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또 인도에서 건너간 이들 현자가 예수를 산스크리트어로 구세주(Lord)를 뜻하는 `이사(Isa)'라고 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아가 예수 역시 나중에 인도로 건너가 현지의 위대한 철인(哲人)들과 요가와 명상으로 수행했는데 이 때가 성경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아 `잃어버린 시절'로 표현되는 13세에서 30세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1천642쪽의 이 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요가난다 자아인식 장학재단'이 그의 사후 52년만에 생존 당시의 강연과 저서를 기반으로 펴낸 것이다.
ANI 통신은 이 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더 깊은 의미와 함께 기독교의 가르침이 요가와 본질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병궁복음서』
서양의
고대천문학(점성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는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중심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그 일주(一周) 기간은 약 2만
6천 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이 도는 궤도를 황도대(黃道帶)라 부르는데, 이 황도대는 12궁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태양이 12궁의 한 자리를
지나가는 시간은 약 2,100년이 조금 넘는다.
이 시간의 마디가 천도섭리 측정의 한 시대가 된다. 6,000년 전 아담이 살던 시대는 태양이 금우궁(金牛宮) 시대에 들어갔을 때이며,
4,000여 년 전 아브라함이 살던 때는 백양궁(白羊宮) 시대이며, 로마제국의 건국 시기와 2,000여 년 전 예수가 탄생한 때는 쌍어궁(雙漁宮)
시대에 해당되며, 지금은 쌍어궁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의 태양이 보병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대전환기라고 한다.(『보병궁의 성약』,
11∼13쪽)
그러므로 『보병궁복음서』는 다가오는 새 시대의 복음서인 반면, 기존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는 과거시대(금우궁, 쌍어궁 시대)의 복음서가 된다. 이 『보병궁복음서』는, 신약성서에 빠져 있는 예수의 구체적 생애와 그가 전하고자 한 근본진리의 말씀이 실려 있는 기독교 ‘제3의 복음서’이자 ‘제3의 성경’이다.
예수의 인간 구원의 길
신약성서의 3대 공관복음서(「마태」·「마가」·「누가」)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는 『보병궁복음서』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성서에 빠져 있는 예수의 생애, 특히 12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삶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예수가 전한 가르침의 연원(배경)과 진수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제 『보병궁복음서』를 통해 예수가 걸은 구도(求道)의 과정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원래,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러 왔던 세 명의 동방박사(호르, 룬, 메르)는 페르시아의 마기(magi, 사제)들이었다(『보병궁의 성약』 5장,
38장). 그 후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벳과 마리아 성모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기 예수와 요한을 안고 이집트로 피난갔을 때, 조안(zoan)이라는
곳에서 엘리후와 살로메라는 현자를 만나게 된다. 엘리자벳과 마리아는 이 두 현자의 성림(聖林)의 구도장에서 사랑, 생명의 통일, 두 개의 자아,
삼위일체의 신(神), 도신(道神), 브라만교, 유대의 성서, 석가부처의 교훈, 페르시아의 종교 등에 대하여 3년간의 영적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유대로 귀국한다.(『보병궁의 성약』, 7∼12장)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후 소년시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유대의 여러 예언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또한 진리에 두루 정통하여 율법학자들과 막힘
없이 논하기도 하자, 어떤 이들은 소년 예수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이거나 그리스도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자라 12세가 된 예수는 목수가 되어 아버지 요셉을 돕고 있었다. 이 때 남부 인도 오릿사 주(州)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다가 성전에서 만난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를 찾아가 그에게 동양의 지혜를 배우도록 인도 유학을 청원한다(『보병궁의 성약』, 21장). 예수가 동양의 지혜를 배웠다는 구도의 편력은 『보병궁복음서』 외에도, 러시아의 역사가이며 고전학자인 니콜라스 노토비치(Nicholas Notovitch, 1858~?)가 인도 북부의 케시미르 지방에 있는 헤미스 사원에서 라마승으로부터 전해 받은(1887년) 예수에 관한 두 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출간한 『이사전』*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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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
이사(예수)가 아버지의 집을 은밀히 빠져 나와 예루살렘을 떠나 상인들과 함께 신드(Sind)로 향했던 게 바로 그 때였으니 이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완전히 하고 대붓다(the great Buddha)의 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라.(『이사전』 4:12∼13 /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0쪽 재인용)
‘해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예수는 남부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하면서 『베다』성전과 『마니』법전을 배우고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쟈간나스의 광장을 걸으면서 라마스가 “유대의 선생, 진리란 무엇이라 생각하오?”라고 물었을 때, 예수가 말한다.
예수-진리는 변치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와 허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의 것이고, 허위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진리는 유(有)로 원인은 없지만 일체의 것의 원인이 됩니다. 허위는
무(無)이면서 유(有)의 표현을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시작된 것은 끝나야 합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유(有)의 표현이지만 본래는 무(無)이므로 사라져 버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에테르가 진동하는 동안만 반영의 표현을 하고 사정이 변하면
소멸합니다. 성스러운 기(氣)는 진리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화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라마스-과연 그렇겠구나. 그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예수-인간이란 진리와 허위의 이상한 혼합체입니다. 이 양자가 싸웁니다.
라마스-힘(power)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힘(power), 그것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 환영(幻影)입니다. 진기(眞氣, force)는 변치 않지만, 힘은 에테르가 변하면
변합니다. 절대적인 기(氣, force)는 신의 의지이며 전능한 것입니다. 힘은 성기(聖氣)에 이끌려 나타난 신의 뜻이죠. 바람에도 힘이 있고,
파도, 전기, 인간의 팔, 눈에도 힘이 있습니다. 에테르는 이와 같은 힘(power)을 일으키고, 엘로힘·천사·인간 그 밖에 사고하는 것의
사상을 진기(眞氣, force)가 지도합니다.
라마스-예지(叡智)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예지란 인간이 이것을 토대로 삼아 그 위에 자기자신을 세우는 바위입니다. 그것은 유(有)나 무(無),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는
영지(靈知)입니다.
라마스-신앙이란 무엇인가?
예수-신앙이란 하느님과 인간이 전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인간이 신적인 생활에 도달할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신의 마음에 이르는 사다리로, 구원에는 삼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념으로 이것은 인간이 아마 그것이 진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신앙으로 그것은 인간이 진리를 아는 것, 셋째는 완성 즉 인간 자신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신념은 신앙 속으로 승화되고, 신앙은 완성으로
열매맺고 그럼으로써 자기와 신이 하나가 될 때 인간은 구원을 받습니다.(『보병궁의 성약』 22:1∼31)
예수는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 강 주변 마을의 노예(수드라), 농부(바이샤)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 동포라는 것과 만민평등,
인간의 절대평등을 가르친다.(『보병궁의 성약』 23∼25장)
이사(예수)께서 주거나웃, 라자그리하, 베나레스 그리고 다른 성지에서 6년을 지내셨더라. 그가 바이샤와 수드라에게 경전을 가르치시고 또한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거하시니 모든 이들이 그를 사랑하였더라.(『이사전』 5:5/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181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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