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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10년 동안의 잠

by 개인교수 2014. 3. 13.



4월의 덕수궁은 스산한 가운데 나뭇가지 사이로 명확히 셀 수도 있을 만큼 빛 줄기들이 움직이지 않는 나무기둥 처럼 이곳저곳의 땅을 파고 든다. 그 빛기둥들은 주변의 공기들 보다도 차갑게 느껴저 마치 그 아래를 지나면 그 빛기둥이 정수리로 부터 직선으로 몸을 관통해, 머리고 심장이고 할것 없이 잠시 스치듯 얼어붙게할 것같다. 아니 오히려 그 빛기둥을 맞으면 대뇌속의 기억소자들이 화학적 물리적 반응을 일으키어 쓰잘데 없는 기억들을 삭제 시킬것 같다.
나는 기억소자들이 새로운 형태로 조합, 융합 되는것이 두렵다. "지금의 나" 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나"를 더욱더 두려워 하는것은 당연한일 일것이다.

모든것이 삭제 또는 정지-최소한-될수 있을것 이라는 확신 아래 얼굴을 파란 하늘로 쳐들고 빛기둥 중 가장 두꺼운 -정확히 말해서 내 머리통과 같은 지름의- 기둥 아래에 섰다. 차가운 태양은 그 입을 벌려 소립자들을 뿜어 냈으며 머리속의 소자들과 반응하고 섞이고 점점 아래로 향하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머리는 공허하게 맑아 지는데 가슴은 쓰리고 있었다. 가슴속의 소자들과 반응중 인가보다. 가슴 바닥에서는 저항의 움직임의 하나로 감정을 만드는 세포들을 계속 생산하고 위로 향하여 태양의 입자와 맞서지만 칼날같은 날카로움으로 세포의 핵들을 조각 내버려 이미 땅과 연결되는 머리로 부터의 원기둥을 형성해 버렸다. 차갑지도 덥지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空의 상태......,

봄 바람 -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물씬 풍겨나는- 그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였고 그녀는 아직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나란히 길을 걷는데도......,
그녀도 역시 햇빛기둥을 여러번 통과한 것일까? 통과하지 못해서 그런것일까?

물오른 개나리 가지들은 그 탱탱함을 이기지 못하고 연초록색 잎파리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고 변색동물처럼 조용히 한 구석에 숨어있는 젊은 남녀는 우리들의 시선에 놀란 범죄자 처럼 재빨리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순간 우리는 동시에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그 의미는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일단은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와 지금은 그런 행위를 하기에는 어색하게 되었고 그것이 허망함으로 변한 쓸쓸한 미소로 변한 것일게다.
그러나 사실 나는 "꼭 이러한 상황이 되어야만 미소를 지을수 있나?" 라는 점과 그 상황에서 미소를 지었다는 그 자체가 순간적으로 여러 의미가 교차된 미소를 짓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녀는 이제는 그 행위를 하기에는 어색하다는 뜻의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나?" 라는 점이 이번에는 허망한 미소를 짓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약 3초간의 미소후 안색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았다. 과거와 현실과 30분후의 미래 사이에서 애써 뭔가의 촞대를 찿으려는 몸짓이 애처로와서 나는 다시한번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마 그녀는 나의 그 미소를 내가 지을수 있는 가장 위장되고, 간교하고 한편으로는 비굴한 미소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번의 미소후 나는 할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무표정 해지려고 애썼다. 아니, 원래 무표정 했는데 한번 지은 그 미소의 반작용으로 더욱더 무표정 해지려고 애쓴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데 가만이 생각해 보니 길옆에 가정법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래? 음.... 그런데 우리는 덕수궁 안에 있잖아!]

이 짦막한 대화를 분석해 보면, 그녀는 헤어지는 동기나 자체를 다른 사물과 결부 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다른 사물과 결부 시킨다는 것은 결국 지금이라도 그 원인이 되는 사물이 없어진다면 "예를들어 내가 가정법원을 때려 부시던가 불태워 버린다면 헤어지지 않겠다 혹은 않을수도 있다"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고.... 그러나 더욱더 큰 의미는 그럴수는 없으니까 결국은 헤어질 수 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나의 의미는 헤어짐 자체를 다른 사물과 결부 시키지 말라는 소리 였으나 헤어지지 말자 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은 아니었고, 이 모든 상황은 나에 의하여 , 나의 주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약간은 방관자 적인 입장이 외서 그녀의 행동을 주시 하겠다는 소리 였다.

나는 모종의 게임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잔인하다면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의 심리를 백개 이상으로 수도 없이 분류하고 그 분류된 것에 다시 각각 수도 없는 의미를 연결 시키고, 그 의미들에는 각기 수백개 이상의 근거를 두고, 어느 말 어느 상황에도 반박하고 투시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없이 한 나의행동에 대해서도 -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유를 댈수 있는 기본 데이타를 머리속 하드 부분에 내장시켜두고 언제나 합리화를 위해서는 수시로 꺼내 쓸수 있게 만들어 두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짐에는 뭔가의 원인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원인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면 그 원인을 알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우리를 덕수궁에 오게한 궁극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고 각자는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에 내가 "밥 먹을래?" 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코미디가 될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나는 어떻게 하든 남은 20분을 소비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지막 선심인 양 그녀를 즐겁게 해 주려고도 노력 하였다.

날씨가 어중충 했다. 덕수궁 정문에서 본 코리아나 호텔은 마치 종이 한장이 세워져 있는것 처럼 보였고 우물쭈물 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데이트나 할래?" 라고 말하며 울컥거리는 마음을 쓸어 내렸다. 판사의 2주일 남았다는 말이 시한부 인생의 사형선고를 듣는듯한 느낌으로 와 닿는것은 왜일까? 그리고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그러한 감정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이유도 데체 뭘까?

반 자유인!!
2주후면 완전한 자유인이 정말 되는 것일까? 구청에 내는 종이 쪽지 하나가 나의 인생을 자유롭게해 줄수 있는것인가?

나와 그녀는 영화의 한장면 처럼 그녀는 시청을 보며 나는 그 뒤에서서 뒷통수에대고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광화문 뒷골목의 약간은 어둠 컴컴한 맥주집에 들어 왔을때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녀는 슬프지 않은듯 했다. 내가 슬프지 않은듯 하니까 그 반작용으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내가 여기서 슬픈척 하며 "미안했다"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라는 이런 저런 생각이 그 칙칙한 순간에도 장난처럼 머리를 맴돌았다. 맥주 두 잔을 마신후에야 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나는 내심 기뻤다. 나는 새로 가져온 생맥주 잔 위의 거품을 입으로 그녀에게 불어서 분위기를 환기 시키려 했고 효과는 있었다.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불행해 짐을 느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계속해서 슬퍼해 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떠한 유모어를 해도 그녀는 계속 영원히 슬퍼해 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웃었다는 이야기는 "그래 이제 떨쳐버리자" 라는 체념의 웃음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나는 덕수궁의 햋빛기둥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도 그 기둥을 이미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술 취한척해서 동정심을 유발할까?", "처음 만남의 설레임을 이야기 해서 나 라는 존재를 그 녀의 뇌리에 다시한번 부각 시킬까?" 라고 초읽기의 절박한 심정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부모님이라든지 주위의 이목 같은 잡스러운것을 떠올리게 해서 그녀의 메마른 정서에 장마비가 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중 하나도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 맥주집 자체가 평상시에도 같이 많이 와봤던 집이었고 나는 어짜피 조금 있으면 술이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엉뚱하게도 조금 있다가 이 맥주집을 나가면 어떻게 멋있게 헤어질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본 탓일게다. 그러나 헤어지지 못하고 우리는 종로를 걸었다.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이제는 부를수 없는 장인에게 했겠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행복한 보고를 하는것으로 자꾸만 생각이 되었다. 인사동의 포장마차에서 꼼장어가 뒤틀리는것을 보았다. 눈물 한 방울이 나왔으나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얼른 안경 닦는 시늉을 하였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한것 같으나 그러한 이야기는 거기서는 절대 안 어울리는 이야기 였다. 거기서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는 "침묵" 인것이다. 그러나 너무 침묵할 수도 없는것이 분위기가 어색하면 집에 가겠다 라는 이야기가 나올것만 같아서 그냥 주절주절 아무 이야기나 했어야 했다. 마치 그 이야기를 하러 만난것 처럼......,

"잘 지내요" 라는 한마디에 울컥하는 마음에서 대꾸도 못하고 고개만 끄떡였다.

불 꺼진방.....,
그리고 침묵......,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다. 금방이라고 골목길에서 자기가 먹을 빵과 내 담배를 검은 비닐 봉지에 쥐고 "빨리 문열어 줘요" 라고 말할것 같은 그녀의 환영이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방에 있을수가 없었다. 동네를 한 바퀴돌아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주척주척 방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밖으로 튀어 나올것만 같았다. 집안 온 구석을 환하게 밝혔다. 어둠이 나를 이 밤 미치게 만들것만 같았다.

다시 불 꺼진방...
어느 하늘아래 곤히 자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래 자라. 나도 이제 잔다. 자고 일어나면 10년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렴풋이 기억 나겠지...

8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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