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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s Truth/Oriental

한민족사에 등장하는 '여와'는 유대족의 '여호와'일까?

by 개인교수 2006. 2. 3.
한민족사에 등장하는 여와 

중국의 인류창조신 여와   

우리나라 배달국에 있어서 여와(女?)는 소호김천씨의 할머니이며, 중국의 삼황에 해당하는 태호복희씨와는 남매지간으로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  

중국의 인류창조신 여와  

중국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 여와라는 여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후한(後漢) 시대에 응소(應邵)가 지은 ‘풍속통의’(風俗通義)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늘과 땅이 처음 생겼을 때 아직 사람은 없었다.  

이때 여신 여와가 황토를 뭉쳐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 하나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힘이 들어 많이 만들어 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끈을 진흙탕 속에 담갔다가 꺼내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랬더니 흩어진 진흙이 모두 사람으로 변하였다."  

원용국 씨는 그의 저서 <구약사>에서 모세연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렁이가 팀나의 성전에서 발굴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인두사신이 교미(상기 그림)하는 복희와 여와씨의 그림과 대조적이다


태호 복희와 여와 (한재규) 

여와의 이야기는 고구려의 을파소가 지었다는 '참전계경'에도 나온다.

바로 '여와가 흙을 빚어 사람의 상을 만든 다음 혼을 불어넣어 7일만에 사람이 되게 한뒤 그들을 모두 전쟁에 사용하니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스타인이 발견한 '복희 여와도'

19세기 초, 영국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스타인이 신강성 위구르 투르판 분지에서 고분을 발굴하다가 7세기 전반에 멸망한 고창국 귀족의 그림을 발견했는데, 흰 명주에 선명하게 채색된 그 그림에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은 뱀으로 이루어진 남녀가 묘사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복희, 여와도이다.  

이 그림속의 두 사람은 손에 규구를 나눠들고있었다. * 規矩 자와 콤파스 '통지'에 '한나라 시대 석각 그림과 벽들 그림 가운데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인 복희씨와 여와씨가 교미하는 모양을 흔히 볼수 있다' 라는 기록이 있어서 이 그림이 곧 복희와 여와씨임을 알 수있다. 

고구려 제9대 고국천왕 13년 (191)때 재상 을파소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참전계경'에도 나온다.

바로 '여와가 흙을 빚어 사람의 상을 만든 다음 혼을 불어넣어 7일만에 사람이 되게 한뒤 그들을 모두 전쟁에 사용하니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단기 4281(1948)년에 채록된 함흥지역의 '셍굿'두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람이라 옛날에 생길 적에 어디서 생겼습니까.
 천지 암녹산에 가 황토라는 흙을 모아서 남자를 만들어놓으니 어찌 생산될까?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아담의 어원

'아담'이라는 이름은 수메르어나 히브리어가 아니라 본래는 아카드어AKKAD:아무르족 언어였다고한다.

아카드족은 아모리Amorie으로 아무로Amarru라는 형태로 발음된다.

이 족명은 곧 한Han 족으로 조선chosen족이다.'성서백과사전'

이 아무르에 '아담'은 '붉은 찰흙 인간'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곧 하느님이 '붉은 찰흙'으로 사람을 만든 것이 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느님께 제사 지낼때, '붉은 황토'를 그 제단 주변에 뿌렸고, 신위를 만들때도 자단토紫壇土라는 '붉은 흙'으로 만들어 봉안했으며, 옹기와 토기도 '붉은 찰흙'으로 만들었다. 

또한 고대 시베리아 에스키모족을 '적이赤夷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곧 동이족 가운데 붉은 피부를 가졌던 종족에 붙인 별칭이다.' 

이 적이를 비롯한 고대 시베리아에서 둥지를 틀고 살았던 황인종들은 모두 한국인과 같은 혈통이다. 그래서 시베리아 평야와 만주평야를 하나의 지역명인 동야東野로 일컬었던 것이다.

 

'성경'의 인간 창조 설화는 우리의 '참전계경' 및 '풍속통의'의 부분과 유사함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본따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26~27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라는 복수형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본떠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고 한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유일신이라면 당연히 단수형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왜 복수형으로 표현된 것일까?

이 문제는 앞의 나반과 아만의 장에서 이야기했던 가나안의 최고의 신 '이브-아담(인간의 아버지)'의 별칭인 '엘El'을 통해야 풀수있다. 

 

엘로힘의 어원

'엘'은 우리 말의 '얼'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했다.

이 '엘'이 바로 창세기 하나님, 곧 '엘로힘Elohim'의 복수형이다. 곧 '엘로힘'이 우리의 얼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얼'은 고구려에서도 널리 쓰였던 우리의 순수한 고유어로서 '육체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뜨거운 샘물은 땅에서 솟아니고 얼은 육체에서 솟아난다'는 말이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는 것이다.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가시적인 것이지만, 육체에서 솟아나는 얼은 불가시적인 것으로, 곧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정신精神'을 말한다.

'정신'은 곧 '마음의 신'이다.  

까마득한 옛날에 우리의 인지가 깨이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신(얼)은 누구일까? 바로 하느님이다.

우리 하느님님을 통해야만 비로소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난해한 복수형 문장에 관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 하느님이 유일신인 동시에 '조화, 교화, 치화'의 작용을 하는 복수형의 삼신삼신이기때문이다.

 

제주대학교 안창범 교수는 기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에서 여호와를 성부 성자 성신의 3위 일체 하나님(하느님)이라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여호와는 우리 민족이 3신, 3신 상제 또는 3신 하느님으로 일컫고 있는 하느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할수있다.  

그러나 '하느님'이라는 용어는 기독교를 우리나라에 보급시키기위해 포교전략상 '영어의 갇 God 또는 히브리어 엘로힘 Elohim'을 우리말의 하나님으로 국역한 것일뿐이다.

곧, 기독교측에서 우리 말의 하느님을 차용해 쓴것이다.  

더욱이 서유럽인들의 의식구조에는 하나님이라는 관념자체가 없고, 서유럽의 언어에도 하나님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다. 이러한 것을 보아도 하느님은 우리말의 차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용어는 바이블에 보이나 이들이 3위 일체라는 용어는 일체 찾아볼 수가 없고, 갇 또는 엘로힘의 어디에도 3위 일체라는 뜻이 없다. 그러므로 3위 일체라는 용어 역시 우리 민족의 3신 일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와의 유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 이어 두번째로 등장한 인물이 아담의 배필인 '하와'이다.

흔히 하와를 아담의 첫번째 여자로 알고 있으나, 사실 첫번째는 '릴리스 Lilith'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릴리스는 바빌로니아 의 흡혈귀인 릴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여하튼 하와는 우리 민족의 조상 '여와YHWH'와 그 이름이 같다. 

수메르에서는 '하와'를 '갈비뼈 숙녀' 또는 '생명의 숙녀'로 설명하고 '성경'에서는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이는 성경이 수메르의 '갈비뼈 숙녀'를 취해 '아담의 갈비뼈' 곧, '하와'가 만들어진 것으로 상징할수있다.  

그런데 주목을 끄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는 시베리아 베딜족(Bedil) 타타르족(Tatars)에게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 라는 것이다. 하와Hawwah의 일명은 하바Haba이고, 헬라어로는 유와Eua인데, 이 '유아'는 우리의 '여와'와 동의음이다. '성경' '창세기' 첫장에는 창조할 무렵에 이미 2가지 성(남.녀)의 존재가 인식되고있다. '창세기 1:27' 

또한 '이것은 남자에게서 취한즉, 여자라 칭하리라'라는 구절로 남자라는 생명이 여자와 함께 묶여져있다.'창세기 2:25', 이것은 곧 우리 태극에서의 음과 양이 공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원래의 여와는 그의 오빠 태호복희와의 관계 후 나뭇잎으로 부채를 만들어 몸을 가렸다.

이것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친남매끼리의 혼인을 의미하는 것일뿐, 결코 타락의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여자가 외부의 다른 존재에 의해 간음죄를 지은 인간 최초의 원죄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동양의 우주 창조적 신격인 여와를 서양으로 끌고가 상위 개념으로서의 서양과 서양 남성의 사고를 정당화시키기위해 여와를 타락한 존재로 부각시킨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쓰여졌던 그 무렵에 히브리족들이 지녔던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와, 문명개척을 위해 서쪽으로 떠나다.

상고대의 동양에서 우주를 창조하고 흙으로 사람을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졌던 여와는 그 무렵 한민족의 서방 진출과 함께 서방으로 건너가 '여호와 신'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태백일사 신시본기'의 기록이 입증하고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진陣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냈다. 그 무렵 복희씨는 누이동생 여와와 함께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 서쪽으로 떠났던 것이다.

여와신은 아브라함의 가계 혈통에 따라 이드로까지 내려왔고, 또 그 사위 모세에게 전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의 가족 신앙에 지나지 않았던 여와신이 세계적 신앙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는 기원전 2166 여년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세 이후에 1000년의 역사가 흐르면서 여와 신은 종주권을 잃어버리고 히브리 지역의 여러 신들과 혼재되었다가 지방에 따라 두 갈래 모양으로 변화 되었다.
 

하나는 히브리 지역의 '여와-유와-하바-하와'로 인류의 어머니로 변신되었고,
또 하나는 헬라 지역의 '여와-여호와-야웨'의 창조신으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곧 여와의 육신은 하와로, 여와의 영혼은 여호와로 전혀 다른 존재로 히브리족들의 신앙속에 심어지게 된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의 신앙이 기원전 300년경에 비로소 '구약성서'로 편집되는데, 이 때 원래 하나의 존재였던 여와는 영혼과 육신이 나누어져 땅에서는 하와로 등장하고, 하늘에서는 여호와라는 서로 다른 존재로 등장했다. 

곧 아브라함이 고대 한민족의 점령군들로부터 받아들인 여와신이 그뒤 이삭, 야곱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며 사람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했던 가족 신이 되었으나, 모세 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는 과정에서 여호와 신이 된 다음 완전히 하늘위로 올라가 '질투의 신' '폭력의 신' '전쟁의 신' '공포의 신'등으로 변했다.

 여와, 유대족의 민족신 여호와로 바뀌다.

우리는 여와가 '성경'의 여호와로 변했다는 증거는, 본래 자비와 사랑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었던 여와가 '구약성서'에서 여성신인 여호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와를 모태표상인 레헴rehem 또는 라하밈rahamim(자비를, 라힘rahim자비를 나타내다 등의 의미로 자주 쓰고 있다. 특히 '구약성서' '예레미아'에서는 '여호와이신 어머니는 비애를 은혜로 바꾼다'는 등 여성적, 모태적 표상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12:5, 30:18

이처럼 적어도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로 해석되어졌던 것이다.

본래 하나의 명칭이었던 여와는 '성경'에서 하와와 여호와로 나뉘어 인류사의 첫 여성으로, 그리고 우주 창조신으로서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3.

메소포타미아 문명 

한편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으로 이주한 동방족과 수메르족은 조상이 같다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고대문화사'  

문정창, 임승국, 김태영 등의 학자들도 '여와'가 이스라엘 민족신인, '여호와'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정창은 '기원전 1200년경에 모세가 '창세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신을 '조선피플 chosen people'이라고 했으니, 이것이 곧 그들 사상의 고향을 가리키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진시황릉의 병마용에서 해답을 찾다

여기에서 우리는 잠시 단기 4327(1994)년에 우리나라에서 전시되었던 진시황릉 병마용갱의 유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이 난해한 수수께끼를 풀수 있다. 

진시황제의 지하 군단인 병마용들은 7,000명이 넘는 군사들과 말 500필, 전차 130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하군단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명령만 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 신체의 비례와 감정표현, 자세의 다양함등을 살펴볼때 오히려 살아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만약 고대에 이런 생동감 있는 조각품에 진짜 사람들을 섞어 놓았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으로 착각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조각품을 만든 사람을 진짜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착각해 그를 추앙했을 것이다.

"중국 

 

바로 이런 방법을 여와가 전쟁 중에 사용했고, 그래서 후세인들이 여와를 인간을 창조한 신으로 기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가능성은 발해 연안의 북부 대퉁하 유역에 있는 우하량 돌무지무덤 부근의 여신교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3500년경의 '소조 여신상'의 세련된 조각 기법을 통해 충분히 제기해 볼수 있다. 

지나측의 이러한 여와 이야기의 구성원리는 우리의 나반과 아만 이야기의 구성원리와 거의 같다. 여와가 황토로 사람을 만들고 오색의 돌을 반죽했다는 내용은, 인류 최초의 여인이었던 아만이 아이를 낳고 그 후손이 오색인종 이었다는 것과 같다. 또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과 그 대용품으로 등장하는 거북은, 나반과 아만의 혼례식때 나타난 4신수(주작, 거북, 백호, 청룡) 또는 5신수(곰 포함)과 같다.  

원래 신화란 전래되는 과정에서 각색되고 첨삭되기 마련이다. 또한 원형을 좇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여과시켜야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복희와 여와는 배달국 제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아들과 딸로서 기원전 3528~3413년의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배달국 태우의 환우의 막내아들 태호복희씨

복희와 여와는 태우의 환웅천황이 낳은 13남매 가운데 막내아들과 고명딸로 태어났다. 그 무렵 우사의 직책에 있던 태호 복희씨가 환국시대의 '천부경'을 바탕으로 역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환역桓易이다.

이 환역이 나중에 주나라에 전해져 '주역'이 되었다. 이 환역의 또 다른 명칭이 복희팔괘 또는 선천팔괘로, 태극기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희씨와

태호 복희씨

 환역을 만든 태호복희씨는 역사에 역리의 원조로 큰 자취를 남겼으며, 또한 그의 천天사상과 어진 인仁가르침은 뒤에 공자가 이어받아 유교를 창시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기원전 3418년 맏형 다의말이 아버지 태우의의 뒤를 이어 배달국 제 6대 환웅천황으로 등극하자, 앞에서 이야기 한바와 같이 태호 복희씨는 누이동생 여와씨와 함께 배달국을 떠나 서쪽의 진陣에 이르러 터전을 잡고 계속 서쪽 진출을 꾀하여 메소포타미아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영민했던 태호복희씨도 천명은 어쩔 수 없었든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여와씨는 오빠이자 남편인 태호복희씨의 유지를 받들어 메소포타미아에 지속적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바로 이러한 여와씨의 덕교德敎가 그 무렵 사람들의 의식 속에 '여와 신'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성경'에 수록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태호복희씨의 성은 원래 새중의 새인 봉鳳과 같은 의미인 풍風씨였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의 성이다. 그러나 15대 만에 대가 끊겨 '풍골 좋다, 풍채 좋다, 풍신 좋다'는 등의 용어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신 2순위에 있던 염제 신농씨의 강시성이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다시 인류 최초의 성으로 자리매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권오석은 스타인이 복희 여와도를 발견한 옛 고창국에 대해 "여와의 신화는 중원의 원주민이 지나인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그 원주민이란 오늘날 지나의 서남 변경에 자리한 산악지대의 소수 민족인 묘족이나 야오족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곧 고창국이 옛날 동이족의 일파였음을 시사했다. 

또한 이일봉은 고창국의 지명인 투루판을 삼한의 하나인 번한 (또는 변한)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