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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s Truth/Oriental

도올 김용옥, 학계 역사인식 정면비판 (2004. 1 한겨레 인터뷰)

by 개인교수 2006.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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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세→근대? 우린 그런 패턴 안밟았다”

도올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가 우리학계의 역사인식 방법론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5일 밤 첫 회가 방영된 <문화방송> ‘도올 특강’에서다. 그는 지난 99년부터 3년 동안 <교육방송>과 <한국방송>에서 유·불·도를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 텔레비전 강의를 해온 그가 이번에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한국학 강의에 나선 것이다. 특히 그는 첫날 강의에서 역사를 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로 구분하는 역사해석 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해 관심을 끌었다.

도올과의 인터뷰는 예상 밖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첫 방송 다음날인 6일 전화통화에서 그는 15분 이상 특유의 입담을 펼치다가 “지금 곧 오라”며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평소 일대일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그로서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인터뷰는 30여권에 이르는 도올의 저서를 출간한 서울 대학로 통나무출판사 거실에서 이뤄졌다. 넓은 흙마당이 있는 2층 양옥이었다.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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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해석된 과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대-중세-근대 시대구분도 유용하지 않습니까?

=유용성의 기준이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가 돼야 하느냐 하는 것은 서양 중심의 지극히 라틴웨스턴 중심 지역적으로 굉장히 한정된 역사의 패턴이고 그런식의 패턴을 밟았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과거 우리가 왕조사라고 했던 것(통일신라-고려-조선)을 구태의연한 역사라고 하는데 고-중-근보다 훨씬 나은 개념이라는 거예요, 편견 없이 볼 수 있으니까. 우리가 시대구분이라고 얘기하면 되는데 거기에 해석의 문제가 있단 말예요, 이를테면 생활사적으로 담론을 만들어도 되잖아요. 사회계층변동이라고 얘기한다면 부족사회, 호족사회, 귀족사회 해도 되는 거고, 음식별로 해도 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리고 ‘듀레이션’이란 개념도 있듯이 역사라는 게 반드시 단계적으로 변화하지만은 않는 지속성의 측면에서도 역사를 볼 수 있고…. 그런 담론의 해석의 기준이 될 수 있는 패러다임을 고-중-근으로 절대로 부당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어요. 그런 언어를 안쓰고도 역사를 얼마든지 쓸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는 거요. 역사학의 과제입니다. 하다못해 왕조사적 시대구분이라 해도 고중근보다는 낫다. 우리가 신라 혹은 조선 왕조라고 할 때 거기에 편견은 안들어가거든요. 어느 왕조가 다른 어느 왕조보다 유치하다는 것 같은 그런 편견….

-신라, 고려, 조선은 단지 개별국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인데, 그렇게 구분하면 역사의 맥락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지 않습니까?

=서양사에서 민족(국가) 개념은 19세기 들어서야 나타나므로 왕조사라든가 민족국가 단위의 역사 쓰기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왕조사가 훨씬 더 의미가 있어요. 왜냐면 고려, 조선왕조도 500년 역사를 지속했고. 서양은 500년 역사도 못씁니다. 말이 안되는 거지. 그래서 그런 얘기도 편견이라고. 왕조사가 우리에겐 훨씬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사상 우리 역사처럼 왕조의 지속력이 긴 유례가 없고 최소한 고중근보다 낫다 이거야. 왕조사가 낫다는 얘기가 아니야. 왕조사 치워버려야죠, 딴 개념이 있으면 더 좋죠. 예를 들면 고려 호족사회, 조선 양반관료사회라고 분류해도 고대-중세-근대 구분보다는 낫다고.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는 거지.

-민족주의가 서구에서 부정적인 양태의 국가주의(파시즘)으로 나타났던 경험을 의식하면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경향도 있는데?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이 등치되는 현상도 19세기만 해도 세계사에서 없거든요. 과거 유럽사회에서 국가와 민족 개념은 일치하지 않아요. 민족국가라는 엄밀한 개념에서는, 한국민족도 반만년 유지해왔다는 것도 있을 수 없어.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단군신화 체계의 상징적 의미가 국가 개념이 민족단위로 뚜렷해지면서 그 필요성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그런 민족국가 개념의 형성을 고려 말로 본다 하더라도 굉장히 이른 편이라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이 다른 것보다 더 정당성이 있고 그런 만큼 위험성이 큽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아주 특수한 케이스라고. 그러나 나는 절대로 우리역사를 민족과 국가를 등치시키는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은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런 류의 담론은 전부가 일제시대 때 일본 우익을 통해 들어온 거예요. 우리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조선 사람들도 우리가 민족국가라는 개념보다 소중화(小中華)라든가 유교적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이런 거지, 민족국가를 지킨다는 개념에서 구한말 척양세력들이 외세 배척했던 게 아닙니다. 그니까 지금 아주 쇼비니스틱한(국수주의적인) 근세적 내셔녈리즘은 일본X들이 대동아전쟁을 하기 위해 만든 우익적 근세개념이 우리나라에 전이된 현상이라고. 우리나라 모든 우익은 전부 일본 아류야, 100%. 우리는 그런 식으로 역사를 안봤어요.

-일본에서 우익개념이 들어온 것도 있지만 근대 학문도 일본을 통해 들어왔고….

=(말 끊으면서)Marx도 그래요, 나는 ‘맑스’를 쓴다고. 근데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라고 안쓰면 이상하게 생각해. 일본은 ‘ㄹ’‘ㄱ’ 둘을 겹칠 수 있는 발음이 없어요. 그래서 마르크스라고 쓰는데 이건 세계적으로 없어요. 이게 아주 상징적인 이야기라고.

-어쨌든 우익 뿐 아니라 근대학문, 특히 80년대 과학적 사회주의도 상당수가 일본 번역서로 들어왔고, 서구적 역사해석도 일본을 한 번 거쳐 들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20세기 한국의 진보세력이 전부 레프트를 빌렸단 말야. 좌익적 사고체계를 빌렸다고. 그런 사람들이 역사를 맑시즘 도식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노예제 봉건제를 가장 철저하게 주장해요. 그게 없으면 정치사를 못쓴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맑시스트 경제사관 논리가 여태까지 사가들이 안봤던 경제사적 하부구조 토대를 밝힌다는 의미에서는 소중해요. 그건 인정해야 됩니다. 근데 그 하부구조 토대를 밝힌다고 하는 면이 왜 반드시 봉건제-자본제의 틀 속에서만 이뤄져야 하느냐, 응? 일본의 왜색좌파들은 역사를 기본적으로 서양의 계몽주의가 인류의 근대를 독점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그 틀 속에서 맑시즘이란 진보주의도 성립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도 계몽주의 말단에 불과하단 말야. 이게 우리 국학적 개념에서는 비극이란 말야.(분위기 서서히 달아올라)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이나 내재적 발전론과 같은, 아시아적 특수성을 설명하려는 개념도 있는데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든, 엥겔스의 사유재산 논의(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가리키는 듯)까지 다 포괄해서 그런 언어를 가지고 역사를 보지 말자는 거야. 부곡제면 부곡제, 굴품제면 골품제, 그것 같고 얘기하자 이거야. 그게 노예제냐 아니냐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지 말자는 거야. 서구적 담론에 말려들어가지 말고 우리 역사 개념만 갖고 얘기하자고.(말엽적인 얘기로 가면 안된다며 다소 흥분). 왜 우리 역사가 근대를 꼭 필요로 해야만 하고 근대를 거쳐야먄 하느냐, 근대라는 이름 없이도, 예컨대 우리는 과학을 좋아해서 받아들였고. (갑자기 격앙)무슨 아시아적 생산양식, 노예제 이런 것 몰라도 우리 잘 할 수 있잖아, 공부 잘 한다고, 응? 사회과학이고 뭐고 논의가 잘못돼 있다고,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것을 자꾸만 논의한단 말예요.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서구적 근대의 성과물 중 우리가 건질 수 있는 걸 생각해보자는 거야, 과학이라든가, 자본주의적 부의 증대방식의 효율성이라든가, 의회민주주의라든가. 훌륭한 예술 같은 거, 난 서양의 종교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냐 아니냐”, “근대의 기점이 어디냐” 하는 게 전혀 무의미합니다. 우리 역사 개념은 “주자학이 우리 민족에게, 우리 오늘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게 뭐냐” 이런 걸 토론하자는 겁니다. 근대적 체계로 말한다면, 우리가 주자학 도입해서 만들어 놓은 중앙관료체제는 서유럽이 봉건제에서 탈피해서 19세기에서부터나 생각하기 시작한 뷰로크라시와 같아요. 막스 베버가 말하는 뷰로크라시를 이미 우리는 15세기에 충분히 논의했어요. 막스베버의 사회학만이 근대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말 들으면 조금도 얘기 안된다고. “근대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유니크한(고유한) 정체성을 서구적 역사패턴의 전제가 없이 봐야하고, 오늘의 우리 현실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성과물을 우리 역사로부터 건져내야 한다는 얘기지.

-엉뚱한 질문일 수 있는데, 흔히 ‘역사가 발전한다’는 말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근대담론은 역사발전(프로그레스)이라고 하는 진보사관의 오류의 결과입니다. 그 진보사관은 기독교 섭리사관에서 온 겁니다. 프로비던스(providence)라고 하지요? 섭리사관은 쉽게 말하면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구조예요. 역사를 직선적으로 미래를 향해서…. 예를 들어 말이죠, 당장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지금 우리가 서기를 쓰는데 이것만해도 우리에게 엄청나게 불리한 역사죠. 서기로 고침으로 해서 역사가 우리 머리 속에서 주르르륵 일직선으로 나열되는 겁니다. 옛날에 갑자(60년 주기)로만 역사를 계산했던 사람들의 역사의식은 전혀 다를 겁니다. 그니까 역사라는 게 유니크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거기에 진보라는 말은 쓸 수 없다고 봐요.

그런데 여기서 궁금할 거예요. 문제가 생긴다고. 그러면 역사라는 게 진보 안하면 무엇 때문에 사는가, 미래가 보장이 안되는데…. 이게 중요한 건데, 진보란 말은 부분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진보라는 말은 명확한 가치기준을 만들어놨을 때, 그 기준 아래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묶는 개념으로 쓸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 녹음기의 역사, 어떻게 작은 용량에 더 많은 콘텐츠를 담고 에너지 적게 효율적으로 쓰는 그런 기준을 세운다면 녹음기의 역사는 진보가 가능하잖아요.

-‘발달’이나 ‘개선’이란 개념과 ‘진보’라는 개념은 구분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발달이란 말은 진보란 말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쓰고 있는데, 역사가 반드시 과거보다 더 나아진다는 거야, 가치관적으로. 그런데 녹음기가 발달이 되면 남의 것 청취하고 나쁜 짓 하기 쉬워지고 그걸로 인해 나빠지는 부분이 많이 생긴단 말야 또. 이게 인간세상이란 말예요. 그런데 음양론적, 태극론적 사유 속에서는 전체가 발달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개념이란 말야. 근데 프로그레스란 서양의 개념은 인류 전체가 발달한다는 거야~, 지금. 역사 전체, 인류사 전체가 발달이 된다는 거야. 이런 사기가 어딨냐 이거야. 기술혁명 과정에서 진보란 말 쓸 수 있지요, 근데 인류역사에서 그 말은 없습니다. 그니까 그 기준을 헤겔도 제시했어요, 변증법적 아우프헤벤(지양)이라고 그러죠. 헤겔이 정확하게 <역사철학>에서 정확하게 제시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프라이하이트(자유)의 증대’라고. 인간의 자유가 소수독점 시대에서 다수 공유시대로 나아간다. 그런데 얼핏 보면 그 말이 굉장히 그럴 듯 하지만 나는 “천만에!”라 이거죠. 과거 고대사로 올라가면 자유로운 인간이 지금보다 더 많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지금 우리가 물질적 법적 보장은 나아졌을 수 있지만, 현재 인간이 과연 자유로운 인간이냐….

그러니까 역사라는 걸 그렇게 프로그레스란 개념으로 볼 적에, 이건 넌센스다,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진보라는 개념은.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굉장히 오류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 역사가 전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되기 때문에 이 역사를 살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역사적 과제라는 것이 우리의 당장의 삶 속에서 주어지는, 내재적으로 주어지는 삶의 이유가 있을 거란 얘기야. 오늘날 우리가 스트러글(투쟁)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우리 삶 속에서 발견해야지, 역사는 진보하고 있고 그 진보의 기준에 따라 인류의 역사가 가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담론 자체가 픽션(허구)라는 얘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역사의 각각의 국면에서 주어지는 삶의 이유를 진보사관의 전략과 전술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진보사관의 강점이 바로 지금 말한 데 있거든요. 역사를, 사람을 모빌라이징(조직, 동원) 하는데 무한한 좋은 에너지와 구심점을 제공하거든요. 서양사람들이 인류역사를 드라이브(주도)해온 그런 거죠. 그런데 그런 문제와 관련지어서, 뭐냐면 현재 우리가 스트러글하고 있는 문제도 꼭 어떠한 제도적 민주사회가 오고 점점 풀려나가는 것이 좋다는 그런 거는 분명히 있는데, 그런 것도 가치기준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야. 과연 우리의 미래에서 어떤 틀이 가장 좋을 것이냐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지. 노동계가 주장한다고 해서 진보된 방향으로 가는 거냐, 이건 문제가 있다는 거야. 그런 것보다는, 부패한 정치는 나쁜 거니까 그럼 반부패하자, 이러면 쉽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역사라는 것 전체를 묶어낼 수 있는 이상이라든가 모든 사람이 굴복해야 하는 진보의 이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현재도 안나온다는 거야. 나는 역사를 그렇게 드라이브해서 전체를 몰고 가는 것은 다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5일 방송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장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학에도 가장 중요한 게 개벽이론, 음양의 세계 이런 게 있다고. 그게 유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양의 발전도식적 사관보다 훨씬 더 나은 사관이라는거야. 맹자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고 그랬어요. 한번 다스렸다가 한번 어지러운 것. 반복적으로 뵈는데 그게 반복의 역사가 아니라는 거죠. 동학에서 개벽이란 개념이라든가, 김일부의 ‘저녁’ 개념 같은 것도 보면, 그 사람들은 이제 그 어둠의 세계가 빛이 되어 온다라든가, 선천개벽세가 지났다가 이제 후천개벽세가 온다, 이제 그러면 다시 개벽이다. 그런 얘기는 역사를 단계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음양론적으로 보는 거예요. 여태까지 우리가, 어두웠던 측면을 떨쳐버리고 밝은 세상을 만들자, 이런 것만 해도 역사의 위대한 비전이 된다는 거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 하는 거는, 우리가 우리 민족사를 볼 때 왕정과 민주라는 두 측면만 가지고도 충분히 역사기술이 가능하다 이거야. 고조선에서부터 최근세사까지 기본적으로 왕정 패러다임의 역사다 이거지. 왕정의 패러다임을 민주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꿔논 게 개벽이예요. 우리 민족이 말하는 개벽론적 개념을 나는 왕정과 민주라는 음양론적 개념으로 쓴다고. 그 왕정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는 이게 단계적으로 딱 되는 게 아니예요. 왕정이나 민주는 음양론적 구조로 항상 같이 있는거야. 고조선시대에도 민주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활빈당, 임꺽정은 민주에 가까운 걸 꺼라고. 과거는 기본적으로 왕정적 요소가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강했던 시대라고. 태극의 마크가 그렇게 생겼듯이 이제는 민주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가는 거라고, 그러면 개벽이라고 본단 말이야. 그 요소의 많고 적음이라든가 이런 걸로 구분이 되는 거죠. 민주라고 하는 이 패러다임의 변화가 굉장히 본질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기 때문에 20세기는 거의 완충적인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한 거요. 1945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왕정의 패러다임이 계속돼왔다는 거지, 나는. 그것이 비로소 이제 와서 민주라는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데 동아시아 역사에서 어느 나라도 그런 근원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동아시아에서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장 앞서간다는 거예요.

-진보적 사관은 역사발전을 확신하므로 기본적으로 낙관적 세계관일 수 밖에 없는데, 도올은 진보적 사관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낙관적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뭐냐면, 그 낙관이라는 게 역사의 진보적 비전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유학의 경우에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하는, 맹자의 성선설적인 낙관론, 인간은 선한 존재이므로 인간이 만들어가려고 하는 사회는 선한 사회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선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낙관론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건데, 그게 자기 최면일지도 몰라요. 과거로부터 유교교육이라고 하는 게 일종의 자기최면같은 거거든요. 맹자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는 거야, 보통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항상스러운 마음이 없어. 문제는, 지식인은, 최소한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은 항산이 없이도 항심이 있어야만 한다. 돈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도덕적 양심은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그 사회의 리더 자격이 있다는 거야.

-그게 지식인,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일지 모르겠으나, 흔히 얘기할 때 역사는 거시적으로 민중이 이끌어가는 것이라는데….

=민중의 역사는 항산이 보장이 안되면 개똥이라고. 민중의 역사 이런 얘기는 맑시스트들이 막연하게 하는 얘기예요. 서구는 유교처럼 민중에 대한 존중의 역사가 없어요. 그러나 민심이라는 건 굉장히 본능적인 거예요.

-항심은 어떤 덕목이자 ‘당위’입니다. 그러나 ‘당위’를 역사 해석의 도구나 역사의 동력으로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다시 약간 격앙)그렇게 들어가면, 논리적으로 비슷한 얘기가 될 수 있는데, 서양의 담론에서 프로그레스도 ‘당위’거든요, ‘사실’이 아니란 말야. 내가 분노하는 것은 사실체계가 아닌 것을 사실체계인 것처럼, 그리고 동양은 도덕적 당위만을 강조하는 엉터리 전근대적 역사인 것처럼, 이게 엉터리란 말야. 똑같은 얘긴데. 걔들은 무슨 객관적인 것 같은 큰 걸개그림 딱 걸어논 것 같은 거고, 우리는 그 걸개그림을 마음 속에 몰래몰래 숨겨둔 것 같은 거고, 이런 느낌이 온단 말야. 그 질문 정확하게 했는데, 어치피 역사라는 게 픽션이란 말야. 미래는 체험된 사태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미래는 ‘구성된 미래’일 수밖에 없단 말예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갑시다”, 이게 다 사기라고, 미래란 모르는 건데.

동양적 사유세계에서는 미래를 강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고 가장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도덕적 프로그램이 DNA안에 내재돼 있다는 얘기거든. 그런데 그런 도덕프로그램이 과연 디엔에이에 있는냐, 이게 좀 어려운 얘기에요, 이건 심성론까지 들어가게 되는 건데. 역사라는 게 최소한 ‘인의예지’라고 하는 도덕적 프로그램만을 강조한 역사가 훨씬 더 여러 모로 오류가 적은 역사일 수 있지 않느냐 이거야. 미리 컨디션(조건, 전제)만 말하지 프로그램의 내용을 얘기 안해요. 그래서 오류가 적을 수 있고 항상 플렉시빌리티(탄력성)가 있고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하는 게 가능해진단 말야. 역사를 프로그램화하는 것은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 둔다’ 는 거거든, 서양의 역사는, 모든 직선 사관은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 두는 오류를 범한다구요. 낙관론이라고 하는 것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픽티셔스, 그러니까 가공적인 건데, 그런 미래라고 한다면 최소한 사는 동안에는 낙관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의무가 있다는 거야. 그 의무를 저버리면 유자의 자격이 없어요. 맹자의 대장부론이거든. 최소한 대장부는 그러한 역사의 도덕적 낙관적인 믿음을 견지해서 그것을 철저하게 구현해주는 것만으로 밥을 먹고 살아라 이거야, 그 대신 그 사회가 공짜로 먹여준다 이거야. 그게 대장부라고 하는, 맹자의 아주 결정적인 얘기거든. 그런 논리가 나한테는 있는 거죠.

-민주주의 언급과 낙관론 언급을 통합해서 애기해보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 이거라고, 그런데 선거제도의 출현이 주로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역사를 통해서 7,800년 거쳐서 오늘날까지 온 거 아녜요? 근데 그건 서양 역사에서는 귀족사회의 왕권 견제라고, 조선왕조도 철저하게 양반귀족이 왕권을 제약시켜온 역사라고, 왕권 제약은 왕조사를 보면 아주 치열했어요. 그나마 그런 치열성 때문에 조선 왕조가 500년 유지했다고. 한국 민주주의 근본은, 과거부터 왕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왕이 민심을 듣지 못하면 혁명의 가능성, 그 정당성까지 열어논 역사란 말예요. 정도전의 <경국대전>에 보면 명문화돼있다고. 그니까 우리 민족은 왕조사라 해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을 이미 조선 왕조로부터 계승했다는 거예요.

거기에 더해서, 해방 이후 선거제도를 도입한 겁니다. 이 선거제도를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가장 빨리 정착을 시켰다고, 우리가. 일본도 우리만한 선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서양 민주주의 헌정적인 질서감이라는 게 우리는 이미 유교에서부터 몸에 배어 있었고 그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도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거야. 의회민주주의 역사를 본다면 영국이 700년 걸린 것을 우리는 50년만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본다면 근대라는 개념이 무의미해진다는 거야. 근대라는 성과는 반드시 그런 제도적 근대가 낳은 산물이 있어야 하는 건데, 우리는 그런 걸 요 몇십년 내에 다 만들었다고 한다면 꼭 조선왕조사에서 근대를 찾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생긴단 말야.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계속 해보라고, 나도 정리 좀 해보게.(인터뷰가 시작된지 1시간이 넘어섰다. 도올의 얼굴에서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으나 여전히 정열적인 답변을 이어가고 있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시각과 반응도 학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패권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서구 자본주의 받아들이는 양식이 월드스타예요. 걔들 동북공정은 남북의 통일에 대비하는 방식입니다. 미리 고토 문제에 쐐기를 박으려는 거지요. 그런데 나는, 통일신라 이후에는 비교적 단일국가적 개념의 역사기술방식이 맞아들어가지만, 그 이전 삼국시대는 민족국가 개념으로는 접근이 안되는 역사란 말예요. 토인비가 만든 문화사 개념하고 똑같아요.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면 문화사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요동반도와 일본 큐수지방을 연결하는 하나의 문화권, 또 고구려는 북부-만주로 하는 문화권, 이런 문화권들이 있고 그 안에 또 세부적인 문화권이 또 있단 말예요.

우리도 그런 점에서 역사를 우리민족 단위로만 쓸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사적 개념으로 우리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나한테는 옛날부터 있었어요. 이런 얘기가 안먹혀들어갔는데. 그거를 빨리 보편적 문화사로 우리 민족이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야. 예컨대, <일본서기>나 중국자료를 우리 고대사 자료로도 쓰잔 말이야. 폭넓은 세계사적 시각에서 우리 고구려사도 다시 써야 한다고 보고, 그러나 그것이 우리 영토의 주장은 아닐꺼고. 문제는 중국이 어떤 주장을 하든지간에 거기에 대해 우리가 제재를 하기는 어렵죠. 그런 역사를 얼마나 폭넓게 보고 빨리 일본 식민사관을 탈피해서 그 경제·지역사회에서 우리역사를 되찾아 놓느냐 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죠. 그러나 민족국가로는 아니다 이거야.

-중국은 자국영토 내 역사는 소수민족사도 변방사라고 해서 자국사로 주장하는데, 민족국가 단위로 설명이 되지 않는 공유된 문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구려 역사의 정체성, 우리 역사의 뿌리찾기 문제는 여전히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정체성 자체를 민족국가 개념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거고 , 폭넓은 시각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사료를 동원해서 학생들을 교육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토분쟁은 역사문제는 아니고 다른 차원의 문제고. 과거 식민사관에 얽매여 고구려사를 보던 정통우익사학자들이, 지금 우익들은 만주 찾자고 그러는데, 새로운 자료 무시하다가 이제 와서 난리가 났다 그러는 거란 말이야. <화랑세기>가 위서라는데 그게 어떻게 위서예요. (주류 역사학계가) 좁은 시각에서 역사를 써왔단 말예요. 빨리 국력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해야지,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단 말예요.

-고구려사왜곡공대위나 사학계가 이 문제를 영토 문제로 인식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고구려사를 우리의 역사로 폭넓게 우리의 문화로 쓰는 작업이 시급한 문제요. 보다 더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고. 광개토대왕비 해석도 우리가 선취해야지, 재일교포 사학자 이진희씨가 광개토왕비를 해석하고 그랬던 건데. 비문을 재해석하든지 간에 확고한 정설로 만들어놓고 접근해 들어가야 하는데 일본사람들이 축소 왜곡시켜 놓은 그 범위, 민족국가 역사 안에서 우리 역사를 보려고 하는 게 문제예요.

-최근 국내에서도 미시사적 접근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주제별로 보는 건데, 그런 것들이 피차간에 거시적 거대담론의 영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거대담론의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하고 그것이 반영되고 그러면서 역사가 넓어져야 하는데, 거기에서 제일 먼저 깨져야 하는게 고대-중세-근대 도식이란 말예요. 근대 복식만 좋은 거고 고대 복식 유치한 걸로 보면, 고구려 복식은 고대복식이예요? 그게 어떻게 말이 돼? 원피스 시대, 투피스 시대, 쓰피피스 시대, 뭐 이런 식으로 써야지.(웃음)

-고대-중세-근대 개념이 단순한 시대구분이 아니라 가치가 개입되어 있다는 뜻인가?

=그럼! 개입되지 않을 수 없지. 그런데 불행하게도 모두가 그걸 의식을 못하고 휘말린다는 게 비극이라는 거야. 실학도 마찬가지요. 일본 메이지 유신 만들었던 실학 가지고 우리 경우에도 실학이란 말 쓰지 말고 실사구시학풍 이렇게 쓰면 문제 없잖아요.

-최근 패션쇼 구경하셨던 장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닙니다.(좌중 폭소) 관심이 없으신 분야가 없는데, 지금까지 텔레비전 강연에서 주로 유교사상과 노장사상을 다루다가 이제 (한)국학으로 주제를 돌렸는데 그 배경이나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그게 필연이예요, 필연. 원래 대학시절에 의식 있으면 다 좌파거든. 근데 난 좌파를 거부한 거거든. 뭔가 새로운 학문을 해야겠는데, 그러러면 국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이상은 선생이라고 고려대 철학과에 대단한 석학이 계셨어요. 당시 북경대 철학과에서 최고수재란 말을 들었으니까. 그런 대학자가 국학을 강조하셨다고. 그 때 생각해보니까 국학만 하면 ‘전문가 바보’(한 분야만 좁은 시각으로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듯)가 된다 이거야. 국학을 하려면 우선 한문을 제대로 읽어야 되니까 중국 고전에 달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해서 중국 철학에 들어갔고, 그때 중국철학은 이미 서양철학과 세계적인 교류를 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서양철학 제대로 안하면 중국철학에서 큰 소리 못친다, 그래서 자꾸 영역을 확대하다보니까 철학에서 과학까지 나오게 됐어요. 그래서 “모든 인간의 삶의 체험은 다 나의 전공이다”, 이래가면서 30년 세월이 흘렀어요. 그런데 나는 원래 국학을 하려고 했어요. 중국철학사를 쓰려고도 했어요. 근데 그거 쓰면 뭐하냐 이거야. 그 여력이 있으면 한국철학사를 써야 된다는 거고.

나는 유불도를 다 전문적으로 봤고, 거기에 더해 서양철학과 서양역사를 봤기 때문에 그거를 가지고 이제 내 남은 인생은 국학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 통일담론으로 가는 거란 말야. 통일의 시대에 국체가 서지 않으면 통일을 맞이할 수 없죠, 우리가. 그러니까 앞으로는 온 국민이 국학으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우리 역사의 가치를 알고 우리 역사의 새로운 주체를 세워서 우리 역사의 새로운 헌법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 헌법은 어떻게 쓰느냐, 한국철학이 없으면 못쓰죠. 국학이 우선 완벽하게 발전해서 콘센서스(사회적 합의)를 이뤄야죠. 이런 것이 거시적인 준비란 말예요.

20세기는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추구했던 시기지만, 21세기는 보편성보다는 주체성·국부성·특수성 이런 거를 더 추구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보편성 기반이 마련돼 있으므로. 나의 개인적 체험이나 우리 민족의 체험이 비슷해요. 영화도 헐리우드를 이기는 유일한 나라가 되어가도 있고. 그런데 학문도 이겨야 된다. 그러러면 고대-중세-근대가 파기돼야 된다 이거야. 이거 파기하지 않으면 절대 서양 역사 못이깁니다. 한국영화가 뛰어나게 된 이유는 그게 헐리우드 패턴에 안잡혀요, 엉~뚱하다고. 예측불가능하다 이거야. 고대-중세-근대 도식은 헐리우드 영화처럼 빤히 끝이 보인다고. 그게 아직도 역사학의 대 기본가설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너무 익숙해있단 말야.

-학계에서 우리 학문의 대외종속성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고 자생학문의 움직임들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국학이 발전하려면 고전번역에 박사학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각 대학에서 고전번역문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서구 대학은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나오는 중요 고전번역이 대학교 학위논문입니다. 국학의 기본이 서려면 국학자들이 앞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료로 번역하는 것만도 몇십년이 걸려요. 주역에 대한 논문은 십여편이 있어. 근데 주역사전은 없어. 이건 사기예요. 우리가 한 30년만 고전번역에 매달리면 국학 제대로 될 거야. 북한에서 조선왕조실록 완역한 것은 정말 대단한 작업이예요.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민족문화대백과, 그거 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칭찬해줘야 합니다. 국가가 벤처투자 100분의1만 투자해도 인재들 다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적 마인드…. 문화는 돈이 안들어요, 안목만 있으면 작은 투자예요, 현대사회에서. 국학자료들이 다 번역되는데 돈이 별로 안들어요, 그런데 국가가 그거 지원 안하잖아요. 대학까지 총동원해서 하면 우리나라의 국학이 섭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스케일이 달라지는데요, 당∼당해지고.

-최근 한국학을 전공하는 한 미국 교수의 논문을 봤습니다. 한국에서 민족(의식)이란 개념이 언제 형성됐는가 하는 건데, 지금 우리학계 통설은 일제 내지는 구한말 계몽기 정도로 잡는데 그 학자는 <임진록> 구전본을 텍스트로 삼아서 한국 민중의 민족의식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학계통설을 반박하는 건데요, 동의 여부를 떠나서 왜 이런 주장들이 우리 학자들이 아닌 외국학자들에게서 나와야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어떤 의미로 본다면 외국학자들처럼 역사를 밖에서 보는 데 익숙해진 거야. (외국)언어를 일찍 익히고 이러면서. 평상적인 국사학자들이 자라나온 과정을 나는 전혀 안거친 거거든. 그러니까 항상 자유롭게,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보는 거지. 학풍에 구애받지 않고. 이게 결정적인 거야. 내가 양심선언하고 나왔던 이후에 고려대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 나를 받아줬으면 내가 거기 딱 엮이는거야, 그런데 내가 고려대 돌아가고 안돌아가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학풍이 끊어진 거야. 그러면서 나는 자유로운 사상가가 된 거야. 대학에서는 제자들이 자기 스승을 비판하지 못해요. 누구라도 글 쓰는데 문제가 좀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거든, 그런 건 고치면 되는데. 그래서 글에 모순이 많으면 과감하게 고치고 뺄 건 빼고, 왜, 역사는 변하는 거니까.

내 글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어요. 과거 그 시점에 나의 의식이 강하게 반영됐기 때문에. 지금 <도올문집>을 100권 분량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앞으로 될 수 있는대로 그런 것들도 정비를 하려고 그래요. 앞으로 영구하게 후학들이 전체적 비전 속에서 볼 수 있도록. 그런 면에서 어떻게 정석을 쌓아가느냐 이런 걸 심어주려고 그러거든, 이제는. 큰 시대적 의식이라든가 이런 거는 많은 후학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거고. (기자는 이 대목에서 도올 특유의 당당함과 자신감과의 이면에 숨겨진 어떤 고독감 같은 것이 배어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외적 발언이나 투쟁은 전혀 안하겠다는 뜻인가요?

=그게 아니라, 내 소신에 따른 어떤 영구한 초석을, 내 나름대로 시스템을 놓아가야지, 국부적인 문제에 너무 휘말리면 내 인생에 에너지가 낭비되니까. 가급적 마이너한 언어들은 트리밍을 할(다듬을) 필요가 있겟다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이제 그 방송강의도 고민이 많은데, 한국사회라는 게 엄청난 갈등이 있더라고. 국학에 덤비려고 하니까 문중도 걸리고 종교도 걸리고, 그나마 나 정도의 자유로운 처지가 있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이제 국학을 총체적으로 각 사상가들의 입장에서 보겠다, 그렇게 하고. 될 수 있는대로 정제된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면 ‘고대-중세-근대’ 도식을 깨고 나서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내 마음속에 뚜렷하게 정해진 건 없어요. 그걸 이제 찾아가는 과정에 있죠. 과연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보는 게 좋겠느냐, 분류방식이라든가, 기준이라든가, 개념이라든가, 이런 거를 어떻게 새롭게 정립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이제 고민해 들어가야 하는데, 최소한 고대-중세-근대의 역사, 서양에서 제기한 역사학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는, 생동하는 역사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역사라고 하는 거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만큼 공감이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서구적 개념을 안쓰더라도 우리 삶의 문제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기술하면 엄청난 공감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체적 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원칙이나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 현재는 1차 목표로, 조선역사 전체를 쓰기는 버겁고, 정도전을 기점으로 해서 이제마에 이르기까지 조선사상사 하나만이라도 뭔가 아주 색다르게, 유교라고 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고-중-근 개념이 배제된, 유교 이념의 역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리론·주기론·당쟁과의 관계, 이런 함수를 다 계산해서 그들의 사상의 내용과 그들의 정치적 현실과 어떻게 교섭해가면서 조선왕조 500년이 지속됐는가, 거기에 대한 결정적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번 문화방송 특강에서도 예정하고 있는 것입니까?

=6개월인데 너무 짧으니까, 그나마 이런 게 주어진다는 게 대단한 건데,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시간이 적단 말야. 이게 비극인데, 시청율 같은 것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고 깊이 있게 강의하는 게 소원이고.

그는 이 즈음에서 100권 발간을 예정하고 있다는 <도올문집>을 소개했다.

=첫 권 <청계천 이야기>가 최근 나왔고, 2권 <독기학설> 수정판, 3권 <혜강 최한기와 유교>, 4권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이 다음 주에 나와요. 이게 나오면 사람들이 감을 잡기 시작할 거야, 나는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한 500매 분량인데. 또 5권이 이제만의 <동의수세보원>, 그 다음에 <동경대전>.

-100권에 아우르는 문집들은 모두 한국학입니까?

=그동안 썼던 것들도 있고 또 새로 쓸 것도 있고. 주로 국학분야가 많지. 10년 정도면 충분히 완성돼요, 그러면 <한국철학사> <한국사상사>라는 이름의 책, 세계적인 저술을 하려고 해요. 책임 있는 한국사상사를 완성하는 겁니다. 대개 뭐 철학사라고 하면 이론적인데만 국한되는데 사상사라고 하면 여러 분야를 다 섭렵해 쓴다는 거지.

-그야말로 다방면을 아울렀던 학문과 삶의 여정의 목적지랄까 종착점이 국학으로 모아지는 걸로 봐도 되는 겁니까?

=100프로. 그렇게 봐도 되는 게 아니라 100프로 거기로 가는 거고, 한의학도 내가 그것을 위해 했던 거고. (신중한 분위기, 도올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근데 나는 어떠한 그…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내 나름대로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것이 지금도 포기하고 있지 않지만, (다시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상사적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이론서가 칸트 시대에는 칸트 철학이 대단한 의미를 가졌지만, 앞으로 21세기…, 어떤 특수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의미를 갖는 시대가 올까 하는 회의감도 있고…. 여러가지 그런 고민이 있는 거죠. 머리 속에 구상중입니다. 그런데 사상사는 리얼한 거니까. 내 지식의 범위를 넓히고. 사상사적 작업의 성과를 가지고 죽기 전에 기철학을 하나 쓰든가 그런 스타일이 되지 않을까, 내 인생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죠(웃음).

-건강관리는 어떻게? 수련 같은 것 하십니까?

=수련도 하고, 내 기철학적 이론에 따라 만든 수련법도 있고. 사람이 수련 안하면 건강 유지 못하니까. 음식, 사람이 먹는다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먹는 거, 자는거, 그리고 섹스. 그런 식색지성의 문제가 인간에게 중요한 건데…. 서양의 근대담론의 가장 큰 오류 중 하나가 모든 걸 이성 중심으로 생각을 한거예요. 그런데 이성이라고 하는 거는 인간의 총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인데, 이것이 근대생활을 하는 데 굉장히 도움을 주는 거였다고. 그런 것에 의해서 근대사회를 편하게 유지하려고 했던 거예요. 지금 현대 동양담론과 서양담론의 가장 큰 차이가 그런 이성주의적 인간, 근대성의 담론에 다 걸려있는 건데, 근대적 인간이라고 하는 서구적, 이성의 주체가 된 인간을 가지고는 사회적 리더도 만들어내기도 어렵고, 한 국가사회를 잘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학계 일부에서는, 단선적 사관에 비약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경우 근대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는데 무슨 탈근대냐 하는….

=(말 끊으며)그게 잘못된 말이예요. 우리 역사는 근대/탈근대를 가지고 얘기하면 안되는 역사란 말이예요. 그게 아주 위험한 애기고. 문제는 이성주의적 인간도 훌륭한 면이 있다라는 점에서 근대를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성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데리다가 어떻고 푸코가 어떻고 이런 얘기 아무리 해봐야, 인간의 언어가 복잡할 게 없어요, 이성을 빼놓으면 뭐가 있냐면 결국 정욕의 문제예요. 동양인들이 생각한 주자학은 이성적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보다는 -그런 것 필요하죠, 주자학도 이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성적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절제하느냐,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쉽게 말해서 희로애락의 문제라든가 이런 것이 동양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란 말이에요.

한국사회도 만나서 얘기하면 서로 이성적이라고 거품을 물어요. 우익이나 좌익이 만나면.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감정처리가 안돼. 무조건 남을 증오하고 질시하고, 그러면서 자기 주장만 이성적이라고 주장하거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예요.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보기 전에 감정적으로 본단 말이야. 이런 게 우리사회에서 99%지. 감정순화가 바로 서구학문이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야. 이런 문제가 좌파적 논리만으로 안되는 거야. 보다 더 해방된 사회,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공유하는 사회, 이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에요, 이런 걸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있어야지.

학계에도 자이언트(거인)가 있어야 돼. 방대한 자료와 이론을 통합해서 누가봐도 대단하다 할 정도로 해야 하는데 국학의 경우는 지금은 역부족이지. 더 깊게 공부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학문을 세워야 해,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스칼라쉽이 확고하게 있어야 해요.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만큼 그는 진솔하고 거침없는 특유의 화법으로 2시간 동안의 대화를 이어갔다. 도올은 인터뷰를 마치고 여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자신의 편저 <삼국통일과 한국통일>(1994, 통나무)에 “내 인생에 가장 본격적인 인터뷰였던 것 같다, 갑신년 정월초 도올”이라는 소감을 적어 기자에게 주면서 한마디 더 보탰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강렬한 통찰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내 말이 (학계와 지식인사회에) 충격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