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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s Truth/Oriental

한단고기에 대한 견해

by 개인교수 2006. 10. 9.
첫째, 둘째 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하든, 다시 여기서, 나의 이야기가 대단한 논문이나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여기 저기서 곁눈질로, 혹은 어깨너머로 줏어듣고 훔쳐본 장똘뱅이의 시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써내려간 글이라는 점을 알려드린다.

  제목을 X파일이라 붙여놓은 만큼 신기한 이야기가 나와야겠지만 그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는?”이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독자들 머리에 당장 떠오르는 것은 “신라”다. 그러나 정답은 “단군조선”이다. 왜 우리는 단군조선을 나라로조차 여기기 싫어하고 있을까?

  하느님의 서얼 환웅과 마늘 먹은 곰 사이에서 난 단군이 나라를 세웠고 뒤에는 중국에서 흘러온 기자나 위만에게 강탈 당했고 그러다 한나라와 싸워 망해 버렸다...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단군조선의 모습이다. 나는 이 상태에서 이야기를 진 행할 수가 없다. 설화의 한토막으로 시작하기에 이 시대는 너무 중요하고 중요한 우리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984년 김정빈이라는 소설가가 쓴 “단(丹)”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후 얼마 안있어, 시중에 “환단고기 (한단고기,桓檀古記)”라는 황당한 책이 나왔다.

  그야말로 우리가 알고있던 민족고대사의 정석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 책은 사학계는 물론이고, 목마르게 전씨 아저씨 치하의 답답한 대한민국을 탈출하고 싶던 젊은 사람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환웅이나 단군은 모두 왕조의 이름이고 그 이전 환인시대의 12지파중 하나가 수메르요 우르요 우리라는, “수수께끼의 고대문명”을 논한 것같은, 나라 역사가 일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 때문에, 상당히 많은 젊은 사학도들이 충격을 받고, 주류사학계로 진출하기를 거부했다.(내가 알고있는 사람만도 꽤 된다)

  하지만 변변한 연구없이, 사학계는 이 책을 위서(조작한 책)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역사학적인 동화책에 불과하며, 희망 사항을 연대기로 조작해 잘 정리한, 치밀한 가짜라는 것이었다.

  그 증거는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고, 이 책의 편찬자인 계연수라는 사람은 대종교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고, 편찬연대도 기껏해야 1920년이며, 그 전에 있던 책을 가지고 재편집했 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소리고, 이런 식의 책을 죄다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한 권씩 만들어서 이러네 저러네 할 것이므로 인정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취급하지도 않겠다는 태도였다.

  더군다나 이 책은 그 근거가 되는 고문서, 예를 들면 천부경을 묘향산의 암벽에 새겨진 글에서 떠왔다(탁본)는 기괴한 전설의 고향 수준이어서, 대종교를 위 해 계획적으로 조작했다는 의심이 가는가하면, 중국 낙양에서 연개소문의 아들인 남생의 무덤이 발견되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을 써놓는 등, 아예 최근에 와서 밝혀진 것들을 엮어놓는 치명적 실수까지 범했으므로, 짜가 치고는 상당히 노력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짜가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답답한 고대사의 비밀을 중국의 그 많은 위서들이 줄줄줄 풀어헤치고, 일본역사의 최초기록인 일본서기마저도 위조로 볼 수 있는 많은 내용이 있는데, 상당히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설령 조작이라해도 철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가치를 지닌 천부경 때문에, 또는 환인, 환웅, 단군조를 한 사람이 아닌“왕조”로 서술하면서 민족의 창세기에 서 대진국(발해)에 이르는 역사를 총괄하고 있어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물론 국사 시험과는 무관하다)

  독자 여러분! X파일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가장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사건이 바로 우리민족의 20세기말을 장식하는 환단고기 사건이다.

  우리는 의식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일 20세기 후반에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기록될, 희귀한 사건이다.

  일만년을 꿰뚫는 역사책이 어디서 숨어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무슨 “쇼”하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는가? 이게 우리의 슬픔이고 아픔이고 기쁨이다.

  나는 단언컨데,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닐 뿐만아니라, 위서라해도 우리가 지켜 야할 자존심이다. 이런 책을 면밀한 연구도 없이 무시하는 태도 자체가 바로 식민사학이 뿌리까지 오염시킨 우리의 초라 한 발상법이다.

  만약 이 책이 일본에서 나타났다면? “빛나는 일본고대사의 비밀을 드디어 풀다!”라고 학계의 거두들이 나서고,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대책위를 설립하고, 문부성에서도 틈틈히 작업내용을 국제언론에 언급하고, 과정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기자회견에 난리법석을 떨면서... 황국 신민들은 그야말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미 일본서기와 광개토대왕비의 임나일본부 사건에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리고 국제 사학계의 아무런 공감과 동의 없이 교과서에 “꾹”찍어서 가르치고 있다. 문헌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학설”이야 교과서 왜곡시비에 휘말리지도 않 을 것이고, 어쨌든 암묵적으로 그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면 효과야 똑같은 거다.(실제로 일본 고대사의 진위 를 따지는 소장학파들도 임나일본부를 심정적으로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아무리 생각해도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그렇게 근거를 만들어서까지 바꾸는 이유가 무얼까? 오늘 우리가 잘난 사람이 되려면 내 조상도 잘나야겠다는 비록 옹졸하지만 치열한 발상법으로 그들은 동양의 자존심을 지키는 맹주가 되었다.

  그 열등감을 본받을 필요가 없으되, 있는 것마저 버리는 우리의 치졸함을 깨우칠 타산지석은 충분히 되렷다.

  위서시비 따위는 학술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조작된 부분을 밝혀내고 다른 사서와 비교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취하면 된다. 고대사 문헌연구는 언제나 비교연구와 취사선택의 문제일 뿐, 완전히 옳은 책도, 완전히 틀린 책도 있을 수 없다.

  나는 환단고기가 비록 후대의 편집자의 시각이 들어갔을지언정 완전히 조작된 책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중국의 역사책은 안 그런 것이 어디 있던가? 우리가 택스트라고 일컫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조차 춘추필법이라는 왜곡과 과장의 시험장이었다!

  중국책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우리 쪽에서 나온 책은 중국책에 비추어보아 위서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해서 “위서일 수도 있잖은가?”라는 반론에 점잖게 말씀드리자면, 고려조까지도 이런 류의 서적들은 “공인역사”로는 등장시키지 못하되 삼국유사같은 식으로 유포할 수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 것이었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 고대국가를 서술했고 그 역사가 중국보다 위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완전히 금서로 낙인찍혀서 소지나 배포를 금지당했다.

  그런 책이 발견되면 “사문난적”으로 찍혀서 완전히 집안이 박살났다.(우리만 이랬던 것은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지은“장미의 이름”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조차 “웃음이 경건함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가 된다)

  조선 세조(수양대군) 때, 수 백종의 수 십만권을 거두어 없애버렸고, 그 중 몇 몇 견본을 궁중 서각에 보관했는데, 일제 시대에 와서 “조선사편수위원회”가 이걸 조직적으로 없애버렸다.

  이 때, 조선조로 전해지던 이른바 비전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속에 있는 내용들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것이기도 했건만...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우리민족의 출발을 찾는다해도 환웅은 등장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웅배달국은 거대한 연맹국가로 바이칼(배달)호를 기준으로 부채꼴 모양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기적으로는 대략 BC 3898년이었으다.

  18대를 전하고 1500년을 지속한 왕조였으니 환웅이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한 왕조의 이름이라는 이야기다.

  마지막 환웅에 이르러 우리가 선조로 섬기는 단군왕검을 추대해 단군조선을 창건하는데, 중국에서 요임금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단군조선은 국가체제를 삼신사상에 두고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신(진)한, 변(불)한, 마(말)한이 그것 이다.

  세 개의 한국 이야기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나오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신채호선생이 밝힌 강역으로는 신조선(진한)이 시베리아에서 내몽고를 거쳐 만주 이북과 황하 이북을 차지하고, 말조선(마한)이 연해주와 동 만주, 한반도와 중국 동부해안을 위시하고, 변조선(불한)이 황하와 서역에 이르는 강역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삼조선이 깨지면서 삼한의 후예들이 옛 고조선의 이름을 걸고 대거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 때가 바로 우리 가 알고있는 삼한시대이다. 이 때가 우리 종족의 열국시대로서, 부여, 신라, 고구려, 마한, 백제 등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이후 아시다시피 우리는 오랜 삼국시대를 지나서 대진국과 신라의 남북국시대, 그 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다.

  어쨌거나 환단고기라는 책을 통해 재정립하면, 단군조선이란 한 사람의 단군이 살았던 몇 백년 시기가 아니라 일천오백 년 환웅왕조의 신시배달국이 분열의 기로에 서자 삼한사상으로 새로운 종족연맹국을 세우고, BC 2333년부터 BC 295년 까지 왕조를 유지하며, 부여(해모수)와 고구려(고주몽)로 그 계통을 이어준 고대 아시아의 굳건한 강역, 문화공동체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단군신화는 그 아득하고도 끝없는 내용을 단순하게 요약해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일연승려의 한 방편이었다.

  일연승려가 이런 신화를 엮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러한 역사 이야기들이 매우 일반적이었던 배경이 숨어 있다.

  실제로 환단고기의 대부분은 고려시대에 작성한 것들이다. 최근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소장파 학자들에 의하면 “가짜 책 시비”보다는 “연구대상”이라는 생각으로 느리지만 서서히 일어나 퍼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위서가 아니라 동아시아 고대사의 비밀을 풀 열쇠로 인정하는 학자들도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발간 초기에, 열에 들떠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예 배척하던 경향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와 중국과 일본과 다른 소수민족 전부의 것이기 때문에 이런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박현씨에 따르면, 환단고기의 책중 하나인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대진국(발해)의 문제(文帝)의 연호가 대흥(大興) 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다. 중국 사서에는 발해를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제후로 묘사 하였기 때문에 연호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발해의 정효공주의 묘비가 1980년에 발견되었다. 이 비문에는 문제의 연호가 글자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혀있었다!
  정말 위서라면 1980년 이후에 발견한 이 사실을 환단고기에 집 어넣어야 하는데...?

  민족이 기마종족의 특성을 잃고 대륙중국의 부분으로 전락하면서 우리의 손을 떠나 금서로 낙인찍힌채 “비전(秘傳)” 으로 떠돌아야했던 고대제국의 기록이 20세기에 들어와 자신의 모습을 찾기 시작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눈물 나게 기쁘다. 나는 너무 고맙다.

  우리가 못나서 환단고기는 일본서기만한 대접을 못받고있지만, 나는 안다, 때가 되면 다들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는 돌고 돌아왔지만 결국 우리의 뿌리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게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가?”라는 반문과 “니나 잘해”라는 멸시 속에서도 나는 빛나는 민족혼을 지키던 몇 몇 선인들, 우리에게 한글이라는 문화의 요약본을 지켜준 사람들을 기억한다.

  아무리 걷어들여 태워없애고 죽이고 멸족시킨다며 겁을 주어도, 어쩌겠는가!

  아직도 아이를 업어길러 안짱다리를 만드 는 우리 기마민족의 면면한 전통을 누가 어떻게 없애겠는가. 더 늦기 전에 지키면 그것은 우리 것이다.

  걸어놓으면 멋있던 바지였는데, 입기만 하면 맵시가 죽어버리는 내 안짱다리가 오늘은 어쩐지 자랑스럽다.

  말(馬)이 없다고 뭐 문제가 있으랴, 나는 언제나 저 넓은 광야를 선인들과 함께 달리며 푸른 꿈을 꾼다.

  이 꿈을 여러 독자들께도 나누어 드리고 싶을 뿐이다.

고대사 x-파일"(원작자: 박창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