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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s Truth

초고대 문명은 존재 하는가? -2

by 개인교수 2006. 8. 18.

5) 고대 문명의 진원지

 가상적 문명의 근원지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문명이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시기와 우리 시대 사이에는 수천년 혹은 수만년의 간격이 있다.  신화와 전설은 광대한 육지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플라톤도 이러한 육지가 대서양 한복판에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   플라톤은 이 이야기를 솔론에게 들었다고 하며 솔론은 이집트의  신관으로 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신관은 솔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당신네들은 모두 젊네.  그렇지만 고대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옛 의견도 없으며 흰 머리에 서리를 얹어 놓은 것  같은  과학도없네"

 

 그리고 플라톤 학원의 교사이기도 한 철학자  크라툴로스도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대서양에 가라앉은 거대한 섬의 역사가 기록된 둥근 기둥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역사에 기록된 시대 이후도 대서양  해역에서는 일찍이 존재했던 몇 개의 육지가 차례로 바다 속으로 사라졌던  듯하다.  이것은 고대의 많은 역사가와 지리학자가 하나의 섬뿐 아니라 크로

노스 섬과 포세이도노스 섬 등이 바다속으로 차례로 모습을감추었다고 쓴 것에서도 확인된다.  지브랄타 해협 동쪽에 있었던 이 섬들은 대부분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제작년도가 분명하지 않은 고대 에게해 해도의 사본이 오늘날  전해져 오고 있는데 이 해도를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섬들과 함께 오늘날의 해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섬들과 육지가 그려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대홍수가 일어남으로 인해 바다 속으로 많은 섬과  육지가  잠겨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평양에서도 이런 전설은 전해져 오고 있다.  뉴질랜드 서남방에  있는 섬들의 전설 중에는 카 호우버 오 카네라는 이름의 육지가 태고 시대에 바다에 의해 삼켜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스터  섬의  주민은 모토우 마리오 히와라는 이름의 육지가 바다 속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

다.  캐롤라인 제도에 속한 포나페 섬 근처에서 반 가량은 바다에  잠긴큰 도시의 폐허가 발견되었다.  인도양에도 커다란 육지가 있었지만  태고 시대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씌여진책에 태고 시대에는 인도와 아프리카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오며, 고대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적도  밑

남인도양에는 일찌기 큰 섬이 존재했었다고 썼다.

 이러한 고대학자들의 말은 최근에 이루어진 발견으로 확인되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남인도와 동아프카의 드라비다계 언어의 유사함을  찾아냈다.  또한 이들 지역의 식물과 동물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아프리카 이외에는 인도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여우원숭이가 10종이나 살고 있다.  여우원숭이는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대양

을 횡단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이 섬에서 볼 수 있는 26종의  식물은 여기를 제외하면 남아시아에서 밖에 서식하지 않는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에도 없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대서양의 중앙부로 나오면 아틀란티스의 본섬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일컬어지고 있는 아조레스 제도의  남쪽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던 조종사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하였다.   태양광선이 경사지게 비춰져 최고의 시계조건이 되어 물이 맑게 보일 때 80~200피트의 바다 속에 수중도시 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와서는대서양의 마데이라 섬 부근에서 해저조사를 하고 있던 소련의  조사대가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사진들은 1974년, 깊이 600피트의 안펠 해산 정상에서 잠수함 아카데미샨 페트로프스키 호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이 조사는 고고학이 아니고 해양학상의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인데  소련 해양학연구소의 일원이며 사진의 책임자인 우라지밀 마라케프는 사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벽과 윤곽이 선명한 돌 계단이 비쳐진 것을  지적하고 있다.  아틀란티스를 연구하는 학자인 비라우는 "대양의 바다 밑에 지금도 아틀란티스는 잠자고 있으며 현재도 보이는 것은 그 가장  높은 정상, 아조레스 제도뿐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의 곳곳에서도 수몰된 역사 이전의 유적은  존재하고 있다.  남미의 북쪽 연안에서는 아래쪽으로 커다랗게 부채꼴  모양으로 훑어가다 보면 베네주엘라 연안까지 백마일에 달하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이것은 인공물로서는 너무나  길어서  저연물로밖에 간주할 수 없다고 학자들이 말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혼두라스와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는 육상에서는 소멸된둑길이 바다 속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도 보인다.  쿠바 북쪽의 바다에는 수 에이커에 걸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넓은 유적들이 있다.  

플로리다 반도의 남쪽 약 40마일 에는 해면 밑 수백피트나 되는 곳에 피라밋을 닮은 거대한 물체가  잠수함 탐지기에 의하여 거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희미하지만 틀립없는  영상이 수중 텔레비젼에 포착되고 있다.

페루의 나스카 해구 1.5마일의 깊은 곳에는 지금도 거대한 벽과  계단피라밋이 서 있으며 남태평양 제도, 일본, 남인도 등의 앞바다에도 미확인의 해저 유적이 잠자고 있다.  이와 같은 건축물의 폐허는 거의가  아틀란티스의 기억을 통해 전세계의 전설의 일부가 된 최후의 세계 대이변과 거의 관계가 있다고 보아도 좋을것이다.

6) 발굴되는 멸망의 화석들

 그 진원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시대 이전에 발달된 문명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생각이 점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가지게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데 있어 혹자는  우주인의 방문설을 내세우고 있다.  에리히 폰 테니켄과 같은 사람의 가설인데, 그는 인간과 비슷한 지구 외의 생물이 방문하여 지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서 세계문명을 쌓아올리는 정신적 능력을  적어도  10만년 이전부터 인류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로 본다면 지구인이 스스로 한번이상 고도의 문명을 쌓아올렸고 그것이 파멸하여 근소하게 살아남은  것이 똑같은 과정을 다시 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도 설득력이 있을것이다.

 이집트의 신관이 솔론에게 하였다는 말을 다시 들어보자.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류는 가지가지의 원인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파멸을 경험할 것이네.  언젠가 시기가 오면 하늘에서  빗물이 질병과 같이 쏟아져 문자나 교육을 결여한 자들만 남게 하네.   이리하여 당신네들은 다시 어린애 시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우리들에게, 당신네들에게도 옛 시대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무엇  하나  모르게될 것일세.

 그러면 고대문명이 멸망한 원인은 무엇일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알수 없다.  그러나 태고의 역사적, 종교적 문헌 가운데  문헌  가운데 보존되어 온 어떤 종류의 문화적 기록은 역사 이전 몇천년이나 옛날, 지구상에서 원폭과 비슷한 것이 전쟁에 사용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현대문명이 원시적인 형태에서 원폭의 개발까지는 약 6천년

이 걸렸다.  그런데 인류는 천년의 단위가 아니고 백만년의 단위로 셈하는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무네 그 발달된 두뇌는 적어도 10만년 전부터 현대인의 두뇌와 동등하였던 것이다.

 최근 20여년간 고고학적 탐험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분명하게  드러난 불가사의한 문명의 잔재들은 당시의 인류가 과학적 진보의 시스템을  터득하고 있었다면 그들에게도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들도 현재의 우리들과 같이 제어냐 파멸이냐 하는 따위의 고민에 직면하였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내용의 대부분은 고대 산스크리트어 문헌인  {마하바라타},{라마야나}, {프라주나}와 베다성전, {마하바라 차리타} 등에서  볼수있다.  이들 문헌은 지중해나 중동의 고대문헌이 거의 소실된 것과 달리 고대부터 현대까지 별탈없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마하바라타}에는고대 전쟁의 가공할만한 신병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우주의 힘이 담겨진

 단 한 개의 날으는 도구였다.

 태양을 만 개 모아놓은 정도로 밝은

 백열한 연기와 불기둥이

 무섭게 빛나게 솟아올랐다.

 그것은 미지의 무기이며

 철의 번개,

 거대한 죽음의 사자였다.

 브리슈니와 애다카의 전 민족을

 그것은 재로 변하게 하였다.

 시체는 너무 타버려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털과 손톱은 빠져나와

 도자기들은 이유없이 반동강이 나고

 새들은 하얗게 변하였다.

 또 {라마야나}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것은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지구를 순간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연기와 불꽃을 피우며 우렁차게 올라가는 위대한 소리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자는 죽음 ---

 이 문헌들이 처음으로 번역되어 서방세계에 알려진  19세기  후반에는 다분히 동양적 공상의 하나라고만 이해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서방인들은 이들 고대문헌에 대한 생각을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이것을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쾌한 예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있는 광대한 도시의 유적에 관한 이야기는 앞의 생각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 유적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 역사  이전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적은 모헨조다로,  하라파라고 불리우는데 실제 번영하고 있던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다.그들의  문자와 체계는 아직 해독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러한 체계가 지구 정반대 쪽에서도 발견되었다.

 다름아닌 태평양에 있는 이스터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는 아직 알 수는 없으나 두 곳 모두가 동시에 멸망하였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파멸이 너무나도 갑자기 찾아와 주민들은 피할 틈도 없이  잿더미 속에 파묻혀버렸다.  땅 속에서 한꺼번에 발견된 주민들의  유해는 몇천년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유해들 가운데 에서는 가장 강한 방사능을 나타내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사망자들이 나타내는 수치와 비슷할 정도이다.  또 방사능을 가진  해골이 인도에서 발견된 일이 있었다.  이 방사능은 보통 수준의 50배 가량이었다.

 핵폭발로 인한 파멸이외에 세계 여러민족들의 경전과 신화속에서 나타나는 대홍수로 인한 파멸도 신빙성 있어 보인다.  성경의 창세기가 씌여지기 수천년 전에 씌여진 수메르의 점토판에서도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신이 불러일으킨 대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이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고문헌 속에서도, 태평양의 여러 민족의 민담속에서도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의 전설속에서,  한민족의  한단고기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파멸의 원인들, 즉 호우수 외에 폭풍, 지진, 분화활동 등을 동반한 대이변에 의한 전설은 아프리카 민족들 사이에서돛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들에 따르면 대홍수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일어난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대서양에서 멀어짐에 따라 이변의 규모가 점점  작아져 대홍수에 관한 전설만으로 한정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지구의  어떤 지역에서는 엄청난 밀물이 밀려와 물이 산꼭대기를 덮을 정도였지만, 반대지역에서는 썰물 현상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동쪽으로 가면서  수위는 점점 낮아진다.  따라서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물이 가장 높은 산의꼭대기까지 밀려왔지만 그리스에서는 언덕과 큰  나무꼭대기  부근까지, 페르시아에 이르면 사람의 키 정도까지만 차올랐다.

 그런데 대홍수로 인한 파멸의 전설이 신빙성이 있게 하는 이유는 대홍수라는 사건의 보편적 분포보다는 이 사건에 대한 세세한 부분의 내용까지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7)고대문명의 파멸

 

 모든 전설에 대홍수를 예견한 예언자들이 등장한다.  기독교의 신, 바빌론의 신, 아즈텍의 신, 인도의 신 모두가 다가올 재앙에 대해서  경고한다.  그리고 그 경고를 받아들여 목숨을 건진 사람은 거의가 남녀  한쌍이다.  그들은 갖가지 동물을 데리고 살아 남았다.  또한 불어난 물이빠지기 시작하자 그들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산꼭대기에  상륙하여 새를 날려 보낸다.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오면 물이 빠진 것으로  알고 밖으로 나갔으며, 그때 홍수가 끝났음을 아리는  무지개를  보게  된다. 이 무지개의 이야기는 아메리카 인디오에게서, 폴리네시아의 신화에서도 수메르의 서사시속에서도 나온다.

그림설명: 케찰코아틀,

 우리는 대홍수의 진원지가 바다였다는 내용의 많은 전설과 문헌을  접할 수 있었다.  대홍수가 일어날 당시 어떤 힘이 바다에 작용한  것인가 가 문제인 셈인데 이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갖가지 이야기는 거의가 어느날 하늘에서 알지 못하는 천체가 지구로 떨어졌다든가 멀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00년 전의 일이다.  거대한 운석이 대기밀도가 높은 곳으로  빨려들어온 후 산산이 부서져 운석의 비가 된 채 지구에 떨어졌다.   이  운석중 하나는 무게 550톤에 달하였다.  이 운석은 수천입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현제의 에스토니아 공화국에 있는  거대한 호수 칼리뷰하얄과 호이다.  또 1868년에는  바르샤바에  운석비가

약 10만 개의 돌로 떨어져 내렸다.  어떤 것의  무게는  10킬로그램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의 낙하는 오랜 세월 동안 종종 있었던  일이다.

 우주에서 날라온 물체가 지구와 충돌했음을 보여주는 흔적 중에  1908년 6월 30일 아침 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 상류에 있는  포토  카메니야 퉁그스카 천의 오른쪽 지류에 위치한 탐바 유역에 우주  물체가  떨어져 순식간에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 사건은 퉁그스 운석의 수수께끼라고 불리우는데 아직도 그 정체가 해명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구에 접근한 거대한 소행성의 인력에 의해 바닷물이  지구의 한쪽에서는 거대한 만조로 한쪽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지구가 과거에  혜성이나 혜성의 꼬리와 충돌하였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지구가  혜성과 충돌한다면 그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수소폭탄 50만개  분에  상당한다고한다.

 또 달이 바다에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가설도 있다.  달은 원래 지구에서 매우 가까운 궤도를 도는 소행성이었는데 달의 옆을 거대한 우주물체 가 지나갔기 때문에 달은 자신의 궤도를 잃고 지구의 인력권 안으로  떨어져 지구의 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달이 지구에 최대한도로  접근했을 때 만조의 높이가 수킬로미터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민족의 전설 속의 홍수 이전 시대에는 달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수석감독관이었던  아볼로니우스도 옛날에는 지구의 하늘에서 달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기원전 3세기경에 썼다.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낙사고라스도 달이 나타난 것은 지구가 생긴 훨씬 후의 일이라고 썼다.

 그리고 대홍수만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폭풍, 지진, 분화활동 등을 동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메리카의 인디오의 고서 {포플부흐}는 대이변 뒤에 극심한 추위가 시작되고 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또 아마존의 열대림에 사는 부족은 홍수 뒤에 찾아온 오래  지속된 혹한에 사람들이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오늘날까지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일으킨 또 하나의 원인은 지구 양극의 변화, 즉 궤도에 대한 그 경사각도의 변화이다.  남극과 북극 지역에서  석탄층이나 목재탄화물과나뭇잎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남극에도  2억5천만년 전에는 초목이 번성했으며, 6천만년 전의 북극은 태평양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거대한 지질학적 변동에 의해서  일어날수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를 동반한 지진, 분화활동 등 최악의  이변들은  언제 발생하였으며 그때의 양극의 위치는 어디일까 ?   미국의  지구물리학자 오겔리는 몇차례에 걸친 조사 끝에 마지막 빙하기에는 북극이 현재의 북위 60도선이 통과하는 지점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북극점 이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게 만든 이변의 발생시기는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 다른 견해로는 미국의 지질학교수 챨스 허프크트의 이론이다.   그는 극이동은 지구 내부의 융용 마그마의 초석의 변동이 원인이되고 남극의 중량 증대에 따라 측면 방향에로의 회전팩톨에 도움을 받아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의 지축은 움직이지 않고 지구의 외피, 즉 지각을 형성하는 표면만이 새로운 위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는 지축상에서 요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공간을 회전하면서  미세하게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 10만년 사이에  3번의 극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북극이 캐나다 유콘 지역에서 그린랜드 해로 이동하고 다음에는 허드슨 만으로 옮겼으나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으며, 세번째의 이동의 시기는 약 1만 2천년 전에 끝넒다고 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인 리비는 아메리카 대륙을 연구한 결과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약  1만4백년 전, 인간의 자취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바로 이 무렵에 인류의  연속성에 단절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 현상은 그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왜냐하면 남뵤 유럽, 프랑스 중부의 라스코 동굴벽화는 기원전 1만 5천년경의 것으로 이 당시에도 인류는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빙하기 시대에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얼음에 덮여 있지 않은 이상 인간이 존재했을 것인데도 인간의 자취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영국이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리는 가장 오래 된 유적은 약 1만 4백년 전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러한 단절을 아메리카, 중앙아시아에서도 볼수 있다.

 소련학자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앞의 다양한 데이타 이외에도 고대 달력이 시작되는 해를 계산하여 기원전 1만년경을 고대문명의 파멸의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계산해 본 결과 인도의 태음(태양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2년이고, 마야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는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3년임을 발견하였다.  또 이변이 끝난  해를 나타낸다는 앗시리아식과 이집트식의 두가지 달력을 조사해 본 결과  이집트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이었고, 앗시리아 달력의 시작은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이었다.  이를 근거로 그는  고대문명을 파멸로 이끈 크나큰 이변이 기원전 1만 1천 6백 5십 2년이나 1만1천 6백 5십 2년에서 기원전 1만 1천 5백 4십 2년까지의 기간중에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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