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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vs Truth

성배와 성혈 [ 9. 바라바는 누구였는가? ]

by 개인교수 2004. 1. 17.
성배와 성혈 [ 9. 바라바는 누구였는가? ]
예수가 실제로 자녀를 가지고 있었다는 어떤 증거가 복음서들에 있는가?
명백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랍비들은 자녀들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서 요청되었다. 만일 예수가 랍비였다면 그가 자식 없이 지낸 것은 가장 이례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랍비였건 아니었건 간에 자식이 없이 지냈다는 것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논증들 자체는 아무런 결정적인 증거도 되지 못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특수한 종류의 증거가 있다. 그 증거는 복음서들에서 바라바로 나타나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 바라바--왜냐하면 마태복음 원문에서 보면 그는 바로 이 이름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로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밖의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일치는 놀라운 것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바라바(Barabbas)'라는 말의 어원과 의미를 확실히 알지는 못하고 있다. '예수 바라바'는 '예수 베라비(Berabbi)'의 와전 일 수도 있다. '베라비'는 최고의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랍비에게 붙여진 칭호로 그 랍비의 본명 뒤에 붙여 쓴다.

그러므로 '예수 베라비'가 예수 자신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바라바'는 원래 '예수 바르 랍비(Bar Rabbi)' 즉 '랍비 아들 예수'이었을 수도 있다. 예수 자신의 아버지가 랍비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만일 예수가 자신의 이름을 따라 이름지은 아들이 있었다면 그 아들은 '예수 바르 랍비'였을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즉 '예수 바라바'는 '예수 바르 아바(Bar Abba)'에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아바'는 히브리어로 '아버지'이기 때문에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름은 그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건 특수한 인물이 아니라면 대단히 무의미한 명칭이다. 만일 그 '아버지'가 실제로 '하늘의 아버지'였다면 바라바는 또 다시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바가 될 것이다. 한편 예수 자신이 그 '아버지' 였다면 '바라바'는 또 다시 그의 아들을 가리키는 바가 된다.

그 이름의 어원과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바라바라는 인물은 대단히 호기심을 끄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에 관한 사건을 생각하면 할수록 불법적인 어떤 것이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누군가가 어떤 무엇인가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첫째, 막달라의 이름처럼 바라바의 이름도 고의적이고 조직적으로 모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전승에서 막달라가 창녀로 묘사되어 있는 것과 똑같이 거기에는 바라바가 '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비록 바라바가 그의 이름이 제시하는 것들 중의 어떤 것이었다 할지라도 일반적인 좀도둑이었을리는 없다. 그렇다면 왜 그의 이름이 모함되었는가? 그는 신약성서의 편집자들이 후세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던 어떤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엄격하게 말하면 복음서들 자체는 바라바를 도적으로 기술하지는 않고 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는 정치범, 즉 살인과 폭동의 혐의로 고소된 반역자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보면 바라바는 '유명한 죄수'로 묘사되어 있다.(마 27:16)

그리고 제4 복음서에서 보면 바라바는 'lestai(레스타이:도적)'라고 한다.(요 18:40) 이 말은 '강도'나 '산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 말은 상당히 다른 어떤 것을 의미했다.
'Lestes(레스테스)'는 사실은 로마인들에 의하여 열성당원들에게 관습적으로 적용된 용어였다. 그런데 열성당원들은 얼마동안 사회적 봉기를 조장했던 호전적인 민족주의적 혁명가들이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바라바가 폭동죄를 지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으며 마태복음도 이러한 단언에 모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바라바는 열성당원이었다는 결론을 내려도 좋을법하다.
그러나 이것은 바라바에 관하여 입수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아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는 그 도시에서 일어난 최근의 '소란' '선동' 또는 '폭동'과 연루되어 있었다. 역사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어떤 소란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언급하고 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는 불과 며칠 전에 시민적 소요가 있었다. 즉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엎었을 때의 소동이 그것이다. 바라바가 연루되어 그로 인하여 체포된 소동은 이것이었는가?

그것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럴경우 하나의 분명한 결론이 내려진다. 즉 바라바는 예수의 측근자 중의 하나였다는 결론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에 따르면 유월절에 한 명의 죄수를 놓아주는 '관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관례가 있었다 할지라도 예수대신 바라바를 선택했다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을 것이다. 만일 바라바가 실제로 일반범, 즉 살인범이엇다면 왜 백성이 그의 생명을 구하려 했을 것인가?

그리고 만일 그가 실제로 열성당원 또는 혁명가였다면 빌라도가 무해한 환상가 대신 그처럼 위험성 있는 인물을 석방했을 것이란 사실은 거의 타당성이 없다. 그 환상가는 분명히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마련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에 있는 모든 모순들과 불일치들과 불가능성들 중에서도 바라바를 선택한 것은 가장 두드러지며 가장 불가해한 것이다. 분명 그처럼 서투르고 곤란한 조작의 배후에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현대의 작가는 하나의 흥미있고 그럴듯한 설명을 제안했다. 그는 바라바는 예수의 아들이었으며 예수는 합법적인 왕이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라바를 선택한 것은 곧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 즉 그의 출현 이전에 그처럼 많이 약속되었던 메시아의 임박한 죽음에 직면한 억압 받는 대중을 상상해야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개인보다는 왕조가 더 중요하지 않았겠는가? 혈통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며 따라서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지 않았겠는가? 두려운 선택에 직면한 백성은 차라리 그들의 왕의 자손과 혈통이 보존되도록 하기 위하여 왕이 희생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겠는가? 왕의 혈통이 보존된다면 적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을 것이다.
바라바가 예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노상 터무니 없지도 않다. 예수는 일반적으로 B.C 6년에 태어났다고 믿어지고 있다. 십자가 처형은 A.D 36년경에 일어났으며 그때 예수는 많아야 42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33세에 불과했다 할지라도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그는 16세나 17세에 때 결혼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가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결혼했다 할지라도 그는 13세가 되는 한 아들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13세가 되면 어른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아이들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어린이들은 모든 점에서 성인으로 인정될 수 있었을 것이며 또는 십자가 형에 관하여 그렇게 인정되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