의 클레멘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인이 썼다는 편지들은 5세기까지 계속해서 위조되고 희석되고 첨삭되었다. 라틴어로 번역할 때도 수많은 왜곡이 이루어졌다. 기독교 철학자 오리게네스의 가르침 등 여러 가르침도 이때 왜곡되어, 당시 정통으로 간주된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수정되었다.
기독교 성자들에 대해서는 상습적으로 허구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흔히 그런 허구는 죽은 이교도 현자들의 생애와 전설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기독교 권력의 핵심인 로마 교회를 신임하기 위해 베드로가 로마로 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 박혔다는 이야기를 꾸며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너무 늦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신약에 포함시키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인기 있는 영지주의 저술은 영지주의 색채를 지운 채 편집해서 문자주의 문서로 만들었다. 심지어 이교도의 저술까지 각색해서 자신들의 도그마를 뒷받침하는 저술로 만들었다.
예수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는 이교도 시빌의 신탁은 4세기 초에 위조되어 니케아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직접 예수의 신격을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했다. 그들은 <오르페우스의 증언>도 위조해서 고대 미스테리아의 예언자가 자신의 원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유대인 피타고라스 학파인 필론의 저술을 서툴게 첨삭하기도 했고, 필론이 사도 요한과 율법 논쟁을 했다거나 로마에서 베드로를 만났다는 우스꽝스러운 전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를 기독교인으로 탈바꿈시켜서 신약에 나오는 아리마대의 요셉과 요세푸스를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요세푸스가 역사적 예수의 존재를 증언한 것처럼 내용을 덧붙여 놓기도 했다. 요세푸스가 썼다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하여>라는 후기 문서도 위조된 것인데, 그것은 요세푸스가 직접 문자주의 교리를 가르친 것처럼 꾸민 앞서의 위조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면밀한 언어학 연구를 통해 오늘날 학자들은 이 문서를 위조한 사람을 의심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다름 아닌 이레나이우스의 제자이자, 이단자 사냥꾼 원조인 히폴리토스(220년대)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학자들은 또 바울이 썼다는 데살로니가후서의 언어와 문체가 히폴리토스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 냈다---이 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진짜)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러니 데살로니가후서를 위조한 것이 히폴리토스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나중에 연구해 보려고 스크랩 해 논 것임. 그러니 기독교인들 흥분해서 리플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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