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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사람을 평하는 잣대

by 개인교수 2007. 3. 19.

세느강은 바로 우리집 앞에 있다. 그래서 거의 매일 강변을 걷곤 한다.
어느날 인가 강변을 걷고 있는데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아주 세련된 한국여자애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는 스케치북과 원단 스와치를 끼고 있는 걸로 보아 패션을 공부하는 여자애들인것 같았다.

"디자인 공부 하시나봐요?"
"네...."

나는 이 세련된 여자애들에게 물어봤다

"한국 어디서 오셨어요?"
"전남 고흥이요~~"

파리, 세느강, 패션디자인, 전남 고흥, 참 절묘한 부조화 이다...ㅡ.ㅡ;;

1.
이 위의 이야기를 동네 작가형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아주 배꼽을 잡고 웃는다.
압구정동이나 대치동에 산다는 말을 내심 기대했다가 촌 구석인 전남 고흥이라는 지명이 아가씨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긴장의 고조가 허물어 지면서 웃게 되어있는 이야기의 구조 이다.

그 이후로 이 형은 틈만나면 사람 붙잡고 이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

그 형은 맥주집에서 어떤 여자한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형은 신이나서 원 스토리에 긴장감 고조를 위한 살을 많이 붙혀서 결론으로 도달하고 있었다.

"한국 어디에서 오셨어요? 라고 하니 "전남 고흥이요" 라고 대답했답니다." "ㅎㅎ 안웃겨요?"
그 여자왈 "근데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고개 떨구는 소리 털썩,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  그리고 썰렁~~~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2.
이 형은 그 다음날 기운을 차려서 왕년에 가수 했다는 어떤 남자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후배는 그 즉시 깔깔거리며 죽어라고 웃더니.

"형~~ 전남 고흥은 좀 약하지 않어? 형 벌교 어때? 전남 벌교 죽이잖아.. 듣기만 해도 촌스러움이 확 와닿잖아.. ㅎㅎ"

그 친구 정말 대단한 감각이다.

그리고 그 후배는 또 지적한다.
"형~ 중간에 너무 여러가지 첨가 시키면 이야기의 동선이 흐려지니까 되도록이면 간결하게 말 해야돼.."
이런식으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동선!!! 하수들의 입에서는 절대 나올수 없는 단어!!!

"예쁜 아가씨 한테 집이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그 아가씨가 가리봉오거리요 라고 하면 웬지 웃기지 않니?"
"그것 보다는 내발산동이나 말죽거리 가 더 웃기지 않아요?"
"아니, 그것 보다는 봉천13동 이라든지 난곡 산21번지는 어때요?"

키득키득 웃으며 줄거운 시간은 흘러간다.
어짜피 우리의 만남은 즐거움이 목적이기 때문에 즐겁기만 하면 된다.
사업 애기는 대낮에 정식으로... 술 마실땐 유치하고 즐거운 얘기만...

3.
우리 동네 형은 이 이야기를 상대방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깔깔대고 웃으면 우리랑 같은 과로 분류하고, "그런데요? 그게 뭐가 웃겨요?" 라는 말을 하면 같이 술 마셔봐야 별 재미없을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나 역시 그러하다.
단순한 위트 하나 이해 못해서 다시 물어 보거나,
그 나이에 실없이 그게 뭡니까? 라는 입장으로 안스럽게 나를 쳐다 본다거나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자체를 아주 유치한 지꺼리로 여긴다거나
금전과 이익에 관계되지 않는 대화에는 흥미없어 하는 그런 놈들 하고는 나 역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가끔 우연히 만나면 실없다는 듯, 한심하다는 듯...
"야~ 너 아직도 이러고 사니?"라는 말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친구나 동료에게 하는 무감각한 인간들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져있다.

그저 내 마음 속으로만
'자식, 어렵구나 사는구나...., 친구의 가벼운 농담 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넌 아직도 그렇게 인생의 여유가 없니?... 회사 짤리지 말고 잘 살어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