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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 Genre

본의 아니게 내 마음을 고백하다.

by 개인교수 2007. 3. 15.

1.
내가 갑순여사 술집에 들어선 것은 거의 10시가 다 된 시간 이었다.
올해 50이 된 형규라는 사람과 형규라는 사람 보다는 훨씬 나이 들어 보이지만 아우라는 어떤 술 취한 사람, 그리고 갑순여사 남편 그렇게 넷이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갑순여사는 올해 60이 갓 넘은 할머니 스타일 인데도 여전히 내 앞에서는 '아직도 나한테 여관 가자는 사람 쎄고 쎘어!' 라고 위세를 부린다.
하긴 내가 그이상의 나이가 아직 안돼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내 나이 한 70정도 되면 한번쯤 60정도 된 여자와 그럴 생각을 해 볼 법도 하다고 느껴진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내 나이 20때 30넘은 여자와 자 볼 생각은 꿈에도 안했고, 내 나이 30때에도 역시 40넘은 여자는 쳐다도 안봤는데, 요즘들어 50이 훨씬 넘은 박정수라는 여자 탤런트가 "최근 남자친구가 있는 것이 제 젊음의 비결인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눈웃음 치는걸 보면서 '만약에 저 탤런트랑 그것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해 볼까 말까' 라는 경지까지 내 눈높이는 나이와 반비례로 점점 낮아져 가고만 있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항상 김치도 잘 담가주는게 고마워서 약 30개 들이 초코렛바 한 상자를 준비해서 갑순여사에게 건네 주었다.
지속적으로 술 한잔 하고 가라는 영감님의 권유에 한 쪽 구석에서 맥주 한 병을 시켜서 영감님이 올 때 사왔다는 가이바시라탕과 같이 마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갑자기 형규라는 사람이 "영감님 오늘이 무슨날 인줄 아세요?" 라고 물었다.
올해 70이 된 갑순씨 남편은 "아 그야 알지.. 오늘 화이트데이 아녀~" 라고 응수한다.

나는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리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날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런 70대 영감이 화이트데이를 다 알고 그 날을 평소에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 난 왜 이따위로 멋없게 살지?'


결국은 내가 그것도 화이트데이에 60대 갑순여사에게 초코렛을 준 셈이 됐다. ㅡ.ㅡ;;
좋은 일 한 걸 꺼야...


2.
형규라는 사람 아우되는 사람은 사우디가서 일하고 왔다고 사우디의 풍경을 늘어 놓는다.
사실 사우디는 내 외삼촌이 돈 벌러 갔다온 곳인데, 50도 안된 사람이 무슨일로 사우디를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 풍기는 모습은 결코 넥타이메고 갔다온 것은 아닌게 분명하다.

내가 전에 삼촌한테 들은 바로는 사우디에서는 문어를 안먹는데 홍해 바닷가에 문어가 널려 있어서 그냥 손으로 줍는다고 했다.
또한 내가 학교 다닐 시절 삼촌이 사우디에 갔다오면 담배 한 보루를 사다 줬는데 지금은 없어진 거북선이라는 담배였고 사방에 아랍어로 적혀져있는 담배였다.
일명 사우디 거북선이라고 불렸던 그 추억의 담배를 친구들에게 한 개피씩 나눠주면서 생색낸것도 기억나고 해서..

난 그 사람에게 문어가 정말 손으로 잡을 정도로 널려 있느냐? 라고 물어봤다.
자기는 모른단다. 바닷가를 안 가봐서...,

--대화의 단절--

술취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서로 눈치만 본다. 술값 2만원 때문에...
난 못 들은척 못 본척 TV를 틀었다.

두 사람이 어찌어찌 가고난 후 영감님은 고스톱 치러 간다고 했다. 점 500짜리 치신다고 한다. 점 500이면 한판에 3-4만원 도 나올 수 있는 큰 판인데 도데체 돈은 어디서 나서 고스톱을 치러 다니시는지 모르겠다.
영감님 말로는 하우스에 간다고 하는데 그것도 웃긴것이 어느 놈의 하우스에서 점 500짜리를 취급한단 말인가?

자기 부인 앞에서 당당히 고스톱 치러 간다고 얘기 한다.

가부장적인 구시대의 멋있는 유물 한 점을 보는듯 했다.


3.
죄민식의 말처럼 아무런 이유없이 걷다보니 방배경찰서 까지 가 버렸다.
불현듯 축구 생각이 났다.
손을 주머니에 푹 쑤셔넣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채 집으로 걸어 왔다.
여기저기 술취한 년놈들이 널부러져 있는 풍경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괜시리 짜증이 난다.
"아이 개새끼들... "
나도 모르게 욕이 중얼거리면서 나온다.

집에 와서 황급히 TV를 틀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올림픽팀 축구는 재미없다.
채널을 MBS ESPN으로 돌려 쓰리쿠션 당구를 봤다.

'오늘 내가 무슨일을 했지?'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문득
'아~~화이트데이에 여자에게 초코렛을 줬으니....'
'아~~ 본의 아니게 내 마음을 고백한 셈이 됐네? ㅡ.ㅡ;;' 그것도 그 사람 남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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