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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 vs Truth31

향유를 발라줄 수 있는 사람은 예수의 신부 뿐이었다. 예수처럼 왕가의 혼례에 적용되는 법칙은 일반 유대인 민족이 따르는 혼례법과 상당히 달랐다. 왕가에서 성관계가 허용되는 이유는 유일하게 수태였다. 모든 결혼과 성관계 관습은 철저하게 통제를 받았다. 우선 3개월간의 약혼 기간을 거쳐 9월에 성유를 바르는 일과 함께 첫 번째 결혼식이 열린다. 이는 부부의 연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전반 때가 되어서야 성관계가 허용된다. 이는 아이가 9월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9월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때 여자가 임신을 하면 두 번 째 결혼식을 올리고 합법적인 결혼이 성사된다. 두 번 째 결혼식은 다음에 오는 3월에 열린다. 그런데 만일 첫 번째 결혼을 한 후 12월에 성관계를 맺었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을 경.. 2005. 11. 8.
성서 왜곡의 실체 성서의 원전(原典)에 대한 결론 ♣ 원전(原典)은 없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모순 투성이의 복사본 성경이 있을 뿐이다. 성령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한마디로 말해 Bible의 원전(原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 존재다. 그럼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모두가 기원 4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생겨난, 무수한 카피(copy-模寫本)들인 것이다. 5천 5백 종류를 헤아리는 모사본들은 역시 모사를 거듭한 모사본인데다가 내용 또한 똑같은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란 것들 중에는 모순이 드러나지 않는 페이지란 단 한 페이지도,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다. 손으로 베껴 쓸 때마다, 내용이 달리 파악되었고, 그때 그때의 요청에.. 2005. 10. 21.
성배와 성혈 [ 16. 결론과 미래의 전조 ] 성배와 성혈 [ 16. 결론과 미래의 전조 ] 그러나 만일 일레로서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는 진술이 문자 그대로 이해되지 않고 상징적을 이해된다면 그 때에는 이해가 상충되지가 않고 그 진술의 의미를 해치지도 않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불사에 대한 소망에 종국을 고한다는 반론의 의미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도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류는 사후의 생명을 믿게 되었고 그 결과 부활사건은 불사에 대한 보증으로서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이해되어 교회에서 그대로 가르쳐진 신화가 갑작스럽게 c철저하게 거부될 것이라는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팽배해 가고 있다. 기독교 신화는 파괴되는 대신 한 번 쯤은 상.. 2004. 1. 17.
성배와 성혈 [ 15. 성배왕조 ] 성배와 성혈 [ 15. 성배왕조 ] 나그 하마디 문서에만 근거해서 판단해 보더라도 예수로부터 직접 이어진 혈통이 있으리라는 가능성은 상당히 타탕성이 있다. 소위 '영지주의 복음서들'중 어떤 것은 신약성서의 책들 만큼이나 커다랗게 그 진실성이 주장되었다. 결국 그것들이 명시적으로 건암시적으로 건 증거해 주고 있는 것들은, 즉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 베드로와 막달라 사이의 계속적인 불화, 막달라와 예수 사이의 결혼, '인자의 아들'의 출생 등은 아무리 그것들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다루지 않는 것이지 신학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 시대의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만큼이나 복합적이었고 다면적이었고 실용주의적이었.. 2004. 1. 17.
성배와 성혈 [ 14. 기독교가 금지한 비밀3 ] 성배와 성혈 [ 14. 기독교가 금지한 비밀3 ] A.D. 64∼74년의 반란이 있은지 약60년 후인 132∼135년에는 두 번째의 중요한 반란이 일어났다. 이러한 소요의 결과로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공식적으로 추방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가 되었다. 그런 첫 번째 반란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성지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후 200년 동안은 실제로 아무런 기록도 없는 셈이다. 실제로 그 기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소위 '암흑기'의 유럽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밖엣이긴 하지만 그 나라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역시 그랬다. 또 에비온이라고 불리우는 유대 구역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 2004. 1. 17.
성배와 성혈 [ 13. 기독교가 금지한 비밀2 ] 성배와 성혈 [ 13. 기독교가 금지한 비밀2 ]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 정통주의가 걸어온 길은 대단히 잘 알려져 있으며 훌룡하게 문서화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길은 '메시지 지지자들'의 최종적인 승리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서구 문명의 지침적이고 주도적인 원리로 수용되기는 했지만 전혀 도전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몰래 도망쳤을 때부터 이미 그 가족의 주장들 및 그 가족의 존재는 강력한 호소를 발휘했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 호소력은 로마의 정통주의를 크게 위협했다. 로마의 정통주의는 근본적으로 신약성서의 책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신약성서 자체는 4세기에 기원된 초기 기독교 문서들의 한 발췌일 뿐이다. 현재의 신약성서보다 더 먼저 씌어진 대단.. 2004.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