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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s Truth/Oriental26

도올 김용옥, 학계 역사인식 정면비판 (2004. 1 한겨레 인터뷰) “고대→중세→근대? 우린 그런 패턴 안밟았다”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우리학계의 역사인식 방법론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5일 밤 첫 회가 방영된 ‘도올 특강’에서다. 그는 지난 99년부터 3년 동안 과 에서 유·불·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 텔레비전 강의를 해온 그가 이번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한국학 강의에 나선 것이다. 특히 그는 첫날 강의에서 역사를 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로 구분하는 역사해석 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해 관심을 끌었다. 도올과의 인터뷰는 예상 밖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첫 방송 다음날인 6일 전화통화에서 그는 15분 이상 특유의 입담을 펼치다가 “지금 곧 오라”며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평소 일대일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그로서.. 2006. 6. 28.
한국사 60가지 미스테리에 대한 반박글 [스크랩] 토론방의 베스트로 뜬 한국사 60가지 미스테리를 보고 한심해서 반박들을 올립니다... 요즘사람들.... 무언가 그럴듯하고 알지못했던 신비한 외부정보에 너무 취약합니다. 이런거 믿으면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무한경쟁시대..정보공유도 좋지만 스스로의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출처: 초록불의 잡학다식 http://orumi.egloos.com/1779098 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에른스트 폰 헤쎄-봐르테크의 라는 책 때문에 나온 말이다. 존 로스는 중국 선교사다. 문제는 저런 말은 그 책에 있지 않다는 것 뿐이다. 국내신.. 2006. 5. 30.
한단고기 위서 논란의 근거 및 반박 한단고기가 공개된 지 20년이 넘도록 대학강단의 대다수 학자들은 사료적 신뢰성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단고기}를 상고사연구의 기본사료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단고기}의 사료채택 여부를 놓고 세 가지 엇갈린 주장으로 분파 되어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단고기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은 첫째는 {한단고기}가 위서(僞書)라고 보는 시각으로 대체로 강단사학의 입장입니다. 둘째, {한단고기}가 정통사서라고 보는 견해로 재야사학과 소수의 강단학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 일부 강단사학자들의 중도적 입장입니다. 이 가운데 {한단고기}에 대해 위서론은 제기하는 역사가들은 {한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에서 모순되는 연대기록과 국제관계 기술이 발견되고, 국가·문화·인류·세계 등 근대적.. 2006. 5. 15.
고대문자 : 배달국(倍達國)과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문자(文字) 1. 머리말 문자는 역사기록에 대한 도구이지만 우리나라 문자발달사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 당시의 문자 유물이 거의 없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문자에 대한 연구는 역사내용에 대한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훈민정음이란 좋은 문자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문자에 대한 연구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연구 또는 발표된 문자에 관한 내용을 모아, 편집하였다. 이러한 자료가 우리나라 고대 문자에 관한 관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를 했으면 한다. 신시고각, 녹도문, 치우전목, 가림토 문자와 가림토문자의 발전형태로 추정되는 왜의 신대문자 등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2. 신시고각(神市古刻) 과거 역사에 대한 기록이 있기 위해서는 문자가 있어야 한다. 고구려.. 2006. 5. 15.
신라--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옛날, 바닷가 작은 마을에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꺼비 한 마리가 이 아가씨를 찾아와 결혼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반대했지만 이 아가씨, 두꺼비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결혼한 바로 그 날 밤에 신랑은 두꺼비 허물을 벗고 얼굴은 해사하고 몸은 커서 씩씩한 사나이가 되어 있었죠. 그래서 아가씨는 이 두꺼비 신랑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아가씨를 두꺼비에게 빼앗긴 동네 총각들이 두꺼비 신랑을 자꾸 못 살게 구는 겁니다. 동네 총각들은 두꺼비 신랑을 혼내주려고 쉬운 물고기잡이보다는 힘든 사냥내기를 해서 두꺼비 신랑의 콧대를 꺾으려 했습니다. 얼굴도 하얗고 말도 없는 녀석이 덩치만 컸지 무슨 사냥을 하겠냐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 2006. 3. 6.
한민족사에 등장하는 '여와'는 유대족의 '여호와'일까? 한민족사에 등장하는 여와 중국의 인류창조신 여와 우리나라 배달국에 있어서 여와(女?)는 소호김천씨의 할머니이며, 중국의 삼황에 해당하는 태호복희씨와는 남매지간으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중국의 인류창조신 여와 중국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 여와라는 여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후한(後漢) 시대에 응소(應邵)가 지은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사람은 없었다. 이때 여신 여와가 황토를 뭉쳐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 하나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힘이 들어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끈을 진흙탕 속에 담갔다가 꺼내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랬더니 흩어진 진흙이 모두 사람으로 변하였다." 원용국 씨는 그의 저서 에서 모세연대.. 2006.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