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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vs Truth

성배와 성혈 [ 1. 왕족 예수 ]

by 개인교수 2004. 1. 15.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에 관하여 말할 때 마치 그것이 하나의 단일 종의 것, 즉 일관성 있고 동질적이며 통일되어 있는 실체인 것처럼 말한다. '기독교'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기독교'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이나 헨리 8세에 의해 주도된 영국 성공회가 그것이다.

그 밖에도 기독교에는 16세기의 원초적인 루터교와 칼빈주의로부터 비교적 최근에 발전된 유니테리언주의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의 여러 다른 종파들도 있다. 제 7안식일 예수재림교와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많은 '극단론자들' 혹은 '복음주의적' 회중들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 및 문선명의 '통일교' 처럼 현대의 종파들도 기독교에 분류되고 있다. 엄격하게 도그마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으로부터 급진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광범위한 신앙형태들을 개관해 볼 때 정확하게 '기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에 관하여 말할 수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즉 천차만별의 기독교 신조들을 묶어주는 단 하나의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신약성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신약성서가 예수와 그의 십자가 및 부활에 부여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이다. 그 사건들의 실제적 또는 역사적 사실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그 사건들의 상징적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기독교인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만일 기독교라고 불리우는 광범위한 현상 내에 어떤 통일체가 있다면 그것은 신약성서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4복음서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예수에 관한 설명들에 존재한다. 이러한 설명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기록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그 설명들은 합리적인 동시에 비난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기독교인은 어린시절부터 복음서들에 보존되어 있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님에 의하여 영감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결정적인 것이라고 믿도록 교육되고 있다. 복음서들의 저자라고 추정된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은 서로 다른 기자들의 증언을 재강조하고 확증한 비난의 여지가 없는 증인들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이 4복음서들은 서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크게 불일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일반적인 전승에 관한 한 예수의 혈통과 출생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볼 때 그러한 전승이 의존하고 있는 복음서들은 그 문제에 관하여 훨씬 더 모호하다. 오로지 두 복음서들만이,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예수의 혈통과 출생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복음서들도 서로 크게 상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왕은 아니지만 다윗으로부터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된 귀족이었다. 반대로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문은 다윗의 집안으로부터 이어져 온 가문이긴 했지만 약간 지위가 낮은 가문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목수'의 전설이 생긴 것은 누가복음의 설명에 근거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개의 족보는 너무나 크게 불일치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두 명의 상당히 다른 개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음서들 사이의 불일치는 예수의 가문과 족보에 관한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그가 출생했을 때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는 왕들의 방문을 받았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구조사--역사에 의한면 이 인구조사는 결코 시행되지 않았다.--를 위하여 나사렛에서 예수가 구유의 비천한 몸으로 출생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가족은 대단히 유복한 생활을 하면서 쭉 베들레헴에서 살아왔었다. 그리고 예수 자신은 하나의 가옥에서 태어났다. 마태복음의 설명에서 보면 헤롯의 유아 박해 때문에 예수의 가족은 이집트로 도망치게 되었으며 그들이 나사렛에 정착한 것은 이집트에서 돌아온 후였다.

이들 각각의 설명에 나오는 정보는 상당히 독특하며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가정해 볼 때 전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정보 자체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두 모순되는 설화들을 둘 다 올바르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두 설화들이 타협될 수 있는 아무런 방도도 없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간에 그 두복음서들 중의 하나가 잘못된 것이든가 아니면 둘다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인정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명백하고 불가피한 결론에 직면하여 볼 때 그 복음서들은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 복음서들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어떻게 신성불가침의 것이 될 수 있는가?

복음서들을 더 많이 연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들 사이의 모순들은 분명해진다. 실제로 그 복음서들은 십자가 사건의 날짜에 대해서조차도 일치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전날에 발생하였다.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 사건은 유월절 다음날에 발생하였다.

그 복음서들은 예수의 인격과 성품에 대해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각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에 묘사된 인물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예를들면 누가복음에서는 온유한 양 같은 구세주로 묘사되어 있으며 마태복음에서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온 강력하고 장엄한 주권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도 불일치하고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이다. "누가복음에는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의 하는 것을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단지 "다 이루었다"라고만 되어있다.

이러한 모순들로 보아 그 복음서들은 하나의 대단히 의심스러운 전거(典據)로서 인정될 수 있을 뿐 결정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없음은 확실하다. 그 복음서들은 어떤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또는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대단히 개방적으로 검열되고 편집되고 개정되고 주석되고 재기록되어 왔다.

성서는 단지 하나의 발췌록일 뿐이며 많은 점들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독단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모두 적용된다. 사실 성서는 실제로 수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과 기록들을 수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소실' 되어졌기 때문에 빠진 책들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책들이 고의로 제외되었다. A.D 367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아다나시우스 주교는 신약성서에 수록될 수 있는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은 393년에 힙포교회회의에 의해 재가되었으며 4년 후에는 카르타고교회회의에 의해 다시 재가되었다. 이 교회회의들에서는 신약성서를 발췌하여 구성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어떤 책들은 수집되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의 신약성서를 형성하였으며 다른 것들은 단호하게 무시되었다. 어떻게 그러한 발췌과정이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어떻게 성직자들의 회의가 어떤 책들은 성서에 속하고 다른 책들은 속하지 않는가를 무모하게 결정할 수 있었는가? 특히 제외된 책들 중 몇권이 역사적 정확성에 대하여 완전히 확고한 자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떤가?

더 나아가 오늘날 존재하는 성서는 단순히 다소 독단적인 발췌과정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과감하게 편집되고 검열되고 개정되기도 하였다. 예를들면 1958년에 콜롬비아 대학교의 몰톤 스미드(Morton Smith) 교수는 예루살렘 근교의 한 수도원에서 마가복음의 없어진 단편을 담고 있는 한 편지를 발견했다.

그 단편은 복음서를 편집할 때 소실되어 없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그 단편은 초기 교부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의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주교의 선동으로--명확한 명령은 아니었지만--고의적으로 삭제되었었다.

클레멘스는 영지주의 종파, 즉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에 대하여 불평한 데오도레투스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던 것처럼 보인다.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은 마가복음의 어떤 구절들을 그들 자신의 원칙, 즉 클레멘스와 데오도레투스의 입장과는 일치하지 않는 원칙에 따라 해석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결국 데오도레투스는 그들을 공격하였으며 그의 행위를 클레멘스에게 보고하였음이 분명하다. 스미드 교수에 의해 발견된 그 편지에서 보면 클레멘스는 그의 제자 데오도레투스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의 언어도단적인 가르침들을 침묵시킨건 잘 한일이다. 그들은 예언서에서 언급된 '유성들'로 계명의 좁은 길로부터 육욕적이고 신체적인 끝없는 죄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듯이 사탄의 깊은 것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거짓의 어두운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자유롭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비굴한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그리고 전적으로 적대시되어야 한다. 그들이 비록 참된 어떤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동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참된 것이라고 다 진리가 아니며 단순히 인간적인 견해에 따라 참된 것처럼 보이는 진리도 참된 진리 즉 신앙에 따르는 진로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독교 교부의 진술로서는 엉뚱한 것이다. 결국 클레멘스는 [그대의 적대자가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그대는 그것을 부인해야 하며 그를 논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다음 구절에서 클레멘스의 편지는 계속해서 마가복음과 카르포크라테스파들에 의한 마가복음의 '오용'--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을 논의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관해 말하자면 베드로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그는 주의 행적들에 관한 설명을 냵다. 하지만 그것은 그 행적들을 모두 진술하거나 신비한 것들을 암시하지도 않으며 다만 학습받고 있던 자들의 신앙 육성을 위해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발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순교하자 마가는 그 자신의 기록과 베드로의 기록을 모두 가지고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갔다. 그런데 마가는 베드로의 기록들에서 무엇이든 영적 지식의 진보를 위해 적합한 것들은 그의 기록들에다 옮겨 적었다. 이리하여 그는 완전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다 영적인 복음서를 작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급되어서는 안될 것들은 누설하지 않았으며 주님의 신비한 가르침은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기록된 그 이야기들에다 다른 이야기들을 더 추가했으며, 나아가서는 듣는 자들을 일곱개의 봉인으로 감추어져 있는 진리의 가장 내부에로 인도하리라고 생각되는 어떤 교훈들을 도입하기도 했다. 요약하면 이와같이 자료들을 미리 짜 맞추어 놓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악한 의도나 부주의하게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을 때 그는 그의 작품을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교회에 남겨 놓았는데 그것은 아직도 그곳에서 가장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으며 위대한 신비들을 전수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읽혀지고 있다.

그러나 비열한 마귀들은 언제나 인류의 멸망을 획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악마들에 의해 교사되었으며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는 카르포크라테스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어떤 장로를 사로잡아 그에게서 그 신비한 복음서의 한 사본을 압수했다. 그는 그 복음서를 그의 신성 모독적이고 육욕적인 교리에 따라 해석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흠없고 거룩한 말씀들을 전혀 추잡한 거짓들과 혼합시킴으로써 그 복음서를 타락시키기도 하였다.

클레멘스는 이처럼 마가복음의 비밀 진본이 있음을 역력히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클레멘스 주교는 데오도레투스에게 그것을 부정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르포크라테스파에게는 절대 양보해서는 안되며 그들이 거짓을 제시할 때 그들이 보여주는 비밀 복음이 마가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맹세코 그 사실을 부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실되다고 하는 모든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클레멘스가 그의 제자 데오도레투스에게 논박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던' 이 '신비한 복음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클레멘스는 그의 편지에서 그 복음서의 본문을 글자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써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바로 그 복음서의 말씀에 의하여 그 거짓들을 논박함으로 그대가 요청한 질문들에 즉시 대답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라는 구절 이후에서 그 뒤에 나오는[사흘 후에 그가 살아날 것이다]라는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 신비한 복음서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그대로 도입하고 있다.

그들이 베다니로 들어올 때 오라비가 죽은 어떤 여인이 거기 있었다. 그녀가 와서 예수 앞에 절하며 그에게 이르길 "다윗의 아들이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녀를 꾸짖었다. 그러자 화가 난 예수는 그녀와 함께 무덤이 있는 동산으로 떠났다. 곧 커다란 부르짖음이 그 무덤으로부터 들려왔다.

예수는 가까이 가서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을 굴려 내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청년이 있던 곳으로 들어가 그의 손을 내밀어 청년의 손을 잡아 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청년은 예수를 바라보자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함께 있도록 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무덤에서 나와 그들은 그 청년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이다. 엿새 후 예수는 그 청년에게 해야 할 바를 말했다. 그날 밤 그 청년은 벗은 몸에 베옷을 입고 예수에게 왔다. 그는 그날 밤을 예수와 함께 지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에게 하나님 왕국의 비밀을 가르치셨기때문이다. 거기서 일어나 예수는 요단 저편으로 되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의 현존하는 어떤 역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대단히 낯익은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요한이 기록했다고 생각되는 제 4복음서에서 기술된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이다. 하지만 위에 인용된 설명에서 보면 몇몇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첫째, 예수가 바위를 굴려내기 전에 또는 그에게 나오라고 명령하기 전에 무덤으로부터의 '커다란 부르짖음'이 있다. 이것은 무덤에 있던 자가 죽지 않았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건이 기적적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부정하고 있다.

둘째, 나사로 사건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설명보다는 복잡한 설명이 더 믿음으로 인도하는 어떤 요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을것이 분명하다. 위에서 인용된 그 구절은 무덤에 있는 사람과 그를 '일으킨'사람 사이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입증해 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의 독자는 아마도 동성애적인 암시를 보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각을 만족시킴으로써 감각의 초월을 추구했던 분파인 카르포크라테스파의 사람들은 그러한 암시를 정확하게 식별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미드 교수가 주장하고 있듯이 그 사건 전체는 전형적인 신비 학파의 비법전수, 즉 그 당시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던 종류의 의식적이고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실제로는 훨씬 더 타당성이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사건과 위에서 인용된 구절은 어떤 현대의 마가복음 역본 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마가복음 역본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약성서에서 나사로 또는 나사로라는 인물에 관한 언급들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클레멘스의 조언은 데오도레투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후의 대가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 나사로 사건 전체가 마가복음에서 완전히 삭제되었음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마가복음이 그렇게 과감하게 삭제되기는 하였지만 그 복음서는 그럴듯한 첨가물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원본에서 보면 마가복음은 십자가 사건, 장례, 그리고 빈 무덤으로 끝나고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활 장면도 없으며 제자들과의 재회도 없다.


그렇지만 몇몇 현대의 성서들은 보다 인습적인 마가복음 종결, 즉 부활을 포함하고 있는 종결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현대의 성서 학자들은 이러한 확장된 종결이 2세기에 기원되어 원문서에 부가된 후대의 첨가물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마가복음은 이와같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은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인간의 손으로 다듬어지고 편집되고 검열되고 수정된 두 종류의 성문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두 종류의 문서들은 어느 것도 확실치가 않다. 반면에 그것들은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논증이 가능하며 입증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만이 유독 변경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겟는가? 마가복음이 그렇게 쉽게 수정된 것이 분명하다면 다른 복음서들도 마가복음과 유사하게 취급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탐구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복음서를 결정적이고 비난의 여지가 없는 전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복음서들을 버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날조된 것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2천년 전에 성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에 이용할 수 있는 몇몇 단서들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정확하게 관찰했으며, 그것들을 발췌하였으며, 우화에서 사실을 분리해 내었으며, 그것들이 담고 있는 진리를 그 진리가 때때로 구현되어 있는 가짜 모형으로부터 구분했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행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독교 시대 초기의 성지의 역사적 현실과 상황에 익숙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서들은 공허하고 떠돌아 다니며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여러 세기 동안에 마술적으로 생겨난 자동적인 실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은 사해 두루마리들, 호머와 버질의 서사시들, 성배 소설과 같은 다른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문서들이다. 복음서들은 대단히 특수한 장소, 대단히 특수한 시대, 대단히 특수한 사람들과 대단히 특수한 역사적 요인들의 산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